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5월의 행복에는 비밀이 있다

글 입력 2022.07.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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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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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는 날을 미리 알고 있는 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한참 생각했다. 출근길 버스에서, 주말 침대에 누워,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걷다가도 생각이 났다.

 

회사에서 친한 동기가 오랜 고민 끝에 퇴사를 한다고 했다. 친한 동기라는 딱딱한 말로 표현하기엔 어려운 친구였다. 한 살 어린 동기를 우리는 막내라고 불렀고, 나는 정말 그 애를 막내로 생각했다. 퇴사 이야기를 듣고 막내가 회사를 떠나는 날까지 두 달은 참 길고도 짧게 느껴졌다.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헤어지는 날을 손꼽아 세며 기다리는 마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영원히 떠나는 사람인 것처럼 작별 인사에 고민을 거듭하는 남겨진 나와 동기, 두 사람을 돌아보니 웃기기도 했다. 우리 셋은 평생을 알아온 소꿉친구는 아니었다. 입사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회사에서 올봄에야 아주 가까워졌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마음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두 달간 회사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에, 점심시간에, 퇴근 후에, 주말에 틈이 날 때마다 만나며 쌓아온 시간들이 있었다. 셋이서 신이 나게 돌아다니고 밤이 새라 이야기를 나눴던 날들이 있었다. 오늘의 에세이는 친구들에게 전하는 선물이자 고백이다.

 

 


5월의 행복에는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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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5월은 눈이 부셨다. 말 그대로 눈이 부셔서 한쪽 눈을 찡그리게 되는 날들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이거 어떡하지, 너무 행복한데?’ 생각이 드는 순간순간이 많았다.


이유를 찾아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우선 회사 일이 괜찮아졌다. 눈물 나게 힘들게 준비한 프로젝트는 생각한 것보다 좋은 성과를 나날이 보여주었다. 매번 실수투성이였던 것만 같은데 조금씩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게 스스로 느껴졌다. 같은 실수에도 해결할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고, 여러 가지 일이 몰려올 때 중요한 순서를 따져 차근차근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일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연속된 행복을 설명하기 부족했다. 화창한 날씨와 햇빛? 그것도 맞다. 그렇지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햇빛은 이맘때를 잊지 않고 찾아왔다. 다시금 돌아보면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행복의 시작엔 사람들이 있었다는걸. 이 봄에는 어떤 마음들이 오고 갔다.


어렵게 느껴지던 사람과 주마다 먹었던 저녁 식사 시간을 좋아했다. 맛있는 음식을 회사 돈으로 먹는 건 역시 즐겁지만, 이런저런 이야기, 회사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짠해서 미워할 수 없는 에피소드, 우리만 이해하는 농담을 나누는 게 기뻤다. 매번 어색했던 말과 말 사이의 틈이 채워지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와 서서히 가까워지며 정이 드는 것,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즐거웠다. 일에 익숙해진다는 건 일을 함께하는 이와도 마음을 나누며 익숙해지는 것도 품고 있다는 걸 느꼈다.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함께 있지 않을 때에도 나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 고단했던 날에, 심신이 다 지쳐 집 가는 길이 아득한 날에 내가 가는 길을 따라와 횡단보도 불이 켜지길 함께 기다려준 이가 있었다. 홀로 외근 가는 길이 무서울 때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내준 친구가 있었다.


실수를 할 때마다, 무언가 잘못했다는 생각에 휩싸일 때마다 너무 파고들지 말라고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손이 있었다. 깊은 밤 전화를 받아주는 목소리가 있었다. 재미가 없을 때 즈음이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 강연을, 새로운 전시회를 같이 가자는 이야기로 전화벨이 울렸다. 매번 잘못한 것들, 어그러진 결과에만 정신없이 파묻히다가도 그러면 번뜩 정신이 들었다. 한없이 고마우면서도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마음을 전할 줄 아는 사람인가 부끄러웠다.


