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정답 없는 공연에 정답을 만들어 주는 건 관객." - 연극 '소실'의 이은영 연출

글 입력 2022.08.1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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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제목은 이야기가 끝난 후에 비로소 인식의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연극 <소실>도 그런 제목을 가진 작품이다. 소실(消失), 사라져 없어졌다, 또는 그렇게 잃어버렸다는 뜻으로, 완전한 사라짐을 뜻하는 '상실'보다는 그 잃어버림 자체의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제목이다.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는 두 형제와 그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연극은 무대 위에 차차 잃어버림의 정서를 수놓는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추앙'이나 영화 <헤어질 결심>의 '붕괴'처럼 직접적으로 그 단어를 언급하진 않지만) 이야기가 결말에 도착하면 제목 '소실'은 차마 한 단어로 삼켜지지 않을 만큼 묵직해진다.


그렇다고 이 무거운 이야기가 마냥 무겁게만 다가오는 건 아니다. 연극 <소실>은 유쾌함과 불안함을 함께 주조하면서 관객을 이야기의 심층으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그리고 이 무겁지만 무겁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관객은 삼켜지지 않는 각자의 '소실', 각자의 정답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일본 극단 나일론100°C의 케라리노 산드로비치 작가가 쓴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2017년 대전 예술가의 집 누리홀 초연, 2018년 서울 연우소극장 재연, 2022년 서울 아트원씨어터 삼연에까지 이른 <소실>에는 그 무게에 대한 오랜 고민과 노력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다. 공연이 막 개막했던 지난 프리뷰 기간에 이은영 연출가를 만나 이 정답 없는 연극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간을 조금 더 선하게 바라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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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먼저 연극 <소실>을 연출님만의 언어로 소개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어렵네요(웃음). 살면서 착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사실 귀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대본을 선택할 때도 ‘나쁜 사람은 그만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제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착한 사람들을 무대 위의 판타지 안에서 구축해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어’ 하고 상상하는 시간이 제 인생에서는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비록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소실>의 인물들도 인간을 조금 더 선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관객분들도 하하 호호 웃다가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미안해지기도 하면서 인간의 선함에 대해 생각해 보실 수 있을 것 같았고요.


 

원작은 극단 나일론 100℃의 케라리노 산드로비치 작가가 썼는데요. 사실 이 작가의 작품 중 한국에 들어온 건 올해 인천시립극단에서 올린 <백년의 비밀>, 그리고 연출님께서 2017년부터 올리신 <소실> 정도인데, 혹시 원작을 직접 관람하신 건지 아니면 희곡으로 읽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희곡으로 접했어요. 어떤 작품을 해야 하나 찾으면서 희곡을 읽는 게 제 일이기도 한데요. <소실>을 비롯한 일본 작품들은 주로 이홍이 번역가님을 통해서 받고 있어요. 그중에서 ‘내가 이렇게 풀어 보면 어떨까?’ 논의하면서 올리게 된 게 <소실>이고요. 일본 공연으로는 아직 한 번도 못 봤어요.


 

일본 초연은 쉬는 시간 없이 2시간 45분, 2015년 공연은 쉬는 시간 포함해서 3시간가량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대본이 진짜 방대해요. 그래서 처음에는 인터미션 포함해서 3시간짜리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관객분들께도 너무 부담스러운 시간일 것 같아서 작가님께 조금 줄일 수 없는지, 각색해 보면 어떤지 의논드렸어요. 그랬더니 작가님께서 “줄이세요. 단, 추가할 수는 없고 삭제만 가능합니다.”라고 하셔서 삭제해도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지는 부분을 지웠어요. “이 좋은 대사를 날리다니!” 하면서요(웃음).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지워서 초연부터 90분~100분으로 맞췄죠. 섬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3시간짜리 대본도 똑같은 감각이에요. 사회 환경, 시대상 등을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있지만, 이 줄기를 더 친절하게 설명하지는 않아요. 언젠가는 3시간짜리 공연으로 보여드리고 싶기도 해요.


