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애정이 불러일으키는 다음 단계: '엮고, 만들다' - 도서 '콘텐츠 만드는 마음'

글 입력 2022.08.0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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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하는 사람에게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보고, 그것들을 자기 내면 고유의 질서에 따라 엮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p. 10)
 


책, 영화, 전시, 음악, 영상 가릴 것 없이 콘텐츠라면 보고 듣고 즐기고 리뷰까지 올리는 사람들이라면 이 문장에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관심을 끌어당긴 콘텐츠를 분석하고,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미까지 고찰해 어떠한 형태로 남겨 놓는 이들이라면. 나아가 그 행위를 통해 그 콘텐츠를 ‘영업’까지 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크게 공감할 것이다.

 

감상, 후기, 영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콘텐츠 유통 행위를 거듭할수록 머릿속에는 콘텐츠들로 이뤄진 그물이 생긴다. 그리고 그 그물에 묶인 콘텐츠들은 감상자이자 유통자인 누군가의 가치관, 소재에 대한 흥미, 감상의 강렬함 정도에 따라 그물에 자리한 위치와 크기, 중요도가 달라진다.

 

그 그물에 걸린 것 중에서 작품을 하나씩 떼 내어 리뷰를 올리고 그 작품의 감상을 간접적으로 독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이 본 콘텐츠들을 정리, 분석, 편집하여 또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 제공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 소개할 도서 <콘텐츠 만드는 마음>의 저자 서해인 같은 경우이다.

 

그는 대중문화 전반을 다루는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3년 가까이 발행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 표지.jpg

 

저자의 생활은 ‘대개 보고 있던 것을 계속 보거나, 봐야 할 것들을 새로 추가하는 방식으로 채워져 있다.’(p. 6) 그래서인지 책을 구성하는 세 개의 큰 목차 제목도 저자의 생활상을 반영했다. 제목들은 참 담백하게도 1부 보는 사람, 2부 만드는 사람, 3부 일하는 사람이다.

 

1부 ‘보는 사람’에서는 저자가 일상 속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월평균 120여 편의 콘텐츠를 감상하는 그는 콘텐츠를 병렬적으로 소비한다. 한 작품을 보는 동안에 다른 여러 작품을 또 소비하고 있는 식이다. 영화, 책, 음악, 팟캐스트, 티저 영상과 포스터 등 소비하는 콘텐츠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렇게 수많은 콘텐츠를 감상하는 저자를 그저 ‘보고 마는 사람’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그 콘텐츠에 대해 뭔가를 읽고 쓰는 사람’이 되게끔 만드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 동력이 저자가 정한 하나의 체크리스트에서 엿보인다. 바로 ‘콘텐츠의 단점을 말하고 싶을 때의 체크리스트’이다. 다른 창작자의 콘텐츠를 이토록 소중히 하는 마음이라면 그 애정이 다음 행위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체크리스트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콘텐츠의 맥락(또는 세계관)을 익히는 데 충분히 시간을 썼는가.

2) ‘고객이 왕’이라는 마음으로 콘텐츠를 보고 있지는 않았는가 되돌아보기.

3) 이 비판이 해야 하는 일인지,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일인지 가려보기.

 

 

어떤 드라마를 초반 1~2화만 시청한다면 해당 콘텐츠의 맥락을 다 파악해서 평가하기에 부족하다 할 수 있다. 요즘 세계관 정립에 숱한 노력을 기울이는 몇몇 K-Pop 아이돌의 타이틀곡 역시 그 아이돌 고유의 세계관을 모른다면 가사를 반만 알아들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고객이 왕’이라는 마음으로 콘텐츠를 보는 것은 콘텐츠 창작자의 노고를 너무 쉽게 넘겨버리는 일이다.

 

나라면 이랬을 텐데-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저자가 말한 대로 창작자는 콘텐츠를 만들며 그 선택을 한 사람이고, 소비자는 그 선택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정당하고 생산적인 비판이 아닌 비난만을 위한 발언은 콘텐츠 창작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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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로, 저자가 발행하는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이 뉴스레터의 전신은 저자가 8년 전에 페이스북에서 만들기 시작한 영화 관련 카드뉴스였다. 당시 영화를 많이 보던 저자에게 저자의 친구들이 영화에 대해 자주 질문을 했다고 한다. 같은 영화에 대한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기 싫었던 저자는 아예 자신이 본 영화에 대한 평을 담은 카드뉴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저자의 새로운 콘텐츠,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로 발전했다.

