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을 쓴다는 것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7.2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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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반가운 메일이 도착했다. 아트인사이트 정식 에디터가 되었다는 메일이었다. 두 번의 수습 과정을 거치고,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올리는 에디터로 4개월 동안 활동하게 되었다.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태그를 볼 때마다, 활동란에 차곡히 쌓여가는 글을 볼 때마다 뿌듯해진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다. 그전의 나는 예술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선생님인 부모님 덕택에, 집에 이면지가 넘쳐났고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엄마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가장 즐겁고 소중했다. 가족끼리 여행을 갈 때도 이면지랑 연필, 지우개를 항상 챙겨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을 그리는 도구가 24색 사인펜에서 2B 연필, 샤프로 차근차근 변했다. 하지만 화가 혹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는 꿈은 변함없었다.


중학교 2학년 즈음부터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식었다. 다른 사람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건 좋았지만, 백지에 나 홀로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미술 학원을 다닌 적이 없어서 실력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던 탓인지, 어느 순간부터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실력을 자책할 때가 그리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고 느끼는 때를 넘어섰다. 학생들에게 악명 높은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자연스레 단어를 외우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문턱 앞에서 화가의 꿈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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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는 음악이 채워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과 비슷하게 아이돌 팬을 자처하고, 음악 생방송 채널을 챙겨 보면서 음악을 접했다.

 

당시에는 전곡 재생, 자동 재생이 가능한 블로그가 많았다. 유명한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여러 가수의 노래를 접할 수 있었다. 블로거가 올린 모든 포스트를 섭렵하면서, 아이돌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인디밴드 음악, 다이나믹 듀오와 프라이머리를 비롯한 힙합/알앤비 음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음악을 통해 맘껏 표현하는 아티스트들은 그렇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음악을 들을 때, 듣고 있는 곡과 관련하여 모든 걸 꿰뚫고 있어야만 비로소 갈증이 해소되었다. 어떤 곡에 꽂히면, 그 곡이 수록된 앨범의 전곡을 돌려야 직성이 풀렸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생기면 스케줄, 인터뷰 전문을 통달해야 했다. 힙합에 빠져있을 때는 장르 자체에 매력을 느껴 국내외 할 것 없이 장르에 대한 모든 정보를 섭렵하고자 했다. 힙합 라디오 채널이나 모든 유튜브 영상을 구독해서 훑었다. 음악과 관련해서 아는 게 많아질수록, 나는 더욱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수학 점수가 높았다. 유일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은 수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수학 실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늘 새로운 음악을 틀어놓고 공부를 했다. 맛있는 반찬이 나오는 날 급식 시간만큼이나 자율학습 시간이 기다려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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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에 대한 애정의 크기를 남들과 비교하는 건 경솔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당시엔 주변에 나만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자신했던 것 같다. 내가 듣는 음악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늘 목이 말라 있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보다 인터넷 세계에서 음악 커뮤니티를 둘러보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나의 하루 일과엔 학교가 끝나고 핸드폰을 받자마자 수시로 게시글을 확인해야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음악 커뮤니티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게시글은 아티스트 앨범에 대한 심도 있는 감상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상 깊었던 앨범을 주제 삼아 그 앨범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아쉬웠다면 어느 부분이 아쉬웠는지 논리정연하게 글을 쓰곤 했다.

 

음악이 갖는 오묘한 청각적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무척이나 멋있는 일로 다가왔다. 비평글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평소 자주 듣는 곡이나 앨범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글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음악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접한 후로는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를 듣기 좋아서라는 단순한 말로는 풀어내기 어려움을 깨달았다. 음악 비평글을 읽는 시간은 곧 내가 음악을 '왜' 사랑하는지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음악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음악과 관련된 글을 쓰고 싶다는 작은 꿈을 키워나가는 시간이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오래전부터 존재한 반면, 글을 본격적으로 쓰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로 결심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나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 닿는다는 것은 교감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 검열의 재판대에 나 자신을 세우는 일이기도 했다. 타인의 시선에 심히 민감한 나에게 글로써 나를 표현하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건 쉽지 않았다. 친밀한 사이의 친구나 가족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든 모습을 드러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부끄러우면서 망설이기를 반복했다.

 

남들이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할 때마다, 나의 발목을 붙잡는 자신감이 결여된 생각들이 스멀스멀 피어 올라왔다.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 건지 의심했다. 지식이 전무하면서 글을 쓸 수나 있는 걸까. 글을 통해 부족한 논리와 지식이 들통나버리는 건 아닐까. 내가 다듬은 문체들은 논리적인 측면에서 단단하지 않으면서 괜히 겉멋만 잔뜩 들어 보이는 문체는 아닐까. 내가 만든 허상의 평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지 끊임없이 검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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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다.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통해, 2-3편의 글을 용기 내어 업로드하면서부터다. 그동안 글을 쓰는 사람들은 충분한 지식, 그리고 그 지식을 흥미롭게 설명할 수 있는 기술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감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진정으로 확신이 드는 순간은 글을 쓰기 전이 아니라, 바로 글을 쓰고 난 후일 지도 모르겠다. 내가 글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독일의 사상가 훔볼트는 주체가 언어 구조 속에서 사고를 생성해나간다고 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생각이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모국어)가 내장된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사유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나 역시 수정을 거듭한 문장들로 하여금 '내가 이만큼 알고 있구나'를 멀리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머릿속에 오랜 시간 머물던 활자들이 안에 있을 때는 형편이 없어 보였지만, 막상 밖으로 꺼내 보니 자신만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생각 속에서 품던 글자와 손끝에서 태어난 글자는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글을 쓰면서 끊임 없이 부유하던 생각들이 드디어 정착하기 시작했음을 체감했다.

 

좋은 글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지닌 글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고 진정으로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 역시 나의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때다. 하지만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하면서 당장은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싶다.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리하여 너는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나의 글이 내 마음을 먼저 움직여야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을거라 믿는다.


나에게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여 자신감과 용기가 새어 나가는 마음의 틈이 존재한다. 그 틈새를 글로 하여금 메우고 싶다. 글을 통해 더욱 단단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내가 쓴 글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줄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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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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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조
    •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여 자신감과 용기가 새어 나가는 마음의 틈이 존재한다...그 틈새를 글로 메우고 싶다...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예전부터 조잘조잘 얘기해주었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한 고민들을 해오고 있었다니 놀랍다. 너의 글을 읽으면, 널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앞으로도 쭉 읽을게. 너의 끼를 마음껏 뽐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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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피
    • 2022.07.25 2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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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조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을 헤아려주는 소중한 친구가 있어서 든든하고 기쁘다 ☘️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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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자유롭고싶어
    •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에 글이란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멋있어 글을 시작했다는 것, 글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부터 그 글로 나의 생각을 만들어 나가고, 나의 세계를 넓혀나가고 싶다는 것,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좋은 글이라는 점까지 소름돋게 저와 일치해서 너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저 또한 머릿 속을 부유하는 것들을 잡아 글로 써 내려가는 에디터를 하고 있지만, 이렇게 명쾌하게 제 마음을 표현해준 글은 처음이네요. 좋은 문장들 마음 속에 품어 갈게요. 감사합니다 현영 에티터님 오늘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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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피
    • 2022.07.25 22: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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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자유롭고싶어글과 관련해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셔서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드네요. 글로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합니다. 오늘의 벅차는 감정을 잊지않고 앞으로 더욱 진솔한 글을 쓰기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에게도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함께 글을 써나가면서 자유를 쟁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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