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현재보다 앞으로가 더 궁금한 전위예술가, 박지형 (1)

전통과 무속에 꽂힌 그를 심층 인터뷰하다
글 입력 2022.08.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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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기 전까지는 무슨 태교하는 것 같아요. 아기 낳기 전까지 좋은 곳에 가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들으려고 하잖아요. 건강한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저도 좋은 작품을 탄생시켜야 하니까 좋은 걸 많이 접해요.”

 

 

스스로를 전위예술가라고 소개하는 청년 작가 박지형.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를 전공하는 학생이다. 그의 모토는 기존의 미술을 넘어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를 처음 봤을 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특유의 활기찬 에너지로 이리저리 스텝을 밟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언뜻 보면 춤을 추는 듯했다. 같은 동아리 작가팀 멤버로서 작가와 관객으로 만난 것이 아니었는데도 ‘아, 이 사람 예술하는 사람이구나’ 알 수 있었다.

 

기수를 마무리하며 동아리 사람들끼리 작게 모여 파티를 열었는데 그때 동그란 스티커를 얼굴에 붙이고 온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원초적 공포; 학관과 검은 점>이라는 30분짜리 퍼포먼스를 우리에게도 보여준 것이었다.

 

퍼포먼스의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동그란 검은색 스티커들이 붙어있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몇 년이 지나도 강렬한 ‘느낌’을 남겨주는 예술가 박지형. 현실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을 마주하게 해 주는 그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히고 몇 년 만에 그를 만났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자대학교 4학년 서양화를 전공중인 박지형입니다. 항상 제가 하는 미술보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해서 스스로를 ‘전위예술가’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요새 꽂힌 ‘판타지’라는 주제에 맞는 작품들을 미리 요청했다. 총 세 가지 작품을 받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봤던 작품도 있고 해서 반가운 마음이 컸다. 그의 작품을 하나씩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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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을 작업실로 만드는 15가지 방법>

종이에 인쇄, 18.2x12.8cm ; 20 pages. 2020.


 

2020년 작품으로 좁은 방을 창작의 공간으로 만드는 법을 담은 일종의 매뉴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그는 계속 방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방은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 아니었다. 표현욕구가 제한된 방보다는 무엇이든 맘껏 펼칠 수 있는 학교의 작업실이 훨씬 편안했다. 방은 너무 작고, 원하는 작품을 만들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 제약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불편함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았다. 본인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이 책자를 발간하기로 마음 먹는다. 예술가가 방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이 되기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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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떤 상황에서도 작업을 하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

 

사용방법 1. 작업실이 아닌 방 안에서 작업을 하게 된다면 2. 이 책을 펴고 본인이 끌리는 방법을 골라 실행한다 3. 작업실 느낌을 낸다(2020)


 

-표현욕구를 맘껏 발산하지 못해 답답했던 게 느껴져요. 이제 공간적 제약이 많이 풀렸는데요, 요즘은 어떤 욕구가 있나요?

 

보통 제가 하는 작품들이 스케일이 크다 보니 작품 보관에 대한 문제는 코로나가 끝나도 계속되는 것 같아요. 방 창고, 그리고 학교 창고에도 보관을 하는데 아무래도 공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점점 버려야 할 작품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안 버리고 버티고 있는데 작품을 잘 보존하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적당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안전과 쾌적한 환경이 보장된 창작공간, 무한한 작품 수용이 가능한 개인 수장고, 예술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되는 세계를 작가 개인의 판타지라고 써 주신 거군요.

 

네, 그게 예술가와 예술 애호가들이 살기 이상적인, 판타지에 가까운 세계인 것 같아요.

 

 

-작품의 스케일을 크게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큰 화면에서 오는 압도감에 매력을 많이 느껴요.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압도감을 주고 싶고요.

 

 

-그런데 지형님의 작품은 스케일이 크지 않은 퍼포먼스만 봐도 압도적인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더 잊혀지지 않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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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 맞추기>

광목천에 아크릴 물감, 캔버스 틀, 경첩, 못, 가변크기. 2021.

 

 

<음양오행 맞추기>는 도시의 음양오행을 맞추기 위해 오방색이 균형 있게 칠해진 캔버스를 공간에 설치하는 퍼포먼스다. 예술로 돈을 벌 수 있을지, 제정신 아닌 사람이라고,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라고 마음대로 짐작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의문을 가졌다.

 

‘예술가도 하나의 직업일 뿐이고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인데 왜 그럴까?’ 어쩌면 그가 사는 도시의 음양오행의 균형이 맞지 않아 이러한 풍조가 생겼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예로부터 음양오행이 균형을 이뤄야 모든 일이 좋게 흘러갔다고 한다. 사주에서도 음양오행이 균형을 이뤄야 모든 일에서 합리적이고 여유 있는 사고를 하게 된다고 말하고, 중국 의학에서도 음양오행이 균형을 이룬 상태를 건강하다고 본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주변 음양오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주술적 방법을 모색했다.

 

우리 조상들은 음양오행의 균형을 위해 오방색이 골고루 들어간 색동 주머니를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 방법에서 착안해 오방색이 골고루 들어간 캔버스를 들고 다니기로 했다. 부피가 큰 캔버스를 주머니처럼 쉽게 가지고 다니기 위해 경첩을 이용했다. 이 캔버스를 들고 다니다가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경험했던, 음양오행의 균형이 맞지 않는 공간에 설치하기로 했다. (2021)

 


-편견과 차별의 원인을 도시 음양오행의 문제로 생각한 게 흥미로워요. 개인의 문제로 여기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음.. 원래도 민속문화에 관심이 있었는데 당시에 ‘한국의 민속과 전통문화’라는 계절학기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음양오행을 떠올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리고 평소에도 문제의 원인을 생뚱맞은 데서 찾는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볼까요. 음 뭐가 있을까요. ‘지금 너무 목이 마른데 몸 안에서 옥수수가 자라고 있는 거 아니야?’ 이런 느낌으로요. 어, 그런데 갑자기 문제를 나의 탓으로 돌리기는 싫었나 싶기도 하네요.

 

 

-그럼 그런 생뚱맞은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 인식을 하시나요?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생뚱맞은 생각을 일부러 재밌으라고 얘기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너무 자주 그러다 보니 이제 그냥 아무렇게나 나오는 것 같네요.

 

 

-저랑 비슷하네요.

 

역시. (웃음)

 

 

-그럼 편견을 마주하게 될 때면 예술가로서, 또는 개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하나요?

 

사실 운 좋게도 제 주변에서 그런 편견을 마주할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아요. 그래도 개인으로서의 대처는.. 친척 분들 중에 몇 분 계시긴 한데 그럴 때는 그냥 웃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실제로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건 사실일 테니까 “대학원 가려고요” 합니다. (웃음)

 

그리고 예술가로서는.. 사실 별로 무섭지 않아요. 물론 그림을 못 그릴 정도로 가난하면 안되겠지만. 사실 저도 한 때 현실에 ‘굴복’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그냥 예술가가 아닌 다른 길을 열심히 준비해 볼까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러면 평생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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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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