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컵 하나가 깨지기까지의 이야기 - 연극 '빈센트 리버'

글 입력 2022.07.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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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빈센트 리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컵 하나가 깨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지만, 컵이 깨지기까지 수많은 요인이 작용했음을 곧 깨닫는다. 컵을 너무 세게 내려놓았거나, 컵을 쥔 손이 미끄러웠거나, 완충재가 충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사람 한 명이 죽는 일에는 얼마나 많은 요소가 관여할까. 우연한 불행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 이면에는 수많은 요인이 겹쳐 있다.

 

<빈센트 리버>는 이미 컵이 깨진 상태에서 시작되는 연극이다.

 

극의 제목이자 아니타의 아들인 빈센트 리버는 이미 세 달 전 동성애 혐오 범죄의 피해자로 살해당했다. 아들을 잃은 것 못지않게 아니타를 괴롭게 하는 것은 하나뿐인 그의 아들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다. 이웃들의 손가락질에 도망치듯 동네를 떠나 이사 온 어수선한 집은 아니타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 극의 또 다른 주인공 데이비는 이 집에 불쑥 들어오게 된 불청객이다. 그는 자신이 빈센트의 시체를 최초로 발견했다며, 시체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무작정 아니타를 쫓아다녔다고 말한다.

 

 

(22)빈센트 리버_공연사진_우미화01.jpg

 

 

빈센트를 잊고 싶은 데이비와, 빈센트를 둘러싼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은 아니타.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빈센트와 별 연관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툭툭 내뱉지만, 빈센트를 접점으로 만난 두 사람의 대화는 결국에는 빈센트로 수렴된다.


아니타가 어린 나이에 남편 없이 낳아 애지중지 기른 하나뿐인 아들, 초등학생 때 아니타가 직접 만들어준 날개를 달고 무대 위에서 천사를 연기한 소년, 미술사에 푹 빠진 도서관 직원. 그러나 그것이 빈센트의 전부는 아니다. 아니타가 모르는 빈센트의 일면은 데이비의 입에서 나온다.

 

동성애자이고 때때로 밤을 새워 인터넷 섹스를 하는 사람, 그리고 데이비를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 그 또한 빈센트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합치면 입체적인 한 명의 인간, 빈센트 리버가 관객 앞에 선다. 그리고 아니타와 데이비는 그런 빈센트를 마음 깊이 사랑했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빈센트를 향한 사랑이 짙게 묻어난다. 그때서야 관객은 이웃의 험담처럼 '호모' 따위가 아니라, 아니타의 소중한 아들이자 데이비의 연인이었던 빈센트 리버의 죽음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22)빈센트 리버_공연사진_이주승01.jpg

 

 

빈센트는 눈 오던 겨울밤, 데이비와 동성애자들의 밀약 장소로 유명한 버려진 기차역 화장실에 갔다. 다른 사람에게 동성애자인 것을 들킬까 봐 데이비를 먼저 내보내고 화장실에 머물던 그는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술 취한 패거리에게 폭행당해 사망했다. 빈센트에게 일어난 일을 들으며 우리는 자연스레 그가 죽지 않을 수도 있었던 방법을 생각한다. 시간을 돌려 빈센트를 폭행한 이들을 다른 길로 이끌었다면 그는 살 수 있었을까.


사실, 사건을 막기 위해 꼭 그날 밤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가능성은 여기저기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데이비가 벗은 남성이 나오는 잡지를 사 들고 왔던 오래전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동성애자를 모욕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데이비가 어머니에게 빈센트를 아무렇지 않게 소개할 수 있었다면. 또는 동성애자라는 게 밝혀지는 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서 처음 시비가 붙었을 때 데이비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면. 아니 애초에 두 사람이 안전하게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면.

 

남자 둘이 손을 잡고 걸어도 아무도 힐끗거리지 않는 세상이었다면….

 


(22)빈센트 리버_공연사진_정재은,이주승01.jpg

 

 

요인을 하나씩 짚어나가다 보면 아니타가 재봉사로 일하던 시절 회사 사장과의 불륜으로 빈센트를 임신했을 때 겪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당시 직원들은 아니타의 자리와 일감에 온통 옷핀을 꽂아놓았다. 물론 옷핀 하나는 대수롭지 않다. 아니타의 말마따나 옷 만드는 곳에 옷핀이 있는 건 당연하고, 손에 찔려도 따끔할 뿐 큰 고통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옷핀이 수십, 수백 개가 되면 누구라도 거기서 명백한 악의를 읽어낸다.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나중에 우연히 옷핀 하나를 발견할 때도 그 옷핀이 나에 대한 악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일 뿐인지 고민해야 한다. 매 순간, 모든 공간에서 나를 찌를 옷핀이 있지는 않은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어디에서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게 된다.

 

 

(22)빈센트 리버_공연사진_우미화,강승호02.jpg

 

 

우리 사회의 혐오는 옷핀과 닮았다. 빈센트의 죽음은 크고 작은 ‘옷핀’들이 쌓인 결과다. ‘게이’가 욕으로 쓰이는 사회에서 빈센트의 죽음은 갑자기 일어난 사고 같은 게 아니다. 시간을 돌려 사건이 일어난 밤 범인들을 막는다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건 그는 또 다시 죽음을 맞을 것이다. 어머니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했던 빈센트에게 세상은 옷핀투성이가 아니었을까.


작품 속에서 빈센트의 죽음은 끔찍하리만큼 상세하게 묘사되는데, 이때 조명이 어두워지고 데이비가 관객석으로 내려와 대사를 이어가며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의 허망하고도 잔혹한 죽음을 모두 똑똑히 들으라는 듯이 말이다. 극의 부제처럼, '그날의 진실이 쏟아진다.' 피할 수 없는 진실은 극의 절정에서 매우 크고 선명히 들리는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관객의 마음속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아니타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아끼던 컵이 깨졌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니타는 깨진 컵을 들고 절규한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아니타와 데이비가 사랑하던 빈센트 리버는 이제 세상에 없다. 앞으로도 우리는 누군가가 사랑하는 이들이 어떤 단어로 규정당한 채 죽는 걸 바라만 봐야 하는 걸까. 아니타와 데이비가 무대 위 빈센트의 죽음을 돌이킬 수 없다면, 무대 바깥의 우리는 무엇을 돌이킬 수 있는가. 마지막에 덩그러니 무대에 남겨진 아니타가 묻는 듯하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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