 

발행인 서해인의 뉴스레터는 10일에 한 번씩 콘텐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의 고정 코너는 총 네 가지인데, 그 상세한 항목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지난 10일 동안의 콘텐츠 로그: 지난 10일간 발행인이 본 콘텐츠를 시청 날짜와 함께 모두 기입하는 코너. 독자가 직접 그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콘텐츠 이름 옆에 볼 수 있는 사이트나 구매처 등의 하이퍼링크를 걸어둔다. 이 코너에서는 콘텐츠에 대한 평은 일체 존재하지 않으며 발행인이 무엇을 보았는가만을 보여준다. 여기서 서해인 발행인이라는 콘텐츠 소비자가 어떤 사람인지 자연스레 드러난다.

 

2) 지난 10일 동안 가장 좋았던 것들: 길게는 10일 전, 짧게는 발행일을 기점으로 하루 전에 보았던 콘텐츠 중 가장 좋은 두 가지를 골라서 소개하는 코너. 평균 40여 개의 콘텐츠 중 단 2개를 골라 좋았던 이유와 평을 함께 밝힌다. 세 번째로 좋았던 콘텐츠를 너무 소개하고 싶어도 소개하지 않는다. 애초에 가장 좋았던 두 가지만을 밝히는 것이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3) 지난 10일 동안의 알라딘 보관함 로그: 알라딘이라는 온라인서점 사이트에서 지난 10일 동안 저자가 읽고 싶어 담아 둔 신간 도서들의 로그. 미리보기를 활용하여 이 책을 읽고 싶은지 아닌지를 파악한다.

 

4) 다음 10일 동안 기다려지는 것들: 큐레이션은 ‘기다림의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취지에서 진행하는 코너. 같은 기대감은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 진행하고 있다. 티저 영상이나 티저 포스터 등을 보고 그것이 왜 시선을 끌고, 왜 궁금한지 정도를 정리한다.


<콘텐츠 로그>의 전신이 반복되는 영화 이야기를 기피하느라 만들어진 카드뉴스라는 점도 흥미로웠는데, 이 뉴스레터를 둘러싼 다른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저자의 현실 인간관계와 기존 온라인 활동이 뉴스레터 발행 초기에 입소문을 타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 무에서 발생하는 구독자 수는 정말 얻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 역시 기존의 인간관계와 콘텐츠 만드는 삶에서 비롯한 관심들이 뉴스레터 구독으로 이어진 점을 언급했다. 물론 어느 지점부터는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콘텐츠가 가닿아야 한다는 점도 덧붙인다.

 

만드는 사람으로서 콘텐츠 소비자를 만족시켰을 때 얻는 뿌듯함보다 콘텐츠 만드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기쁨이 더 크고, 후자의 기쁨이 저자를 ‘만드는 사람’이게 한다는 말은 글을 연재하는 사람으로서 연재의 동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뉴스레터 시장은 아직 그 규모가 크지 않다. 유튜브에서는 상징적인 구독자 수를 채우면 유튜브 본사로부터 실버 버튼이나 골드 버튼을 받는다. 그러나 뉴스레터 시장은 그러한 성장 규모의 명확한 기준점과 눈에 띄는 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는 뉴스레터 신(scene)은 더 커져야 하며, 그로 인해 창작자를 위한 후원 동기도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리랜서 발행인으로서 3년여를 일해 온 저자는 3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지속해나갈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되는 태도를 전한다. 프리랜서 발행인으로서 저자의 마음가짐은 ‘효율이나 안정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로 인해 마음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기를 다짐한다.

