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무자비라는 창과 정당화라는 방패로 - 잔인하게, 부드럽게

글 입력 2022.07.1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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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게, 부드럽게


 

‘잔인하게, 부드럽게’는 타인에게 행한 무자비한 폭력을 정의와 평화로 정당화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연극이다. 상반되는 ‘잔인함’과 ‘부드러움’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이중적인 이미지가 느껴진다. 장난으로 건네는 ‘천천히 빠르게’와는 그 무게가 다르다. 타인에게는 잔인하게 폭력을 휘두르지만 자신에게는 뱀이 담벼락을 넘어가듯 부드럽게 그 이유를 정당화한다. 그 뱀 같은 부드러움은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역겨움을 더 부각한다.

  

인간의 이중성과 폭력은 배우들의 명연기로 무대 한가운데에 ‘전시’된다. ‘잔인하게, 부드럽게’의 ‘손원정’ 연출가는 이 연극을 ‘광기의 전시’라고 표현한다. 기존 연극은 관객과 무대가 청팀과 백팀으로 나눠지듯 양쪽으로 마주 보는 형태지만 해당 연극은 무대가 가운데에 있으며 그 양쪽으로 관객들이 앉는다. 마치 국보급 탑이 전시됐듯이 무대가 가운데에 전시됐으며 관객은 그 주위로 배우들을 본다.

 

그래서 더 입체적이다. 투명하다. 열려 있다. 관객과 무대를 막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공연과 맞물리며 관객은 무대에 더 가까이 접근해 마치 지나가는 행인의 역할처럼 관찰자의 시선으로 연극을 바라본다. 그리고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는 연극의 내용과 무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눠진 관객들이 묘하게 어울리며, ‘이중성’이라는 연극의 메시지를 무대와 관객의 배치로도 전달한다.

 

 

 

가해자의 무자비한 폭력


 

이중성에 해당되는 무자비한 폭력과 폭력의 정당화에서 폭력은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직접적인 신체에 의한 폭력이나 도구로 인한 폭력도 있지만 말과 환경으로 발생하는 폭력도 존재한다. 전자를 물리적 폭력, 후자를 정신적 폭력이라 정의하면, 무대의 공간인 ‘집’은 정신적 폭력이 발생하는 장소이며 무대의 바깥 공간인 ‘전쟁터’는 물리적 폭력이 발생하는 장소다.

 

무대 바깥의 전쟁 상황은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전쟁터에서 ‘장군’은 대테러 제거를 목적으로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여 나간다. 무자비한 폭력이 발생하지만 관객은 시각적으로 직접 보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전해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직접 보지 못한다. 하지만 공교롭게 무대인 ‘집’이라는 공간에서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볼 수 있다. 바로 전쟁터의 폭력의 결과가 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장군’이 표면적으로 대테러 제거를 목적으로 전쟁했지만 그 실상은 마음에 드는 여자 ‘레일라’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레일라’는 ‘장군’의 아내 ‘아멜리아’가 있는 집으로 보내진다. ‘아멜리아’와 ‘레일라’의 숨 막히는 동거는 무자비한 전쟁의 폭력의 결과다. 전리품으로 취급되는 ‘레일라’라는 인물 자체도 폭력의 결과를 상징한다.

  

‘장군’이 가해자라면 피해자는 ‘레일라’와 그의 가족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의 아내인 ‘아멜리아’다. 남편은 집에 오지도 않고 남편이 좋아하는 다른 여성과 같이 살아야 한다. 전쟁의 생존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끌려온 ‘레일라’도 같은 처지이다.

 

 

 

정당화라는 이름의 피해자


 

하지만 연극의 재밌는 점은 인물들이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보편적인 캐릭터로 굳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리어 프리로 뻥 뚫린 무대와 같이 인물들이 입체적이며 다채롭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아멜리아’는 피해자였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으면 해서 물약이 담긴 작은 병을 베개에 넣고 그에게 전달한다. 그 물약은 집으로 가고 싶게 만드는 마법의 물약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독약이었다. 결국 남편 ‘장군’은 베개에 담긴 병이 깨지면서 독약을 마시게 되고 병에 걸리게 된다. ‘아멜리아’가 가해자로 변하는 시점이다. 동시에 ‘장군’이 피해자로 변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지만 인물들은 자신이 피해자인 것만을 인정한다. 정확히 말하면 희생자와 제물이다. ‘장군’은 전쟁의 목적을 대테러 제거를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아내의 독약으로 병에 걸린 자신을, 전쟁으로 비난받는 자신을 피해자와 희생자로 생각한다. ‘아멜리아’ 역시 그 물약이 독인지 몰랐으며 집에 오지 않고 다른 여자를 보낸 남편에 대한 피해자로 생각한다. ‘레일라’에 대한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 역시 남편이 자신에게 저지른 폭력에 대한 정당화로 생각한다.

 

타인에게는 무자비하지만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무자비한 창으로 남들을 찔러대지만 남들의 비난에는 정당화라는 방패에 숨기 바쁘다. 그리고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체포가 되는 순간에도 자신의 위상이 중요한 ‘장군’은 정작 자신의 잘못은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라고 다를까? ‘손원정’ 연출가는 이 연극을 보고 자신에게도 있는 모습이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안에는 이런 이중성이 내재하고 있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뭔가 잘못했을 때 변명하기 바빴던 것 같다. 꼭 폭력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보였던 수많은 변명과 핑계, 정당화가 있지 않은가? 또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했던 모습도 있을 것이다.

 

공연 처음과 중간에 흐르는 음악에 맞춰 등장인물들이 춤을 춘다. 서로 마주 보는 대칭 구조와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선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서로 마주 볼 때는 인간의 이중성이 보였다. 그 후 무대를 돌 때는 그 이중성이 합쳐진 듯했다. 즉, 우리 안에 이중성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숨기고 싶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본심을 꼬집어 내는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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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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