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생명과 사람다움에 대하여 [도서/문학]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글 입력 2022.07.1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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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고모는······ 위선자들 싫어하지 않아."

(···)

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

고모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실은 어느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

 

물론 그럴 때도 많지만 한 가지만은 안 돼.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거라는 걸, 그걸 놓치면 우리 모두 함께 죽어.

 

이 부분을 읽으며 한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신부님께서는 신자들 중에는 아이, 혹은 부모님이 갑자기 아파서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죄로 고백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하시며 이것이 죄인지 물어보셨다. 신부님의 말씀에 따르면,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이는 죄가 될 수 없다. 가톨릭 신자에게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럼에도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부터 성당에 다니던 나의 가치관은 대부분 천주교의 교리를 기준으로 형성되었다. 서로 사랑하여라, 살인하지 마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고 더 나은 내가 되고자 노력하려 한다. 다만 항상 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대치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교회는 사형제 폐지를 위해 기도한다는 점이다.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하는가?'하는 논제는 학교에서 시행하는 토론의 단골 주제였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반대 측에 서서, 피해자의 권리에 대해 주장하곤 했다. 가해자의 숙식을 해결하는 데에 우리의 돈이 쓰이는 것, 그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제공할 최소한의 것을 제공하는 데에 반대했다.

 

그들은 피해자의 권리를 앗아갔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꼬리를 물고 질문이 따라 붙는다.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도 되는지 판단하고 그를 행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 가해자들의 행위로 인해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는 피해자들의 억울함은 누가 알아주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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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물리적인 편안함 속에 잠을 잘 수 있었던 윤수를 생각하면 마음이 이상하게 아려온다. 인간다운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인물. 부모에게 학대당하고, 하나뿐인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며, 존댓말로 대화해본 적 없는, 존중받은 경험이 없는, 진정으로 사랑받아본 적 없는 인간, 인간. 그리고 사랑받아본 적이 없기에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답게 살 권리를 가진다, 는 말은 누가 했는가? 그들은 어쩌면 그 권리를 누릴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을 수도 있겠다. 윤수는 어디에서 그 권리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는 사형수가 되어서 죽을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그 때가 되어서야 모니카 수녀를, 문유정을 만나 비로소 그것을 맛본다.

 

내가 사형제 폐지를 찬성하는 측에 서서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내가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정의 아이로 태어나 학교에 다니고,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행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먹을 식사가 없는 상황의 나는 그러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만 나의 모든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수가 그랬을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으니 나와 은수를 서로 지켜주어야지 그랬다가, 은수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이후로는 내가 은수를 지켜야지. 밥을 먹어야 하니 돈을 확보해야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도둑질을 해야지. 잠은 어디서 자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본권을 보장받은 경험이 없는 인간은 다른 이들의 기본권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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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 가난해서, 그렇게 거기 들어와 영치금 천 원도 못 가지고 사는지 몰랐으니까······ 사람을 셋이나 죽이고 강간한 파렴치범인 윤수가 그렇게 맑게 웃고, 그렇게 아프게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으니까.

 

몰랐다. 그들이 어떻게 피해자에게 그렇게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두었다. 애초에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저 멀리 다른 대륙의 모르는 사람들이 굶는다는 소식에는 마음 아파하면서, 당장 서울의 범죄자들이 굶는다는 소식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범죄자라는 단어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범죄자도 놈(者)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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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어가는 생을 살아감에도 죽음에 도달하기까지의 그 유예기간을 늘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목숨을 부지하면 그걸로 전부인가? 우리는 나를 둘러싼 수많은 너, 타인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선한 것이기에, 우리는 기꺼이 위선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옳은 것임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민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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