 

그럼 혹시 이번 공연에서 캐릭터의 전사도 덜어낸 걸까요?

 

이 대본이 정말 재밌는 게 주어진 전사가 없어요. 그래서 어떤 연출, 어떤 배우가 만드냐에 따라서 달라지고, 어떤 설정을 넣어도 웬만한 게 다 돼요. 전에 <이퀄>이라는 2인극을 연출했었는데, 그 대본도 해석의 여지가 수만 갈래로 뻗어나가거든요. 제가 그런 대본을 워낙 좋아하기도 해요. <소실>은 시대도 정해져 있지 않고, 무대에 대해서도 ‘레트로풍의 집기들’ 정도의 설명만 있지, 관객분들이 들으셨던 대사 외에는 전사가 없어요. 대본을 못 건드리는 대신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배경인지 채워 넣는 연출적 상상력은 자유로워서 참 좋은 대본이라고 생각해요.

 

 

 

무거운 이야기를 마냥 무겁지 않게 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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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22년 공연만의 연출 포인트 혹은 주안점이 있을까요?

 

제가 유머가 없는 사람이라 초연, 재연 당시에는 ‘장난이라는 걸 도대체 왜 쳐야 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작품을 반복하면서 유머라는 게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어요. 예전에는 배우들이 합을 짜와서 보여 줘도 캐릭터가 행위를 하는 이유가 납득이 안 되면 다 뺐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관객분들이 한 번이라도 더 웃으실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세계관은 이미 작품의 베이스에 깊이 잡혀 있으니, 관객분들이 유쾌하게 웃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럴 수 있었던 건 초연, 재연을 통해 이 작품의 깊이에 대해서 확실하게 감각한 덕분이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무거운 이야기를 마냥 무겁지만은 않게 전할 수 있을지 배우들과 많이 고민했어요. 사람마다 자세히 지켜보면 이상하게 웃긴 포인트들이 있잖아요. 배우들에게서 그런 포인트를 최대한 끄집어내서 우울한 얘기를 부담스럽지 않게 전해 보려고 노력했어요.

 

 

생각보다 관객분들이 많이 웃으시더라고요. 저는 특히 유성재 배우가 웃음 포인트를 잘 짚어 주셔서 많이 웃었어요.

 

그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웃음). 성재 선배님도 정말 많은 시도를 하셨는데, 한 1,000개 했으면 지금은 몇 개 안 남아 있을 정도예요. 계속 준비하고, 시도하다가 안 되면 고쳐 와서 다시 해 보고 그러셨어요. 처음 연습실에서는 도넌의 이상한 행동들이 당황스러웠는데,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봤을 때 선배님의 연기가 그 캐릭터랑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 “저는 진심으로 선배님이 하고 싶은 걸 다 하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시간 관계상 몇 개만 살립시다.” 해서 정리한 게 지금의 공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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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유머러스하게 시작하지만, 점점 연극의 홍보 문구에 맞는 파멸 분위기로 치닫는다고 느꼈어요. 처음과 끝의 장르적 분위기가 다른데, 연출하실 때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최대한 티를 안 내고 싶었어요. 저는 파멸할 줄 몰라서 애처로운 게 인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도 코로나19, 이상 기후가 있는 현실에서 열심히 살잖아요. 그래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데도 열심히 또 해맑게 살아가는 캐릭터들을 봤을 때, 관객분들이 인간에 대한 애잔함을 느끼시지 않을까 싶었어요.

 

연습 초반에는 배우도 계속 무거운 연기를 하는 시점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 줘야 하니까 어두움을 최대한 티 내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앞에서는 그냥 이 순간을 마지막처럼 즐기는 사람들처럼 가다가 중간중간 사건이 벌어졌을 때 조금씩 드러내는 방식으로요. 인간은 겉모습이 다가 아니고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깊은 사연이 있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일단 편안하게 이 사람들에게 집중하게 만들었어요.