사람마다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 참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랑은 걱정으로, 기다림으로, 가만히 있어줌으로 존재했다.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 생각보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형태가 다르고 방식이 달라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준 것 없이 많은 마음을 받았다는 사실. 오래된 일기장에서 나는 미래로 보내는 편지에 그 해에 내가 준 것은 잊고 받은 것만 기억하자는 마음으로 살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그 마음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

 

 


셋이서 나란히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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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에 다 받아 들기도 어려울 만큼 벅찬 마음을 많이 받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의 8할은 두 사람에게 있다. 퇴사로 문밖을 나선 친구와 함께 남은 친구. 별다를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에 소리 높여 웃고, 늦은 밤 걸어 내려가던 길거리에 무엇이 그리 즐거웠을까.

 

비슷한 유머 코드를 지녀 무엇이든 함께 웃고, 비슷한 것을 싫어해 함께 징그러워하던 순간들이 좋았다. 좋아하는 것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싶다가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들이 생겨 싫지 않았다. 그때부터 회사 생활이 전과 달라졌고, 회사를 나선 나의 삶도 전과는 달라졌다.


야근이 유독 많았던 때에는 퇴사하는 동기, 막내와 함께 밤늦게 사무실을 나서곤 했다. 텅 빈 사무실을 한번 뒤돌아보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 버스를 타면 돌아돌아 간다는 걸 알면서도 함께 버스를 타고 가고 싶었다. 버스를 함께 타는 한 시간 내내 우리는 쉬지 않고 회사에 대한 불만과 앞날에 대한 불안과 온갖 걱정을 털어냈다. 집에 돌아가는 그 길 덕에 끝이 보이지 않는 야근을 버틸 수 있었다.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버스를 탈 때면 생각했다. 기억은 공간에 새로운 색을 입힌다. 421번 버스는 이태원 구석구석을 지난다. 천성이 소란한 공간을 싫어하는 내게 이태원은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동네였다. 하지만 어깨에 기대어 집으로 향하던 그 골목골목, 한참을 돌아가던 그 길목엔 따뜻한 온기가 베어 있었다. 작고 귀여운 가게들, 세로 폭이 한 뼘 만한 가게들이 숨어 있었고, 이 공간을 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란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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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성큼 다가온 날에 친구와 광화문을 걸으면, 큰 폭의 길과 강가를 거닐면 햇볕이 따가웠다. 덕수궁부터 시청, 청계천을 거닐면 등이 흠뻑 젖는 더위가 느껴졌다. 여느 여름이었으면 싫다고 진저리 쳤을 더위가 어쩐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더위에 지쳐 헥헥 대며 걷는 길, 잠시나마 스치는 바람에 숨을 돌릴 때, 나는 그 산책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함께 걷는 친구가 좋았고 나와 다른 생각들, 나와 비슷한 그림을 듣는 게 좋았다. 늦은 밤까지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렇게 된 거다. 장난만 툭 던져도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흘리는 친구나, 그런 친구를 보면 어김없이 같이 우는 친구나, 발랄하게 뛰어오르는 에너지, 동그란 눈, 푹 들어간 보조개, 그런 작은 부분부분 하나가 참 귀엽다고 느껴지게 된 거다. 그 모습이 좋아서 친구가 좋은 것인지, 아님 친구가 좋아 그마저도 귀엽게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나긴 정말 어렵다. 어디서든 어렵지만 회사라는 네모난 공간에서 만나긴 더 어렵다. 그래서 기쁘고 반가웠는데 보통 그렇다. 무언가 정말 딱 알맞게 행복하고 완벽하다 싶으면 금세 깨지고 만다. 우리는 분명 회사를 나선 후에도 좋은 친구일 테지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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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좋은 날, 저녁을 먹고 막내와 나란히 앉아 오이 하이볼, 레몬 하이볼를 하나씩 시켰다. 가만히 주위의 소란을 보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이 되었고, 다른 한 친구도 앞의 약속을 마치고 먼 길을 돌아 옆에 앉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다들 조금씩 조용해졌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막내 눈에 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왜 울어, 왜 울어, 물어도 답이 없었다. 누가 울면 신이 나 사진을 찍고 놀리던 친구도 그날은 말이 없었다. 말없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퇴사를 하면 우리가 지금처럼 회사에서 생긴, 실은 별일 아닌 일들로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고생한 날 퇴근 후 맥주에 기대 이런저런 이야길 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만남의 빈도로 마음을 가늠할 순 없으니까. 다시 만난 날 들려줄 수많은 이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서 그렇게나 많은 선물을 준비하게 된 거였다. 세 자릿수를 넘어가는 사진을 고르고 골라 인쇄해 스케치북에 열심히 붙이며 편지를 쓰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막내를 떠올리며 포토카드도 만들고, 책도 사고, 잠옷도 사고 하며. 누군가를 좋아하면 왜 이렇게 무언가를 자꾸자꾸 주고 싶어질까? 우리가 얼마나 막내를 생각하는지 알까, 친구와 선물을 준비하며 여러 번 묻고는, 번갈아서 모를 거야, 답했다. 하지만 그 말을 주고받은 그 친구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까? 이것도 분명 모를 거다.

