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7살 꼬마는 몰랐던 것들 [음악]

글 입력 2022.08.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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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에 빠진 7살 꼬마



나는 또래보다 대중가요에 일찍 눈을 떴다.

 

친구들이 구구단을 외울 때 지오디의 ‘거짓말’을 따라 불렀고, 친구들이 티비 만화를 챙겨 볼 때 가요 프로그램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늘 손에는 노란색의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었고, 그 안에는 처음으로 산 지오디의 4집 앨범 테이프가 들어가 있었다.

   

테이프 반쪽이 다 돌아가면 테이프를 꺼내 뒤집어 재생하고, 그 수고스러운 과정을 무한 번 반복했다. ‘무한 번’이라는 단어에 과장이 없을 만큼 질리도록 들었다. 명반은 시간이 흘러도 명반인지라, 성인이 된 후에도 꾸준히 찾아 들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 눈을 감는 버릇은 여전했지만, 노래와 앨범을 이해하는 깊이는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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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청춘


 

어른이 된 나는, 지오디의 앨범이 당시 아이돌 음악에서 얼마나 혁신적인 앨범인지 알게 되었다.

 

'IDOL'은 한국어로 '우상'을 뜻한다. 누군가에게 우상이 되기 위해서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기에 아이돌은 또래들이 가지기 어려운 것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매일같이 누릴 수 없는 예쁘고 멋진 모습과 화려하고 환상적인 일상을 말이다.

   

하지만 지오디 4집 앨범은 ‘청춘’을 이야기하면서 아름답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꺼내 놓는다. 인생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조금은 찌질한 혹은 대담한 연애사를 풀어놓기도 한다.

 

분명 아이돌의 성공 공식과 거리가 먼 도전적인 앨범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앨범이었지만, 지극히 평범한 청춘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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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고민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 4집 앨범, '길'

 

 

앨범은 멤버들의 솔직한 고백을 담은 인트로로 시작한다. 멤버들은 인기, 성공이 다 사라진 뒤 자신은 어떤 의미로 살아가야 할지 이야기한다.

 

인트로가 끝나고 두 번째 트랙인 ‘길’의 반주가 시작되는데, 마치 하나의 노래인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멤버들의 심경을 생생하게 담은 인트로는 ‘길’이라는 노래에 필연성을 부여하며 진정성을 더한다.

   

'길’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아이일 때는 어른들이 정해 놓은 규칙과 질서를 따르며 살아간다. 어른이 되면 구속에서는 벗어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해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지만 노래 말미까지 답을 찾지 못한다.

 

‘남들이 시키는 대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일지 모른다.

 

 

 

쿨하지도 멋있지도 않은 이별


 

 

난 그대밖에 몰라 그래 아직도 난

이렇게 바보같이 살아

다 나를 놀리지만 고개 돌리지만

그래도 그대밖에 몰라

 

- 4집 앨범, '바보'

 


공주님과 왕자님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것이 동화 속에서 배운 사랑이다.

 

사랑은 늘 해피 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랑은 녹록지 않았고, 이별마저도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앨범에서는 바로 그 지점을 보여준다. 쿨하지도, 멋있지도 않은 현실적인 이별을 말이다.

 

자신을 떠난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상처받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노래 '바보', 그녀에게서 이별의 낌새를 눈치채고 사랑을 체념하는 노래 '나는 알아', 자신만이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며 돌아오라고 간절하게 외치는 노래 '니가 있어야 할 곳' 등이 있다.

 

이별 노래라면 잔잔한 발라드라는 공식을 깨고, 빠른 템포에 강한 비트까지 더해져 세련됨과 신선함이 느껴지는 이별 노래들이다.

 

 

 

과감하고 대담한 연애


 

 

뭐니 뭐니 해도 그 무엇보다

너의 키스가 좋아서 너를 만나

뭐니 뭐니 해도 니가 싫지만

너의 손길이 좋아서 너를 만나

 

- 4집 앨범, 떠나지 못하는 이유

 

 

요즘은 과감한 연애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과거에는 음지에서 이루어졌던 이야기들이 공중파라는 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다뤄지니 놀라울 뿐이다. 유교걸로서 시대의 변화가 익숙하지 않았는데, 웬걸 20년 전의 나는 이미 노래로 듣고 있었다. 앨범에서는 20대의 과감하고 대담한 연애를 다루고 있었다.

 

남자 친구가 있다는 여자에게 끈질기게 대시하는 노래 '난 남자가 있어'와 그녀와 헤어지고 싶지만 스킨십이 좋아서 떠날 수 없다는 노래 '떠나지 못하는 이유' 등이 있다. 순수한 아이돌의 이미지에 반하는 노래이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끈적거리거나 느끼하지만은 않다.

 

김정은 배우의 내레이션은 자연스러운 서사를 만들고, 박준형 특유의 유쾌한 랩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

 

이 앨범이 벌써 20년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나의 시간도 훌쩍 지나갔음을 느낀다.

 

어렸을 때는 '좋다'와 '싫다'로만 표현했던 나의 감상은 어느새 장문의 글로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한결같다고 믿었던 나의 취향은 조금씩 변해 좋아하는 가수도 여러 번 바뀌고, 좋아하는 앨범도 많이 생겼다. 시간은 참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여전히 이 앨범을 듣고 있다는 것과 들을 때마다 여전히 가슴이 뛴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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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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