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양성의 지뢰밭에서도 거침없이 나아가는 [도서/문학]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글 입력 2022.07.2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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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서서와 결합해 완성되는 읽기


 

책은 개인의 서사와 결합하며 내용을 완성한다. 추천해준 사람, 책을 처음 만난 장소, 읽게 된 때의 상황 등 독자의 개인적 서사에 따라 같은 책 한 권도 본래의 의미를 더욱 확장한다. 이 책에 담긴 내 서사는 이렇다. 뼛속까지 문과인 나에게 과학적 사유를 보여주신 고등학교 시절 생물 선생님께서 고향 동네에 비건 베이커리 겸 서점을 운영하게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차로 20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그곳에 어거지 단골이 된 내가 세 번째 방문했을 때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을 늦게나마 읽었다.


선물할 책을 고르러 들렀다가 공연히 다른 책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출국을 이틀 앞둔 때에 짐을 늘릴 수 없어 아쉬운 걸음으로 돌아섰던 그날의 기억은, 외국 땅에서 무료함에 허덕일 때마다 생각이 났다. 그 책을 사 왔어야 했는데. 그러다 예스24 북클럽에 무슨 책이 있나 스크롤을 내리다 이 책을 발견한 거다.


고등학교 때 기억과 졸업 후 8년이나 지나고 만난 경험을 종합하면 선생님은 선봉에 서는 영웅이나 일선에서 약자를 돕는 테레사는 아니셨지만 '인간의 어떤 특성이 소외를 만드는지' 알고 가르치시는 분이었다. 그런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이라 꽤 기대를 하며 읽기 시작했다. 제목이나 소개를 보고는 예상되는 미래의 나와 차별이라는 주제가 큰 관련이 없을 거라 단정지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동양인은 어떤 고충을 겪는지 한 번 보겠다는 안일하고 건방진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책을 읽은 후 감상은 완전히 달랐다. 나의 개인적 서사 때문인지, 저자의 따뜻하고 냉철한 시선 때문인지, 훌륭한 번역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뉴스에나 나오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가 같은 인종이란 틈에 숨어서 사는 나와 퍽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간만에 책에 몰입하는 환상적 경험을 선사한 책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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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저자(브래디 미카코)는 백인 남성과 결혼해 영국의 한 공영주택지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본인 여성이다. 아이의 노트에 끄적여진 한 마디를 제목으로 2018년에서 2019년까지 월간지에 연재한 글을 모아 이 책을 출간했다. 책의 내용은 명문 가톨릭 학교에 다니다가 전혀 다른 분위기의 동네 상급학교로 진학한 아이가 학교에서 겪은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보통 이민자의 삶을 다룬 책과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간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독자를 이민자의 사회에 끌고 들어가 몰입하게 하고 종국에는 독자까지도 이방인의 설움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다는 거다. 다문화를 구호처럼 외치고 있는 이 시대에 '인종에서 비롯된 차별'을 중심으로 이민자 내부의 갈등, 빈부격차로 인한 일상적 차별, 성 정체성으로 신음하는 사람들, 어른들의 실리에 제한되는 가치관의 실천, 어쩐지 구시대적으로 들리는 계급 간 배척까지 다양한 층위의 이방인다움을 다룬다. 늘어놓고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할 것 같은 갈등이지만 무서운 속도로 자라가는 아이의 시선에서 본 세상을 아이를 사랑하고 따뜻한 어른의 말로 풀어내, 어딘가 희망적이기까지 했다.


책을 다 읽고 표시해둔 곳을 다시 읽어보다가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한 문장을 발견했다. 아이가 다닐 학교를 참관하러 간 저자에게 그 학교의 교장이 한 말인데 앞으로의 삶에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표시했던 것 같다.

 

"그렇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구도 정체성이 하나뿐인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작가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분단이란, 여러 정체성 중 하나를 타인에게 덮어씌운 다음 그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정체성을 골라 자신에게 둘렀을 때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위에 언급한 수많은 사회 갈등에서 나는 남에게 어떤 정체성을 덮어씌웠고 어떤 정체성을 스스로 둘렀는가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낯선 땅에서 주류에 편승하려 내 몸에 두른 '다 같은 동북아시아'라는 정체성, 직업적 안정성을 위해 남에게 덮어씌웠던 근로 형태의 차이, 내 것이 아니라고 지나쳤던 설움 같은 것들이 무수하게 지나갔다.

 

 

 

엠퍼시를 무기로 세상과 부딪히는


 

'미래는 저 아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 세상이 퇴행한다든가 세계가 끔찍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이들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도 비슷한 양상의 갈등이 나타나지만, 갈등에 맞서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직접적인 차별의 언사를 한 친구를 여론의 힘으로 매도하기 보다는 잘못된 걸 지적해주는 친구가 되거나, 가난해서 헤진 교복을 입고 다니는 친구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교복을 건네는 방식을 고민하거나, 저를 대신해 차별에 대응하다 벌을 받는 상급생을 보고 인종 정체성의 몸살을 앓거나,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친구(LGBTQ의 Q, Questioning)에게 급하게 정할 필요가 없다고 격려하는 등 그 방식이 어른의 그것보다 훨씬 성숙하고 포용적이다.


영국의 아이들이나 그럴 것이라 말할 수도 있고 우리나라 교육 체계의 문제를 꼬집을 수도 있지만 이러나저러나 아이들은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 해석은 약간은 시혜적인 어른들의 심퍼시(Sympathy, 누군가를 가엾게 여기는 감정, 누군가의 문제를 이해하여 걱정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아이들은 '남의 신발을 기꺼이 신어보는' 경험을 통해 엠퍼시(Empathy,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를 키워간다.


오늘날 우리는 포용성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산다. 차별과 폭력의 양상은 복잡다단해졌고 혐오의 뿌리는 더욱 공고해진 21세기, 다양성을 수용하고 포용성을 해석하는 지적인 작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감정이나 표현에 그치는 심퍼시를 넘어 나와 다른 신념이나 이념을 이해하는 능력을 뜻하는 엠퍼시를 강조하고, 엠퍼시를 갖춘 아이들을 믿고 그들의 성장을 기대한다.


"'노인은 모든 것을 믿는다. 중년은 모든 것을 의심한다. 청년은 모든 것을 안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지만, '여기에 아이들은 모든 것에 직접 부딪친다.'라고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저자의 말처럼, 차별과 다양성의 시대에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아는 체 하고) 모든 것을 의심하다 결국 모든 것을 믿어버리는 수순을 밟게 되겠지만 그런데도 미래를 긍정할 수 있는 이유는 다양성의 지뢰밭에서도 성큼성큼 걸어 나가며 모든 것에 직접 부딪쳐보는 사람들이 계속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영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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