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나의 생물 속 장기들처럼 음양을 연주하다 - 2022 여우락 페스티벌

그들의 오케스트라 연주에 빠져드는 이유
글 입력 2022.07.29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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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국립극장 2022 여우樂(락) 페스티벌.jpg

 

 

지난 7월 한달의 기간 동안 국립극장에서는 <2022 여우락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의 줄임말인 여우락 페스티벌은 장르 불문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 각자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매김해왔는데, 그 중에서도 필자가 관람하고 온 ‘지혜리 오케스트라’의 <너나: 음양>은 그러한 어우러짐을 가감 없이 보여준 무대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공연을 통해 오케스트라 연주를 접하면서, 가장 생경하게 와 닿았던 것은 연주자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오케스트라 장르 자체가 합주를 통해 하나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니만큼 연주자들 사이의 합이 잘 맞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게 지혜리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놀라움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들이 단지 하나의 곡을 연주하기 위해 모인 개개인들이 아니라, 연주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하나의 줄로 이어진 것만 같은 시너지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그들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물 속에서 각각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는 장기들 같았다.


연주가 진행되며 당연히 각 악장마다 포커스가 집중되는 악기가 있고, 모든 악기가 매순간 쉬지 않고 연주를 이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한 호흡을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비는 시간을 이용해 악기를 점검하고, 목을 축이며 다음 악장을 위한 준비를 하는가 하면, 다른 악기의 연주에 리듬을 맞춰 발을 까딱 거리기도 한다.


이렇듯 지혜리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그 어떤 결속보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가고 있었기에, 이번 공연의 주제인 <너나: 음양>을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공연은 이례적으로 ‘한국 전통 음악’을 소재로 본래 극단이 가지고 있던 모던 재즈 스타일을 입혀 재해석한 곡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대 위에는 흔히 오케스트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드럼 기타 피아노 플루트 트럼펫 등의 악기뿐 아니라 우리 전통 악기인 징과 장구 등도 등장했다. 도저히 상상해볼 수 없었던 이 악기들의 조합이 가능했던 이유를 필자는 앞서 언급했던 오케스트라의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장구와 드럼을 맡은 연주자들은 악기를 통해 무대 위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화합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지혜리 오케스트라_너나음양_공연사진(3).JPG


 

그렇다면 이쯤에서 극단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지혜리 지휘자의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거대한 생물이라면, 그녀는 컨트롤 타워, 즉 ‘뇌’를 담당하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스물이 넘는 악기들의 템포와 속도, 포인트를 미세하게 컨트롤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언뜻 팔이 시원하게 드러나는 슬립 원피스를 입고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필자의 학교 선생님은 애국가를 부르는 조회 시간마다 돌아가며 모든 아이들이 지휘를 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그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저 비슷한 팔동작을 반복하면 그만인 것처럼 보였고 그렇기에 쉬워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차례가 다가온 날 당당히 앞에 나섰던 그날, 당혹스러움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솔하는 일인데도 조금씩 미묘하게 어긋나는 그들의 리듬을 하나로 통합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해변의 모래 알갱이들처럼, 언뜻 보면 균일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조금씩 틀어진 부분이 있고, 그것을 통합해 하나의 화합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결국, 애국가가 진행되는 내내 툭툭 튀어나가는 이 목소리, 저 목소리에 끌려 다니며 허둥지둥 지휘를 마치고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그토록 다양한 소리를 내는 악기들을, 특히나 장르가 다른 동서양의 악기들의 연주를 통솔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음과 양이라는 주제를 표현해 낸 지혜리 지휘자의 역량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음악 속에 자신을 내던진 채 마치 춤을 추듯 리듬에 맞춰 몸을 까딱거리며 여유로운 지휘를 이어가던 그 뒷모습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지혜리 오케스트라_너나음양_공연사진(11).JPG


 

더불어 이번 공연의 여운이 더욱 길게 느껴졌던 데에는 무대와 조명의 구성의 역할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처음 빈 무대를 접했을 때는 어쩐지 심플하지만 심심한 구성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리를 채우고,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자 왜 그토록 단순한 구성의 무대 세트가 이루어져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3개의 단으로 길게 이어진 연주자들의 자리는 각각이 맡은 악기에 따라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때문에 그들이 내는 소리는 최고의 합으로 이루어져 관객석으로 전달되었다. 또한 어떠한 차등도 없는 자리의 구성은 연주자들 각각이 어떤 모습으로 연주에 임하고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주었고, 덕분에 그들이 악기를 통해 주고 받는 대화의 흐름을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무대와 마찬가지로 심플한 조명의 구성도 공연의 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통해 각 악장의 두드러지는 연주자들에게 주목하게 하여 이 장면에서는 어떤 악기의 조합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알 수 있었고, 곡의 무드에 따라 달라지는 색 조명 또한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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