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마지막 피처폰 [문화 전반]

2G에서 5G 시대로 나아가는 사람들
글 입력 2022.08.1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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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통신사의 2세대 이동통신(2G) 서비스를 정부에 일괄 반납하였다는 뉴스 기사를 접했다. 그 이름도 그리운 '2G폰'의 시대가 저물었다.


2020년 7월, SKT는 일찍이 2G 서비스를 종료했고 최대 2년의 한도까지 고객 정보를 보관해왔다. 이제는 그 한도마저 끝이 났다. 오래도록 사용해온 정든 기기를 바꾸고 번호를 이동해야 했다.


각 통신사의 서비스 종료 선언 이전에 2G폰은 이미 종료된 문화였다. 태어나고 자라기를 스마트 기기와 함께 해온 요즘 세대에게는 책에서나 접할 법한 생소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초등학교 6학년, 처음 피처폰을 선물 받았고 후에는 3G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고등학생 때까지 폴더폰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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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애니콜 '가로본능'>

 

 

넘쳐나는 휴대폰만큼 다양했던 광고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휴대폰 광고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해외 로케이션을 감행했고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흑역사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여전히 그리운 것들이었다.

 

011, 016, 017, 019......

 

정확히는 부모님 세대의 번호였다. 기존 통신사 별로 달랐던 옛 번호는 010 통합번호 제도로 인해 영영 사라지게 된다. 변화의 끄트머리에 걸쳐져 통합번호 이전의 번호를 사용했던 것은 뜻깊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찬란한 과거를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내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었다. 64화음 벨 소리와 통화연결음이 필수였으며 휴대폰 튜닝으로 개성을 뽐냈다. 휴대폰 꾸미기는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오로지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위한 통신기기는 시사하는 바가 달랐다.

 

 

 

2G에서 5G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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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5G 시대에 살고 있다. 아이폰의 유행에 탑승하여 소위 말하는 '애플의 노예'가 된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휴대폰 시장은 점점 획일화되어 모두 같은 모양의 제품을 출시했고 이들은 아주 약간의 기술 차이만 있을 뿐이다.

 

3세대 이동통신이 상용화된 지 몇 년 만에 등장한 스마트폰은 다양했던 휴대폰 시장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스마트폰은 인터넷 사용에 제약 없이 자유로웠고 오로지 전화와 문자만이 가능했던 구식 휴대폰은 쓸모없는 장식품이 된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변경하기까지 사용했던 나의 폴더폰은 유명 가수가 광고했던 제품이었다. 폴더 앞면을 반짝이는 LED 불빛이 어찌나 자랑스러웠는지.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사용했던 폴더폰은 중고시장으로 나오지 못했다. 약 1년, 먼지 가득한 서랍 깊숙이 웅크려져 세상 밖으로 나가길 기다릴 뿐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 안에 저장된 '문자' 몇 통이었다. 오래도록 아껴 읽었던 지난 메시지들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용량 탓에 보관 가능한 메시지 수가 정해져 있었는데, 대개 가장 오래된 문자를 삭제하며 용량을 늘려갔다. 그 모든 제약을 뚫고 살아남은 메시지였다.


앨범 속 사진 보다 그 문자들이 소중했다. 장문과 단답이 섞인 문자들이었지만 알림음에 달려가던 그 기분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테다. 데이터 무제한도 아니었던 우리는 그렇기에 꽉꽉 채워 보냈던 문자 한 통이 소중했다. 상대방의 읽음 표시를 알 수 없었으므로 기약 없는 기다림은 설렘이 되었다.


문자는 물론이고 전화 역시 발신번호 표시가 제한되었다. 지금에야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해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일절 수신을 거부하지만, 출처도 모르는 전화를 오히려 설레했던 시대를 살아온 것이 아이러니했다. 만연하게 퍼진 범죄는 지나온 감성과 어쩌면 낭만적이었던 추억들을 한데 묻어버렸다.

