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전히 살아남고 있는 사람들 [문학]

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고,
글 입력 2022.07.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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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념일들로 가득 찬 달력은 종종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5월은 부담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조카나 주름이 늘어가는 부모님, 은퇴를 앞둔 선생님까지. 우리가 그들에게 갖는 애정만큼, 5월은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러나 5월이 애정 때문에만 버거워지는 건 아닙니다. '5월'이라는 말이 유독 버거운 이유는 18일 때문입니다. 그 놈의 18일 때문에 나는 7월에도 5월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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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는 80년 5월의 광주를 다루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날의 잔혹한 현실과 그 뒤에 남은 상처들을 형상화합니다.

 

인물들이 겪는 것은 '삶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의 문제', '살다'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다'의 문제입니다. 삶의 완결은 죽음입니다. 이 단언은 너무나 슬픈 것이어서, 우리는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삶을 만족스럽게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에게 삶은 죽어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너무나 오만하고도,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삶의 기준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가는 이 사람들의 삶을 책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있다고, 이 상처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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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책감

중학교 3학년인 '너'는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 그래야만 했습니다. 도망치는 ‘너’ 뒤로 친구가 쓰러집니다.

 

‘너’는 이미 골목에 숨어들어 안전해집니다. 뒤를 돌아보니 쓰러진 친구가 보입니다. ‘너’는 어쩔 줄 모릅니다. 친구를 구하다가 자신이 죽을지도 모릅니다. ‘너’는 갈팡질팡하다가 무력해집니다. 갑작스러운 슬픔입니다. ‘너’는 친구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낍니다.

 

‘너’가 느끼는 죄책감은 폭력이 만든 상처입니다. 친구를 구하려면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거리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죽음에 가까워집니다. 친구를 구하지 않으면 피 흘리는 친구의 모습이 평생 떠오릅니다.

 

무엇을 선택해도 고통스러워지는 딜레마입니다. 심지어 친구를 죽였다는 생각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죽인 죄책감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80년 광주의 폭력은 얼마나 무심하고 잔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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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이 검열된다는 것


소설 속에는 희곡이 등장합니다. 이 희곡은 80년 광주를 생생하게 담고 있는 듯 보입니다. 너무 생생하게 담고 있는 나머지 대부분의 내용이 검열 과정에서 사라집니다. 희곡의 출판은 불가능해집니다. 그런데도 공연만은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진행된다던 공연의 대사는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배우들은 대사를 입속에서만 오물거립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 희곡 속에 들어있는 건 80년 광주를 겪은 사람들의 삶입니다. 삶을 뭉개버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오만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희곡의 대사마저 뭉개버립니다. 80년 광주에서 총을 쏘던 손들과 공연장의 입들을 꿰매버린 손은 같은 손입니다.

 

소설 속 희곡은 검열로써 완성되었습니다. 검열에 의해 대사 처리를 똑바로 하지 못하는 것이 이 희곡이 전달하고 싶었던 의미에 완벽히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상처받은 삶들은 그 웅얼거림을 더 슬프게 느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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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살아 남기와 죽어 가기


소설 속에 ‘사람의 삶을 사는 인물’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물들은 여전히 살아남고 있거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80년 광주에서 죽어갑니다. 누군가는 지금도 광주의 상처로부터 간신히 살아남고 있습니다.

 

모나미 볼펜 때문에 생긴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 흉터는 매일 마음의 고통을 겪게 합니다. 그 흉터로부터 되살아나는 압도적인 폭력이 지금도 매일 삶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것. 없다가도 불현듯 나타나 삶을 흔들어놓는 것. 폭력이란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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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을 읽으면 필연적으로 인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80년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의 압도적인 고통은 그 고통을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상처 받은 사람들의 짓밟힌 인간성과 상처 준 사람들의 짓밟고 싶은 인간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두 인간성이 ‘인간성’이라는 단어로 묶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 소설을 7월에도 마땅히 읽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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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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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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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 광주사태.50이 넘은 나도 사실을 아는데는 오래걸렸다.쉬쉬하고 지워지고 검열받고.아픈역사도.잘못된역사도 바로알고.바로알려지고. 반성하고 앞으로의 시대에는 더 잘 만들어가는 나라었음합니다.
      우리도 일본처럼 왜곡하고 잘못된 역사를 후세에 알려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런의미에서 소년이온다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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