[Review] ‘미알못’을 위한 도슨트북, 그림들 [도서]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 그림들
글 입력 2022.08.1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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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를 볼 때 도슨트 해설과 함께 하곤 한다. 간혹 자유로운 관람을 위해 오디오 해설도 즐겨듣지만 도슨트 해설만큼 생동감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작품을 만난다. 어렸을 때 보았던 미술 교과서 속 작품들, 전시 혹은 공원, 심지어 건축물에서까지, 다양한 작품을 접하지만 그래도 작품 감상에 어려움을 느끼는 관람객이 많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라는 전시를 관람했었는데, 지금까지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난해한 전시였다. 생각해 보면 작품 이해에 대한 부담감은 항상 있었다. 전시 작품의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하고, 난해하다면 사진으로라도 남기려는 행동들과 같이 말이다. 다만 그림을 보고도 뭔가 더 채워진 것이 아닌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림들>은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책이다. "미술관을 여행하듯이" 우리는 책을 통해 자유로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미국 현지 미술관 도슨트인 작가는 뉴욕 현대 미술관 MOMA(일명 모마)의 대표 컬렉션을 소개하고자 한다. 모마는 약 20만 점의 현대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동시대인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림들>의 매력은 3가지이다. 첫째, 도슨트북답게 마치 모마 미술관에서 도슨트를 직접 만나 작품 앞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둘째, 모마의 대표 작품뿐만 아니라 연계된 다른 작품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마가 작품을 소장하게 된 배경을 포함하여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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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밤의 창문 ⓒMOMA

 

에드워드 호퍼는 섬세한 묘사,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대비로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을 잘 표현해 낸 화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호퍼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림 속 인물에 감정이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밤의 창문>은 어두운 밖과 환하게 불을 밝힌 방 안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듯한 창문 사이로 커튼이 바람에 펄럭이고, 바쁜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옷을 챙기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낯설지 않다. 마치 우리 현대인의 일상을 보여 주는 것 같다.
 
호퍼에게 창이나 유리는 안과 밖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구분 짓는 단절의 도구로 많이 사용된다. 작품에서 빛과 어둠의 대비는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쓸쓸함, 그리고 삭막함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많이 답답했다. 서로가 통하는 구조가 아닌 통할 수 없는 막힘으로 인해서.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다.

 

 
 
마크 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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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넘버 5 / 넘버 22 ⓒMOMA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이라 말했다. 미술 작품을 통해 마음을 치유받고, 신성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넘버 5 / 넘버 22>를 보고 있으면, 나 홀로 색면의 바다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같다. 가장 먼저 큰 노란색 덩어리가 보이고, 다음으로 가운데 놓인 빨간색 덩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보면, 아래쪽의 좀 더 짙은 주황색, 그리고 노란색 테두리, 맨 위에 하얀색 덩어리도 보인다. 자세히 보면, 몇 가지 색을 계속 덧칠하면서 색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록색, 흰색, 다홍색이 숨어있다.
 
로스코의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슬프기도 하다. 평평했던 캔버스 면이 울렁울렁거리면서 말이다. 아마도 작가 개인의 감정을 온전히 작품에 담아낸 것에 마음이 동요되어 그런 것 같다. 마치 큰 품에 안겨 위로받는 것과 같이,
 

 

나는 색이나 형태 등 그런 것들의 관계엔 관심이 없다. 나는 단지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들, 즉 비극, 황홀, 파멸 등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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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신문 읽는 사람들 ⓒMOMA

 

내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이다. 그리고 이중섭은 한국 최초로 모마 미술관에 작품이 전시된 작가이다. 당시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양담배의 은박지를 활용하여 작품을 담아낸 은지화가 대표 작품이다.

 
은지화는 당시 양담배를 싸고 있던 은박지에 못이나 송곳 같은 날카로운 도구로 그린 그림이다. 은박지를 긁어 자국을 남긴 다음, 전체적으로 물감을 바른 뒤에 색을 닦아 내면 긁힌 선 사이로 들어간 색만 남는다.
 
대표적으로 <신문 읽는 사람들>은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이 모두 신문을 보고 있는 모습으로 바쁜 현대인의 아침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자잘한 선의 투박함이 당대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어느 날 이중섭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무심코 옆에 굴러다니던 못으로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은지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그림 그릴 종이와 화구를 살 형편이 안될 정도로 가난해서 은지화를 그렸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시도 손을 멈출 수 없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음을 알 수 있다.
 

 

참된 애정이 충만할 때

비로소 마음이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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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관람 팁 5가지, 위치 안내, 미술관 연도표, 작가 설명 및 작품 설명까지.
 
두꺼운 미술관 팜플렛을 보는 듯했다. 그것도 흔한 팜플렛이 아닌 비밀스럽고 소중한 편지와 같은 팜플렛 말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기존의 해설 중심이던 내용 전개에서 벗어나 모마가 작품을 소장하게 된 배경을 포함해 미술 시장에서 작품의 가치와 판매가 등등 그동안 미술계의 궁금했던 내용까지 세심하게 담아냈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예술이 주는 기쁨과 위안을 다시 한번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조금의 휴식을 취할 때 <그림들>을 계속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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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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