 

프롤로그에서 스탠리가 “나 같은 거, 나 같은 거” 하면서 자기 비하를 했다고 채즈가 싱크대를 ‘쾅’ 내리치는 장면 같은 것들이 순간 불편하게 들어오잖아요. 그런 지점들을 최대한 깊이, 찰나에 들어가되, 빨리 털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사는 모습을 보여 주자. 배우들이랑 그런 부분을 많이 신경 썼어요.


 

그런 면에서 무대도 평범한데 불안한 분위기가 나서 좋았거든요. 무대에 톱니바퀴, 덕트가 있다든가, 크리스마스인데 여름 매미 소리가 들리고 반바지를 입고 있다든가. 이런 시공간의 불확정성도 의도하신 게 맞나요?

 

맞아요. 디자인스태프들과 ‘이렇게 가면 더 이상하고 좋지 않을까?’라고 얘기했어요. 원래 대본상 배경은 한겨울이었고 한국 초연, 재연도 그렇게 설정했었어요. 한여름에 공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건데, <소실>은 상상력을 충분히 투입해도 되는 세계니까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여름과 겨울의 차이만큼 된 세상’으로 그려 보자고 디자이너분들께 제안 드렸어요. 작가님께 허락도 구했고요. 결국 무대, 조명, 음향이 전체적으로 다 붙어서 ‘이게 더운 거야? 추운 거야?’ 알 수 없는 모습을 그려냈는데, 오히려 그런 이상 기후가 작품이랑 잘 맞지 않았나 생각해요.


 

뭔가 확정적인 게 없었죠.

 

그래서 배우들, 스태프들이 좀 힘들어하시긴 했어요. 사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거잖아요(웃음).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걸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하면서 서로 격려했죠.

 


채즈와 스탠리의 나이도 초, 재연과는 달라진 것 같던데요. 이번 공연은 좀 어려진 느낌이 있더라고요.

 

전에도 제가 캐스팅을 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캐릭터랑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골랐던 거였어요. 전쟁도 그렇고, 기후도 그렇고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더 가깝게 느낄 법한 세상이 되면서 캐스팅에 변화를 준 부분이 있긴 한데요. 원래는 관리국 요원인 ‘잭 린트’ 역할로는 든든한 선배들을 썼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어린 군인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고, 어른들이 만드는 세상이 어린 인간들에게 가혹하다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그래서 이 역할을 신인 배우에게 맡기면 인간이 훨씬 애잔해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고, 확 어리게 캐스팅했어요. 나머지 역할들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았어요. 원작 작가님도 초연 때 같이 했던 배우들과 10여 년 뒤에 재공연을 같이 하셨더라고요. 나이가 중요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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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 속 인물들은 잃었던 것 혹은 잃어가는 것이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데 그게 또 다른 소실로 이어지는, 어떻게 보면 좀 애잔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커튼콜은 크리스마스 파티처럼 아름답게 꾸리셨더라고요.

 

초연 때는 커튼콜을 아예 안 했어요. 그냥 ‘셋이 남아 있다, 조명이 팡 사라진다, 끝, 나가세요.’ 이거였어요. 참 불친절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관객들이 그 정서를 품고 극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을 때 드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왜 그랬을까요?(웃음) 재연 때는 커튼콜을 해야 한다고 해서 인사하는 걸로 끝냈었고요. 이번에는 관객들이 충분히 가슴 아프게 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봤는데, 환상일지언정 커튼콜에서라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을 보고 싶어서 저도 연극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라. ‘좀 괜찮은 세상이었다면 6명이 저렇게 꽁냥꽁냥 재미있게 살았겠지’라는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


 

어쩐지 커튼콜이 찡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배우들도 슬프대요. 이루어지지 않은 장면을 연기하고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그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슬프면 안 돼요. 행복해야 돼요!”라고 말씀드렸어요.

 

 

 

비관적인 상상, 열심히 사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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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작가가 재공연 때 쓴 글을 보니까 초연 때는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라고 느꼈는데 2015년에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위태로움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연출님께서도 세 번 <소실>을 올리셨는데, 혹시 받아들이거나 표현하는 데 달라진 점이 있으실까요?