 

 

 

지우지 못한 말들


 

차마 삭제하지 못한 말들이 있었다. 받은 메시지함에서 보관함으로 이동하게 된 것은 영구적인 바람이었다. 혼자 몰래 보았던 문자 메시지는 닳을 정도로 읽고 또 읽었지만 나는 차마 문자를 지울 수도, 휴대폰을 버릴 수도 없었다.


내용은 한결같이 볼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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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야? 밥 먹었어?]


[고마워]


[잘 자]


[지금 만나자]

 

잘 자, 그 짧은 인사에도 밤을 지새우던 날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매일같이 읽어보던 문자들은 일주일이 흘러 한 달, 그리고 일 년이라는 텀을 두게 되었고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잊혀갔다. 혹여나 연락이 오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받게 된 문자를 전리품처럼 남기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볼품없는 말들은 어째서 영원히 기억되었을까. 언제든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인사치레와 같은 문장들이었다. 나는 그 몇 마디 말보다 주고받았던 이름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들과 약속했던 장소를, 선물을 기억했다. 문자 한 통에 쏟았던 감정과 시간을 떠올렸다. 결국엔 그 메시지의 발신인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던 거라고.


그토록 아꼈던 휴대폰은 내 수중에 없다. 여행 중 휴대폰을 잃어버려 공기계가 필요했던 친구에게 양도한 것이다. 어차피 안 쓰니까, 그런 이유에서였다. 친구에게 휴대폰을 넘겨주기 전에, 나는 이내 모든 정보를 초기화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였다. 미련으로 남지 않기 위해 오로지 내 기억 속에 보관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Y2K,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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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세대는 나아갈수록 촌스러움을 탈피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다시 Y2K(1990년대 ~ 2000년대 사이를 지칭하는 'Year 2000' 줄임말) 감성이 유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온통 Y2K 열풍이다. 패션, 헤어스타일, 메이크업뿐만 아니라 예전 방송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진짜라면, 이번 유행의 사이클이 2000년대 차례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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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갤럭시 Z 플립 4>

 

 

휴대폰도 마찬가지였다.


접었다가 펴는 폴더폰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폰이 출시되었는데, 다시 그 넓은 액정을 반으로 접겠단다.


특히 삼성 갤럭시의 Z 플립은 출시되자마자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 손에 들어오는 간편성은 Z 플립의 크나큰 장점이었다. 외형은 예전의 폴더폰을 연상하게 했지만 키 패드가 없는 스마트폰 그 자체였다.


폴더폰 감성을 추구하는 디자인의 제품이 출시되며 과거로의 회귀가 아닐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진보하지 못하고 역행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폴더폰의 이점과 스마트폰의 이점을 살려 탄생하였으니, 지난 세대와 현세대를 잇는 매개체와 같다는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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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 조이 - '안녕(Hello)' 앨범>

 

 

현 세대에게 예전 감성은 '힙한' 문화로 잡았다. 아이돌 앨범의 재킷 콘셉트로 사용되었고, 어느 브랜드의 패션쇼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이며 일반 소비자 역시 과거로의 유행에 탑승하게 되었다.


지나온 문화는 그것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만의 것이었다. 물건 하나에 추억이 수백 개였고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기억이었다. 이제 그 추억을 곱씹는 이들은 자연스레 후발대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준 셈이다.


젊은 MZ 세대는 그들에게 없는 추억임에도 불구하고 Y2K에 열광했다. 지나온 이들은 기억하기에도 촌스러운 유행이 한 번도 겪지 못한 이들에게는 '멋'이 된 것이다.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우리의 시대는 미래가 기약되지 않은 질병과 줄곧 마주했다. 여유가 낭만이 가득했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발화하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Z 플립은 세대를 이어주는 발명품이 되었다. 자신만의 멋으로 튜닝했던 시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휴대폰을 초기화했던 마음으로, 나는 이번에도 기꺼이 편승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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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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