 

 


헤어진 기억들을 되짚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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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헤어진 순간들이 생각났다. 늘 단짝 친구와 꼭 붙어있던 고등학교를 지나 들어선 성인의 세계는 만남과 헤어짐의 세계이기도 했다. 궁금한 게 많았던 나는 이것저것 많은 동아리에 가입하고, 여러 대외활동을 하고,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람을 가장 어려워하는 나에게도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왔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알아가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헤어질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 달 내내 매달려있던 팀 프로젝트, 처음엔 어색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발표일이 다가왔을 땐 세상에 하나뿐인 단짝처럼 팀원으로 만난 친구들을 좋아하고 의지했다. 매일매일 보던 우리는 각자 다른 학교를 다니고, 더 중요한 활동이 생기면서 점점 얼굴을 보기 어려워졌다. 그런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6개월을 내내 함께 울며 웃으며 고생한 대외활동도 그랬고, 캠퍼스 곳곳, 학교 근처 술집을 붙어 다니던 친구도 그랬다. 생활 반경이 조금만 각도를 틀면, 조금만 다른 곳에 관심을 갖게 되면 붙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래서 한때는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두려웠다. 정이 들면 또 금방 헤어질 텐데, 멀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혼자 진득하게 남은 아쉬움과 서운함에 매달리는 게 싫었다. 교환학생으로 먼 타국에서 알게 된 언니 오빠가 너무 좋아져서 이러면 안 돼, 정신 차려야 해! 한약방처럼 생긴 버블티 집에서 의미 없는 다짐을 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오래된 노랫말처럼 안녕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는걸. 다가올 날에 겁먹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고 그 순간을 누려야 한다는 걸 안다. 언제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다가와 자주 보지 못하는 사이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함께 한 시간이 흩어지지 않는다. 자주 보지 못해도 자주 보는 것처럼 좋아할 수 있다. 그때 나와 함께한 친구들, 계절마다, 해마다 보지 못해도 그 친구들을 많이 좋아하고 항상 행운과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


마지막 대외활동의 마지막 날, 스무 살 즈음 되었을 어린 후배가 술에 취해 내 어깨에 기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가지 말라고, 이렇게 가면 안 올 걸 안다며, 이제 우리는 매주 보지 못한다고 서럽게 눈물을 보였다. 아니야 우리는 또 보게 될 거야 말하며 달래주었던 그날 촉촉해진 어깨가 가끔 떠오른다. 다들 이런 마음을 배우면서 어른이 되는지도 모른다.

 

 

 

전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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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편지가 길어졌다. 그렇다, 이건 사실 긴 편지였다. 이제 나는 대학시절 아주 좋아했던 수업에서 마지막 기말고사에서 만난 시험문제가 떠오른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어떻게 다른가? 인간은 꼭 필요하지 않은 행동을 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의식주와 관련되지도 않은 행동을 한다.


말 그대로 비효율적인 행동들을 한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고, 말을 붙일 거리를 만들고, 낯선 길을 한참 헤맨다. 아무래도 그건 다른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해서 그렇다. 왜 그러냐고? 나도 모른다. 그저 사랑할 뿐! 아쉽고 슬프지만 내가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건 변함이 없다. 나에게 찾아와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이거야말로 내가 찾아 헤매던 행운이라고, 뒤바꿀 수 없는 운명 같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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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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