 

사실 초연, 재연은 이 세계관을 관객분들이 이해하실 수 있을까 많이 불안했어요. ‘요즘 시대에 전쟁이 말이 되냐?’ 하던 시기였다 보니까. 사극도 시대극도 아닌 애매한 지점의 작품인지라 현대의 물품을 걸치고 나와서 전쟁 이후를 이야기하는 것에 얼마만큼 공감하실까 두려웠어요. 그런데 공연을 하면서 그것과 상관없이 그냥 인간의 이야기로 봐주신다는 확신이 생겼고, 이번에는 관객분들이 이 이야기를 낯설지 않게, 가깝게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이해나 공감에 대한 불안을 접어두고 더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방법, 배우들끼리 쫀쫀해지는 방법 등에 더 집중해서 만들 수 있었어요.


 

말씀대로 대사나 상황들이 동시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원작의 힘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배우들이랑도 대본 읽으면서 “와, 이건 미쳤다. 미치지 않고는 이렇게 쓸 수 없어.”라며 감탄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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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어도 혼자>를 비롯해 <소실>, <천구의>, <이퀄> 등 일본 연극을 연출하는 작업을 꽤 하시는 것 같아요. 스즈키 컴퍼니 객원 단원이셨던 연출님의 이력이 작용한 건지 궁금했어요.

 

사실 왜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스즈키 선생님의 극단에는 대학원생 시절에 논문 때문에 가 있었어요. 그냥 스즈키라는 대단한 연극쟁이를 연구해 보자는 생각으로 간 거였고 한 2~3년 정도 머물렀는데, 사실 일본 연극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에요. 폐쇄된 산골 마을에 극장 5개 지어놓고 1시간 차 타고 나가야 슈퍼가 있는 곳에 거의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연 관람의 폭이 넓지는 않았죠.

 

그리고 일본 공연도 물론 매력 있지만 제가 관극하는 입장에서 즐거운 느낌을 받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당시에는 제가 만났던 일본 작업자들의 집요함, 1시간이면 끝날 일을 10시간을 붙잡고 완성도를 갖춰 나가는 과정이 감동이었죠. 사실 그때는 연출을 할 생각도 없었고요.


 

그 당시에는 배우셨잖아요.

 

네, 한국에 돌아와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작품을 한번 연출해 보자고 생각했거든요. ‘어떤 이야기에 내 시간을 투자하면서 인생을 보내야 내일 죽어도 아깝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대본을 정말 열심히 찾았는데, 제일 좋았던 게 <곁에 있어도 혼자>였어요.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사고를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낼 수 있어서 선택했어요. 결혼이라는 소재 하나를 두고 형제자매끼리 다투는 이야기인데, 결혼뿐만 아니라 모든 걸 하나로 규정지어서 해석할 수 없는 게 인간의 삶이잖아요.

 

그리고 그때 받았던 신작 대본들이 저에게는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주제가 너무 명확하고, 연기가 꼭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도록 대사가 쓰여 있었고, 심지어 내가 일상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대화가 고스란히 대사에 담겨 있어서 불편한 감각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에 고른 게 공교롭게도 일본 작품이었고요. 아직도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말이 포장되어 있던 대본을 제가 선택했던 것 같아요. 화를 내도 그 감정을 100% 풀어내는 대사가 아니라, 눌러놓고 조심스럽게 꺼내는 대사를요. 사실 이번 공연의 “개새끼야.”가 첫 욕이에요.


 

정말요?

 

네, 욕이 있으면 작가님한테 걷어내겠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이미 거친 세상에 사는 관객들이 극장에 돈을 내고 여가 활동, 취미 활동 하러 오셨는데 여기서까지 세상의 욕을 듣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컸어요. 그렇게 하나씩 걸러내다 보니까 정제된 단어만 선택한 대본들이 좋았던 거고요.

