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본을 풀어 봅세다, 판소리 합창으로 듣는 가신 이야기 -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

글 입력 2022.08.1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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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집의 오방을 비롯해 앞문, 뒷문, 부엌, 변소에 각각 신들이 자리 잡고 있다 믿었다. 지금은 주거 공간이 아파트 중심으로 변하면서 그 의미가 흐릿해졌지만, 오랫동안 우리는 가신(家神)에게 기대어 복을 빌었다.


신들도 처음부터 신은 아니었다. 제주도에서 전해 내려오는 무속신화 ‘문전본풀이’는 각 가신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는 굿에서 구송되는 신들의 이야기를 '판소리 합창'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무대 위에서 풀어낸다.

 

 

 

본을 풀어 봅세다, 신의 내력을 풀어 봅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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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살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 화를 입지만, 신들의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복을 받는다고 한다.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는 “본을 풀어 봅세다. 신의 내력을 풀어 봅세다”라고 노래하며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극은 친절하다. 판소리와 문전본풀이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제각각일 관객을 배려해, 이번 공연의 연출, 음악감독, 작창, 각색, 작사를 맡은 박인혜 소리꾼이 나와 이 공연을 만들게 된 계기부터 차분하게 들려준다. 그는 여산부인, 남선비, 노일저대 역까지 소화하면서도 서사가 크게 바뀌는 부분이면 해설로 분해 설명을 돕는다.


다섯 소리꾼은 녹디생이를 비롯한 일곱 아들의 목소리를 맡는다. 물론 이는 대략적인 구분일 뿐 판소리가 으레 그렇듯 각 소리꾼의 역할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오버더떼창’이라는 극 제목처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한 곡을 여러 명이 나눠서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헷갈릴 염려는 없다. 노래가 나올 때마다 무대 뒤 스크린에 노래 제목과 가사가 나오므로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가사를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다.

 

내용도 익숙한 계모담이기에 쉽게 집중할 수 있다. 착하지만 가난하게 살던 집안이 위기에 처하고, 막내의 기지로 평화를 되찾는 이야기는 세부사항은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수많은 설화에서 발견되는 전개다. 물론 무속신화이므로 결말에서는 등장인물이 모두 마지막에 신의 자리에 앉게 된다.

 

 

 

1시간 반 동안 계속되는 ‘듣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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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판소리 합창’을 내세운 만큼 두 명의 악사와 여섯 명의 소리꾼이 등장하는 독특한 구성이다.

 

무대 양쪽에 앉은 악사 중 한쪽은 가야금을 비롯해 다양한 가락악기 전반을 다루고, 다른 쪽은 북과 같은 타악기를 주로 다룬다. 두 악사는 10여 개의 전통 악기를 다루며 기본적인 판소리 가락만이 아니라 극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소리를 만들어낸다.

 

두 악사의 악기소리 위로 소리꾼들은 다채로운 목소리를 덧입힌다. '장기 한판 두실라우'와 '돛배 짓는 소리'의 경우 소리꾼 여럿이 각자 맡은 부분을 나눠 부르는데, 서로 가사를 주고받는 빠른 리듬감이 돋보인다. 또, 여러 명이 한 파트를 함께 부를 때면 섞이지 않을 것만 같은 소리가 어떻게 어우러져 또 다른 소리를 내는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기존의 합창처럼 파트가 뚜렷하게 나눠진 형태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질서를 갖춘 소리가 공연장에 조화롭게 울려 퍼진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목소리로 표현하는 배경음이다. 배경음의 존재는 오동국의 수상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어쩐지 이곳'에서 잘 드러나는데, 소리꾼들은 새소리나 물소리, 벌레 울음소리까지 목소리로 만들어낸다.

 

기존의 판소리가 고수 한 명의 북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소리꾼 한 명의 목소리와 연기력에 집중해 보는 공연이었다면, 이번 공연에는 소리꾼 각자가 얼마나 다른 목소리를 지녔는지 실감하고 또 그 목소리가 어떤 방식으로 섞이는지 듣는 재미가 있다.

 

 

 

새롭게 전해질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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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의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지점은 기존의 문전본풀이와 달리 여산부인과 노일저대에게 추가적인 서사가 부여된 것이다. 원래 여산부인은 노일저대에게 살해당한 후 분량이 없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자신이 베푼 작은 선의로 목숨을 구하고 녹디생이와 함께 복수에 성공하는 모습으로, 보다 적극적인 인물이다.

 

노일저대는 자신의 섬을 방문한 남자를 유혹해 위험에 빠뜨리고 조강지처의 자리를 위협하는 전형적인 악녀이다. 기존의 문전본풀이에서 극는 절대적인 악에 해당되지만, 이 공연에서는 노일저대가 그토록 방문객들을 경계하고 싫어하는 이유가 언급된다. 노일저대는 그로 인해 조금 더 입체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한편, 남선비는 순하지만 고지식한 인물로 등장한다. 온 가족이 가난에 허덕여도 ‘옛 말씀’ 읽기에 바빴던 그는 여산부인 흉내를 내는 노일저대가 아들들의 간을 먹어야만 병에서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할 때도 아들의 의사를 묻는 게 아니라 책을 들여다본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은 자식 된 도리, 아내는 아내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며 말이다. 그런 남선비는 이 이야기 속에서 노일저대 못지않게 집안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이다.

 

악한 외부인으로부터 집안을 구하는 내용이었던 문전본풀이는 추가된 서사와 세분화된 인물의 성격을 통해 남선비의 고지식함으로 위기에 처한 집을 여산부인과 녹디쟁이의 지혜로 구한다는 이야기로 변모한다. 옛 이야기의 골조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의미를 지닌 이야기로 다시금 전해지는 것이다.


문전본풀이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 그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월을 건너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거치는 동안 이야기는 그 시대가 담고 있는 가치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서사가 추가되고 또 삭제되며 오늘날에 이르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2022년 공연되는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가치를 담고 있는 건 당연하다. 오늘날 어떤 공동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바깥의 악녀'보다는 내부의 소통 부재 또는 어리석음일 가능성이 클 테니 말이다. 훗날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가 이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로서 기능할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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