 

업으로 삼는 일에의 다짐 만큼 중요한 것이 업무 중에 쌓인 피로나 부정적인 감정을 잘 처리하는 법이라 할 수 있다. 저자 서해인 역시 ‘일하다 생긴 잔여 감정을 알아봐 주고 풀어내고 떠나보내 주는’ 일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그는 그것을 처리하고 해소하는 방법을 ‘일과 나만 있을 때의 언어’를 갖는 것이라 표현한다. 더불어 저자는 업무 중에 느낀 긍정적인 감정을 돌아보는 일도 필요하다는 말도 남겼는데, 나는 그 부분이 퍽 인상적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데에는 사람들이 나름의 관심을 가지지만 업무에서 긍정적인 기분이 들 때는 그저 흘러가게 두기 쉽기 때문이다. 저자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는지, 자신감이 생겼는지를 민감하게 파악해 앞으로의 업무에서 더 의연한 대처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2년차 프리랜서 경력을 가졌을 때 저자가 자신의 업무 태도나 습관을 돌아본 장도 프리랜서 혹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유의미한 통찰을 줄 터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 본인이 한 다섯 가지의 실수가 언급되는데, 그중에서 특히 중요하다 여겨지는 것을 언급해 보겠다. ‘내가 나의 인사 담당자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부분이다. 프리랜서는 스스로 홍보해서 일을 잡고 혼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로 자신을 몰아붙이기 쉬운 경향이 있다. 이럴 때 자신이 자신의 인사 담당자라 생각하면 어떤 일을 하기에 무리인지 아닌지를 보다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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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저자 서해인의 <콘텐츠 만드는 마음>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현실적인 도움이 될 이야기들을 담았다. 그것도 보는 사람, 만드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라는 세 가지 측면으로 담아내 한 가지 면에 치우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콘텐츠 로그>의 고정 코너들에 대해 읽다 보면 지난 열흘간 자신이 본 콘텐츠를 정리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사실 필자가 그랬다. 노트에 지난 10일간 감상을 마친 콘텐츠를 적어 보았다. 얼마 전에 감상 노트를 마련해 더욱 수월했다.

 

 

김예지, <저 청소일 하는데요?> 07.24

서해인, <콘텐츠 만드는 마음> 07.27

셀린 시아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07.27

이연,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07.28

조셉 코신스키, ≪탑건: 매버릭≫ 07.28

 


적어 놓고 보니 열흘 동안 평균 40편의 콘텐츠를 감상한다는 저자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콘텐츠에 대한 애정이 어마어마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필자는 저자의 지난 10일간의 로그를 그대로 따라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감상 노트에 적어두지 않은 음악과 영상 콘텐츠는 그것을 감상한 횟수와 일자를 기억해낼 수 없었다. 지난 열흘 안에 신인 걸그룹 뉴진스(NewJeans)의 음악을 수도 없이 감상했다. 그래서 더 일일이 적기가 힘들었다. 내 손가락은 감상 날짜를 적어두기보다 그 걸그룹의 다음 뮤직비디오를, 곡을 또 재생하느라 바빴으니까.

 

이쯤되면 이렇게 느껴진다. 이 얼마나 집요한 애정인가. <콘텐츠 로그>라는 뉴스레터가 프리랜서 발행인인 저자에게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업무의 성실함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성실함을 넘어선 집요한 애정만이 유튜브에서 끝까지 시청한 영상 하나하나, 온라인에서 읽은 칼럼 하나하나까지 기록하여 ‘10 days log’로 엮어내는 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나는 꽂힌 콘텐츠가 있으면 몇 번이고 반복해 감상한다. 특히 음악과 뮤직비디오에서 그런 경향이 강하다. 하도 반복해 감상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봤는지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직접 ‘지난 10일간의 콘텐츠 로그’를 작성해 보니 적어도 어떤 곡이나 뮤직비디오를 처음 접한 날과 그날의 간단한 감상을 기록해 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직비디오를 사랑하고 그것에 잘 매혹되는 만큼, 이 장르의 콘텐츠도 영화나 책만큼 내게 기록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고나 할까.

 

이렇듯, 누군가의 집요한 애정은 또 다른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어떤 애정을 일깨워준다. 보다 명확한 형체를 갖게 도와준다. 아마 이 책을 접한 다른 독자들도 무언가 하나씩 만들고 남기고 싶은 것을 자극받지 않았을까? 그러니,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을 자극받고 싶은 분이라면 서해인의 <콘텐츠 만드는 마음>을 읽어보시길. 애정이 만들어주는 다음 단계를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권한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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