 

물론 저도 지금은 이해하는 과정 중에 있어요. 웃음을 이해한 것처럼 욕도 인물의 심리나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반영할 수 있는 언어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전히 제 작품을 보러 오셔서 욕을 듣고 피로를 느끼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은 남아 있어요. 아마 제가 피로를 느껴서 그런가 봐요.


 

그런 작품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런 작품들도 물론 좋지만 굳이 제가 만들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직은 제가 욕의 언어로서의 역할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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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은 SF이기도 하잖아요. 연극에서 이제 SF라는 장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SF가 매력적인 이유는 역사적 고증 없이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상상을 해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신기한 게 그러다 보면 '나도 지금보다는 잘 살아야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게 큰 장점이 아닌가 싶어요. 일어났던 일을 고증하거나 타인의 삶을 감각해서 만들어 내는 것도 정말 좋은 작업이지만,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비관적으로 그려봤을 때 조금 더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저는 그게 SF의 장점 같아요.

 

 

 

더 이해하고 덜 편협한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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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실까요?

 

코로나19 이후로는 저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다 보니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죠.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중단되는 일도 있었고, 그동안 혼자서 글을 많이 썼거든요. 그러던 중에 이 작품을 좋아해 주는 ‘서른’이라는 컴퍼니를 만난 건데, 앞으로도 <소실>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컴퍼니랑 배우가 매번 바뀌고 디자인스태프들이랑 저만 같이 다녔거든요. ‘이 작품이면 우리가 시간 빼서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인데, 1년에 한두 개라도 이런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나중엔 또 모르겠어요. 몇 년 뒤에 기자님 뵀을 때 “저 이제 욕의 묘미를 알았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죠!(웃음)


 

그러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연극을 하면서 제가 많이 성장하는 기분이에요. 아마 만드시는 모든 분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싶은데,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조금 덜 편협한 시선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연극 작업을 놓고 싶지 않아요. 낭독 공연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하려고 해서, 대본도 열심히 보고 있고 3년째 매년 낭독 공연을 올리고 있어요. 하루짜리니까 수익금이라고 해 봤자 얼마 안 되지만 좋은 곳에 기부도 했고요. 돈을 많이 버는 집단이 아니라 사실 기부가 부담스럽기도 한데, 해마다 힘든 곳, 사회에서 소외된 곳을 다 함께 찾고 관객분들이 주신 소중한 돈을 그렇게 쓸 수 있다는 게 의미 있잖아요. 연극이 제게 더 나은 사람으로 살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 같아서 앞으로도 계속 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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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맥락으로 ‘연극in’에 게재된 연출님 관련 글을 봤는데, 연극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책 읽다가 잠드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연극과 관련된 모든 게 즐거웠다고 하셨더라고요. 2022년 연출님께 '연극'이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독하게 했을까, 건강이 최고인데(웃음). 저에게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불안감이 있는 것 같아요. 성실함이 제 최대 장점이거든요. 그 성실함으로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필요한 역할 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연출이었던 거고요. 과거에는 제가 느끼는 재미, 저 혼자 성장하는 기분이 좋았다면 지금은 즐기기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어요. 극장에 오신 분들의 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내게 하느냐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관객분들이 후회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세상에 대한 관심도 더 생겼고요. 그전까지는 조금 이기적이었다면 이제는 관객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면서 관객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 때문에 불안하실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 걱정했는데, 프리뷰 기간 동안 극장을 채워 주시고 또, 초연, 재연을 봐 주신 분들이 다시 찾아와 주시기도 해서 감사했어요. 이 작품은 나이가 들수록 보이는 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다음에 하더라도 같이 와서 즐겨 주셨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빌런'들도 많고 짜증 나는 일도 너무 많을 텐데 그런 와중에 잘 보면 세상을 살 만하게 느끼게 해 주는 좋은 분들도 많으니까 인간을 너무 미워하지 말고 같이 잘 살아 보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저도 노력하고 있는지라 쉽진 않지만요. 이 정답 없는 공연에 정답을 만들어 주는 건 관객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해서 열심히 찾아보고 있으니까, 공연을 보신 후에 각자가 생각하신 정답을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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