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심해서 더 경이로운 자연 -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글 입력 2022.07.1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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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 놀랍고 신기하게 여김. 또는 그럴 만한 일.

 

‘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동안 특별히 그 단어를 좋아한다고 인식하진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글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경이로운’이라는 단어를 자주 활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들이 나의 평범한 일상 속 경이로운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는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의 필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경이로운 _ 평면(띠지유).jpg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는 스물한 명의 기고자들이 자연에 관해 쓴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나무, 바다, 새 등의 자연물을 대상으로 한 개인적인 경험들이 주를 이루며 중간중간 환경 오염에 대한 우려를 담아낸 글도 담겨 있다.

 

요 근래 나는 바로 소화하기엔 조금 버거울 정도로 어렵고 진지한 책을 많이 읽고 있었다. 꼭 책뿐만이 아니었다. 일, 인간관계, 진로, 정체성 등등 평생 우리의 곁을 따라 다닐 고질적인 고민에 머릿속이 매우 어지러운 상태였다. 과도한 생각으로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던 나에게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는 나무 아래 그늘에서 취하는 달콤한 휴식 같은 책이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책장이 가장 술술 넘어갔다. 이 책만 읽으면 삭막한 도시도 탁 트인 해변이 되는 기분이었다.

 

책에서 가리키는 자연의 종류는 다양하다. 한 가족의 화목한 시간을 완성한 해변도 있었고, 자기만의 주기를 살아가는 오래된 나무도 있었고, 정복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와 같은 산도 있었다. 여러 저자들이 묘사하는 자연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에게 무심하다. 그들은 능동적으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거나 해를 가하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뿐이다.

 

다음 웹툰 <고양이 장례식>(홍작가)에는 같이 키웠던 고양이의 장례식을 위해 이별 후 오랜만에 재회한 커플이 나온다. 만화에는 사귀었을 적 좋아했던 카페에 다시 가보려 했지만 카페가 없어지면서 시도가 물거품이 되는 에피소드가 삽입되어 있다. 그때, 한 인물이 영원히 자리를 지킬 줄 알았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허전해진 마음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면서 달랜다.

 

“산은 그대로라서 다행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실없는 농담에 불과한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이 꽤 좋았다.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나조차 예전의 모습을 잃어도 자연만은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거란 사실이 오랫동안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인상도 그러했다. 책에 수록된 에세이에서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내용의 글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저자들은 그저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었고, 그 복잡다단한 삶에서 곁을 지켜준 자연을 찬미할 뿐이었다. 무심한 자연에 느끼는 위안과 감동, 그것만으로 그들은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과 관련된 나의 경험도 자주 떠올렸다. 시골에서 보냈던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연 덕분에 나의 과거가 풍요로울 수 있었고, 자연 속에서 보낸 풍요로운 시간들이 지금 도시에 사는 내 마음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자연이 인간에게 함부로 존재감을 뽐낼 수 없듯이 인간 역시 자연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서로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끔 적정 거리를 지키는 것이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이 이상적인 관계를 먼저 깬 건 인간이다. 오래전부터 환경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옛날에는 이런 목소리가 소수 환경 운동가의 주장에서 그쳤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의 절박한 구호 신호처럼 들린다. 그토록 우려했던 환경 오염의 결과가 실시간으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심신이 지칠 때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건 고향에 있는 바다의 이미지다. 실제로 슬럼프 시기에 본가를 찾았을 때 매일 밤 집 앞 바닷가에 앉아 바닷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 바다가 내게 위안이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 늘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끝을 모르고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를 접하면서 나의 소중한 바다도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우리는 당연한 줄 알았던 모든 것이 당연해지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고양이 장례식>에서 그가 안심했던 산도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더는 이런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을 만큼 기후 변화는 턱 끝까지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이 아름다운 자연이 언제 어떻게 붕괴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연은 인간에 무심했지만 인간은 감히 그런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정복하려 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무심하게 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저지른 과오를 모두 수습할 때까지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자연에 무심해져야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기적과도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무심한 자연이 평범한 인간의 삶에 경이로움을 선물하는 순간이.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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