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여름 [영화]

글 입력 2022.07.1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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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그런 계절이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 숨이 막히지만 무거웠던 옷가지를 덜어내어 시원한 바람을 살갗으로 느끼고, 옆을 돌아보면 펼쳐진 바다에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는, 그런 계절이다. 차가운 물에서 더위를 식힌 후에는 이름 모르는 주인의 농장으로 숨어들어 가 열매를 따고, 들키면 달아나면 그만인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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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주인에게 호통을 들어도, 물놀이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교복에서 여전히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어도 모든 것이 즐겁기만 여름의 일탈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이 여름의 일탈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반나절도 채 되지 않는 바닷속에서의 짧은 시간이 자유롭게 바깥세상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터키의 작은 마을에서 여름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다섯 자매는 남학생들과 어울려 물놀이했다는 이유로 자유를 박탈당한다. 학교에서 받아야 할 교육은 집에서 해결되어야 했고, 취향을 담은 다채로운 옷들은 온몸을 감싸는 칙칙한 색의 천으로 바뀌었다.

 

걱정 없이 뛰어놀았던 길거리는 이제 마을 사람들에게 신붓감으로서 평가받기 위해 걸어야 하는 심판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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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적이고 조신한 신부가 되기 위해 이불을 반듯이 꿰매는 법과 과일 깎는 법을 배우고 만두를 동그랗게 빚는 연습을 한다. 다섯 자매 중, 첫째인 소냐를 시작으로 하나씩 결혼하게 된다. 마을 어른들 사이에서 오가는 제안과 수락으로 이루어지는, 사랑과 낭만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결혼이다. 마치 신부 수업에서 배운 것들을 써먹기 위해 가정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을 대하는 자매들의 태도는 같을 수 없다. 억압 속에서도 연인과의 사랑을 지켜낸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져 온 구속을 죽음으로써 거부한다.


다른 집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세상으로 한둘씩 떠나는 언니들을 보며 막내 랄리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 왜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보러 갈 수 없는지, 왜 수영복을 입고 헤엄치는 곳이 바다가 아니라 이불 더미 속이어야 하는지, 왜 처음 보는 남자와 결혼하고 언니의 자살에도 할머니와 삼촌이 변하지 않는지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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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차별의 벽에도 랄리는 무기력해지지 않는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현실에 대한 분노는 그가 작은 마을과 더 작은 집을 탈출하기로 마음먹게 되는 동력이 된다. 마을 사람에게 무작정 운전을 배워보기도, 머리카락을 잘라 삼촌의 감시를 피할 인형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물론 그 어린아이가 운전을 배웠다고 해서 많은 언덕과 강을 지나 이스탄불에 갈 순 없다. 그런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들의 감시를 피해 이스탄불을 향해 출발할 수 있는 찰나의 틈을 마련해줄 수는 있다.

넷째 누르의 결혼식이 시작되기 직전, 누르와 랄리는 감옥이었던 집을 벗어나 이스탄불행 버스에 올라탄다. 언제나 함께였던 다섯이 아닌 둘만이 남아 있는 여정의 끝이 어떨지 그 누구도 감히 예상할 수 없다. 그저 그들의 여정이 이스탄불에서 멈추지 않기를 온 마음으로 희망할 뿐이다.


가장 어린 랄리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들이 겪는 억압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울타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함과 감시를 피해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의 희열, 모든 것을 포기하기까지의 무력감이 정돈되지 않은 흔들림을 통해 오롯이 전해진다.


동시에 뚜렷한 출구 없이 마무리되는 이야기에 답답함과 절망의 감정이 차오른다.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옛 스승의 집에 무작정 찾아간 랄리가 자립하여 온전한 자유를 찾을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하는지, 애초에 온전한 자유라는 것이 실존하는지 무엇도 확신할 수 없기에. 억겁의 시간 동안 세대를 거쳐 대물림 된 깨지지 않는 차별에 작은 금이라도 낼 수 있을지 선뜻 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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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조그만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이유는 이제는 뿔뿔이 흩어진 자매들과 함께 경기장에 가기 위해 집을 빠져나왔을 때 느꼈던 두근거림과 트럭을 타고 온몸으로 부딪혔던 여름의 바람을 랄리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매들의 과거와 미래를 마음 한구석에 품고 초원을 달리는 작은 야생마, 무스탕처럼 좁은 집을 벗어나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그의 모습을 조심스레 그려본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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