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짜 여름이 온다 - 썸머 필름을 타고! [영화]

글 입력 2022.07.1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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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한가운데


 

뜨거워진 머리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열을 시키는 사람이 하나, 둘, 셋. 여름이 왔다.

 

여름은 머리맡에서부터 오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걷는다. 해마다 한 계절이 유독 진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번 여름이 꼭 그랬다. 푸르게 무성해지는 나무와 숲, 소리 높여 우는 매미와 개구리, 습한 날씨에 축축해지는 몸, 계절이 나를 잡아 삼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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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계절이 힘차게 밀려올 때엔 이 계절을 잊지 않도록, 놓치지 않도록 꽉 잡아주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 하면 아무래도 밤이 떠오른다. 더운 열기가 가라앉은 초여름 밤, 큰 스크린 너머로 보는 세상이 그려진다.

 

본 사람들은 여름에 이 영화를 놓쳐선 안된다고,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영화제에서 보지 못해 아쉬움 가득이었던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의 개봉 소식이 들렸다. 여름이 가득 담겨있을 게 분명해서,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서 극장으로 달려갔다.

 

 

 

“이번 여름엔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를 소개하는 문구를 처음 보았을 때 참 깜찍하다고 생각했다.

 

청춘 + 로맨스 x 시대극 ÷ SF 영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는데 호기심이 생겼고, 얼핏 들으면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온갖 것들이 한데 섞여서 뒤죽박죽 정신이 없는데, 알 수 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청춘의 모양인 것 같기도 해서 더 궁금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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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맨발’은 영화를 사랑한다. 시대극과 사무라이를 사랑하는 맨발은 영화 동아리에서 좋아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무사의 청춘’을 기획하지만 뽑히지 못한다.

 

아쉬움은 잠시, 맨발은 가장 친한 ‘킥보드’, ‘블루 하와이’, 각기 다른 재능이 있는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린타로’를 본 순간, 맨발은 운명적인 만남임을 깨닫고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달라 매달린다.

 

영화 촬영에 본격 돌입하지만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시작한 이상 포기할 순 없다. 제작비가 없을 땐 다 같이 방학을 틈타 짐을 옮기는 알바에 돌입하고, 영화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친구들 앞에선 말로만 설명하기보다는 푹 빠져볼 수 있는 시대극 영화들을 모두 모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맨발은 외친다.

 

“이번 여름엔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


맨발은 그런 사람이다. 영화를 너무 사랑해서 진심을 꾹 눌러 담은 시나리오가 선택받지 못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축제에서 상영되는 단 하나의 영화가 될 수 없더라도,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더라도, 그럼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담아내길 선택한다.

 

린타로가 배우로서 영화에 출연할 수 없다고 계속 거절에 거절을 해도, 함께 물에 뛰어들며 그를 붙잡는다. 적당히 괜찮은 사람으로는 안된다고 타협하지 않는 마음.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정확히 그려내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의 깊은 곳에서 자신의 영화에 대한 믿음과 사랑,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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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보드는 영화의 카메라를 잡은 사람이다. 모두가 극에 흥분해 뛸 때에도 가만히 집중해 영상을 담는다. 그런 킥보드의 조용한 집중을 보는 게 좋았다. 맨발과 린타로처럼 큰 목소리로 말하진 않았지만 말 없는 행동에서 진심이 보이기도 한다. 극이 진행되면서 맨발과 린타로는 점점 가까워지고, 맨발은 킥보드에게 자신이 린타로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고개를 돌린 킥보드의 표정은 어두웠다.

 

킥보드 또한 마음에 린타로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같이 본 친구는 킥보드가 린타로가 아닌 맨발을 좋아한 것 같다고 했다. 맨발을 보는 눈빛에서 느꼈다고 했다. 킥보드가 좋아했던 건 누구일까? 스크린 너머의 우리는 영영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자라는 마음과 사랑에 실패하는 순간, 그 감정들이 느껴졌다.


블루 하와이는 보는 사람을 모두 반하게 만드는 환한 미소를 지닌 친구다. 웃을 때마다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블루 하와이, 그녀는 로맨스를 사랑한다. 시대극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따라 열심히, 즐겁게 영화를 만들지만 사실 마음 한 켠엔 로맨스에 대한 꿈이 있다. 운명적 사랑을 오래 꿈꿔온 블루 하와이는 우연히 맡게 된 사랑했던 이를 마주한 옛 연인의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아니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속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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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알 수 없던 린타로는 미래에서 맨발과 친구들이 사는 시대로 훌쩍 건너온 인물이었다. 시간이 흘러 영화계의 거장이 되는 맨발의 열렬한 팬인 린타로는, 어린 시절의 맨발을 만나보고 싶어 긴 시간을 뛰어넘는다. 맨발의 영화에까지 출연하게 된 린타로는 그들의 영화에 누구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한다.

 

한 마디 짧은 대사를 위해 진지한 버전, 장난스러운 버전, 굵은 목소리, 가벼운 발음, 수많은 모습으로 연습하며 고민한다. 린타로의 계속된 고민에 촬영이 끝을 보이지 않는 장면에 웃음이 터지면서도 그의 진심에는 웃을 수 없었다. 내가 무언가에 그렇게 진심인 때가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주인공들은 모두 저마다 다르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었다. 그 사랑은 완전해 보이기도 하고, 금방이라도 깨질 듯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두 모습을 퐁당퐁당 지나갔다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 모습이 곧 청춘인 것 같아서, 마음에 무언가 가득가득 차오르는 영화였다.

 

 

 

유치하고 뻔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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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다음 날, 함께 보았던 친구를 다시 만났다. 덕수궁에 친구와 나란히 앉아 ‘썸머 필름을 타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이 영화가 귀엽고 순수하지만 유치하기도 하고 클리셰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문제들이 쉽게 해결된단 말이야?’, ‘전형적인 캐릭터인데?’ 싶다가도 무언가 특별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이 영화가 유치하고 어린아이 같은 면이 가득하지만 그거야말로 여름 같다고 말했다. 그 말에 친구는 웃으면서 여름이 왜 유치해 물었는데 나도 모르겠어서 함께 웃었다. 글쎄, 여름에는 왠지 유치한 장난을 걸고, 농담을 해도, 그런 것들에 기대 은근한 진심을 말해도,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과 멈추지 않는 땀 핑계를 대면서 도망갈 틈새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드디어 축제에서 영화를 상영하지만, 맨발은 영화의 후반부 방송실로 달려간다. 그리고 외친다. 당장 영화를 멈춰 달라고, 다시 보니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결말이 아니었다고, 지금 다시 마지막 장면을 찍어야겠다고 말한다.


무대 앞으로 나온 맨발과 친구들은 사무라이의 검 대신 빗자루를 들고 싸움을 시작한다. 맨발과 린타로는 거세게 빗자루를 치고받으며 진심을 말한다. 상대에 대한 사랑과 존경,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부딪히는 빗자루 속에서 뿜어낸다. 역동적인 장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내는 대사에 마음이 벅찼다. 좀 유치해도 이거야말로 청춘이지 싶었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여름, 그 계절과 같은 마음이 전해지는 ‘썸머 필름을 타고!’였다. 무더운 여름에 겁이 나지만, 그 안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면 망설임 없이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더위에 지쳤던 날들은 모조리 잊고, 여름을 한껏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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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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