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숭고한 전쟁도, 위대한 영웅도 없는 세상에서 - 연극 '잔인하게, 부드럽게'

글 입력 2022.07.1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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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극으로 재탄생한 <트라키스의 여인들>


 


여자는 텅 빈 집안을 지키며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린다. 간절한 기다림 끝에 남자는 승리를 거두고 돌아와 아내의 품에 안긴다. 집안사람들은 물론이고 온 마을과 나라가 이 영웅을 환대한다.



익히 아는 전형적인 전쟁담, 영웅담이다. 이런 이야기 속 남성은 전쟁에서 승리해 돌아옴으로써 남편이자 아버지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사회로부터 제 몫을 하는 ‘남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트라키스의 여인들>은 전형적인 전쟁담과 ‘기다리던 남편이 전쟁에서 승리해 집으로 돌아온다’는 시작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이 작품 속에서 영웅으로 귀환한 헤라클레스는 아내 데이아네이라로 인해 파멸을 맞는다. 데이아네이라 역시 이 사실을 깨닫고 자살한다.

 

<잔인하게, 부드럽게>는 극작가 마틴 크림프가 이 오래된 그리스의 비극을 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각색한 작품이다. 불이 꺼지면 뚜렷한 경계 없이 뻥 뚫린 무대에 모든 인물이 등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서로를 무표정하게 쳐다본다.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지고, 각자의 얼굴 뒤에 숨겨진 표정을 생각하게 되는 연극, <잔인하게, 부드럽게>가 시작된다.

 

 

 

역전되고 교차하는 피해자-가해자의 구도


 

‘잔인하게, 부드럽게’라는 이 연극의 제목처럼, 작품에는 여러 가지 모순이 등장한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을까. 극중 장군이 테러 진압을 위해 한 마을을 몰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관객은 무언가를 지키기만 하는 군인이 있을 수 있는지 질문하게 되고, 테러리스트가 자국에서는 애국자로 기억되곤 한다는 아이러니를 떠올린다.

 

등장인물들 역시 이러한 모순을 품고 있다. 무대가 중앙에 위치해 관객이 인물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있거나 등을 보게 되는 일도 자연스럽게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뒤틀린 속마음을 짐작하게 된다.

 

남편을 기다리며 집을 지키는 안주인 아멜리아는 어느 날 남편이 전쟁에서 데려온 유일한 생존자라는 레일라와 그의 남동생을 맡게 된다. 그는 자비롭고 우아한 안주인으로서 처음에는 이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온정을 베풀려 한다. 하루 아침에 짐을 떠안게 된 피해자가 아니라 차라리 ‘가해자의 아내’로 남기를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존자이자 전쟁 피해자인 레일라의 존재는 아멜리아는 물론이고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며 극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젊고 아름다우며 말투도 어눌한 그는 겉보기에는 이 전쟁의 ‘순진무구한 피해자’ 역할에 들어맞는다. 그렇기에 어눌한 말씨로 섹스 칼럼을 읽고, 아멜리아의 고용인을 자신의 하인처럼 부리는 모습에서 아멜리아와 관객은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심지어 그는 아멜리에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대놓고 장군을 향한 애정을 표출하기까지 한다.


아멜리아는 돌봐줘야 한다고 믿었던 ‘피해자’로부터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기 시작한다. 극중 아멜리에의 지위는 모두 남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장군의 아내가 아니라면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기의식이 똬리를 틀고 자라나 그를 광기로 몰아넣는다.

 

앞서 말한 전형적인 영웅담에서 장군의 아내인 아멜리아는 조력자로, 레일라는 전쟁의 피해자로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잔인하게, 부드럽게>에서 이들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 속에 고정되기를 거부한다.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과 이중적인 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 결과, 장군은 가장 친밀한 대상이라고 여겼던 아내와 자신이 가져온 전리품에 의해 파멸을 맞는다.

 

 

 

영웅의 죽음, 어떤 시대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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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게, 부드럽게>에서 전쟁에서 돌아온 장군이 환대받는 풍경은 없다. 그가 가진 권력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아내가 보낸 묘약 때문에 고통에 빠지고, 자신이 구해준 부하로부터 체포당한다. 그의 지위는 장관, 즉 국가의 필요에 따라 영웅에서 전범자로 전락한다. 고용인들은 겉으로는 그의 눈치를 보지만 아무도 그를 진정으로 위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텔레비전에 나올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쓰며 머리를 다듬는 그의 모습은 관객에게 우습고도 짠하게 다가간다.

 

장군과 여러모로 대조적인 인물은 아들인 제임스이다. 그는 계속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고 집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별 관심이 없다. 매사에 비장한 장군과 달리 영웅적인 면모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어머니와 가정부의 등쌀에 떠밀려 겨우 아버지의 안위를 확인하러 떠날 뿐이다. 그는 무력하다. 아버지의 파멸과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도 눈에 띄는 동요가 없다.

 

우리는 그와 장군의 상반된 모습을 보며 어떤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시대는 전쟁에서 돌아온 장군이 어떤 갈등이나 의심 없이 순수한 영웅으로 아내의 품에 안기던 시대다. 모두의 위치가 그때그때 편의와 이익에 따라 바뀌고, 전통적인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 남성 가부장이 설 자리는 없다.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 제물이라는 장군의 마지막 외침은 그런 맥락에서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발악을 지켜보는 시선은 냉소적이다. 어쩌면 장군이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던 시대는 아내인 아멜리아, 그리고 자신의 탐욕으로 데려온 레일라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조력자나 피해자로만 남기를 거부하고 욕망을 드러내면서 장군이 차지한 영웅의 자리도 위태로워졌다.

 

‘숭고한 전쟁’과 ‘위대한 영웅’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어간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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