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라진다는 것 사실은 특별해진다는 것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7.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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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를 응원하나요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에서는 스포츠 경기가 한창이다. 점수 차이는 압도적이다. 한 팀은 여유롭게 경기를 즐기고 한 팀은 진땀을 흘리며 힘겹게 경기에 임한다. 당신은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팀을 응원하는가 승리할 가능성이 작지만 고군분투하는 팀을 응원하는가.


필자는 의도하지 않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후자를 응원하고 있다. 물론 호기롭게 큰 목소리로 응원하지는 못하지만, 차분한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간절하고 열정적인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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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응원하는 험난한 길


 

사실 승률이 낮은 팀을 응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패배할 때마다 아쉬움이 얼룩진 표정을 봐야 하며, 승리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서는 승자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팀을 좋아한다고 하면 주변으로부터 동정 어린 시선을 받아야 하고, 얄밉게도 실패한 기록들만 가져와서 비웃음이 섞인 위로를 들어야 했다.


승률이 낮은 팀을 좋아하는 것은 정신적 소모가 큰 일이었다. 정신적 여유가 있을 때는 패배의 안타까움을 견딜 수 있었지만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을 때면 회의와 냉소가 들었다. '나는 이 팀을 왜 좋아하는가' 대리만족도, 용기도, 자신감도 얻지 못하는데 왜 나는 계속 이 팀을 응원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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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알게 되다


 

그러다 우연히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수필을 읽게 되었다. 짧은 수필이지만 내가 왜 그들을 향한 힘겨운 응원을 계속하는지, 그리고 그들을 응원할 때 들었던 마음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

아래는 책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필 속 '나'는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누군가를 향해 '환호하고픈 갈망'을 느낀다. 어렸을 때 '박신자' 선수의 통쾌한 경기를 보면서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속이 뻥 하니 후련했던 기억을 회상하면서 말이다. 일상의 답답함과 추억의 그리움이 뒤섞여 '환호하고픈 갈망'이 점점 커질 무렵 '나'는 집에 가는 길에 공교로이 마라톤 경기를 보게 된다.


'나'는 마라톤 경기가 진행되는 곳에 가까이 가면서 선두 주자를 볼 생각에 설렘을 느낀다. 선두 주자를 보면 그간 쌓아놨던 환호에 대한 갈망을 다 터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경기장에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고, 길을 통제하는 관계자와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몇몇이 전부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라디오에서 선두 주자가 결승전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동시에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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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선두 주자가 이곳을 지났다는 생각에 아쉬움과, '비참한 꼴찌의 얼굴'을 보게 될 생각에 실망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선두 주자가 한참 지난 곳을 뒤늦게 들어오는 후발 주자들이 왠지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후발 주자들의 모습을 보자 자기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닫는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여태껏 그렇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10등, 20등을 초월해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중

 

 

정직한 고통과 고독, 이 말은 그들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했다. 그들의 고독과 고통에 대한 대가는 당장 눈앞에 없었다. 관중들의 선망이 담긴 눈빛, 승리의 짜릿한 기쁨. 그것은 선두 주자의 몫이었다. 그 무엇도 당장 얻을 것이 없었지만, 그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 위대함을 느꼈고,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꼴찌에 가까운 이들이 좀전의 '나'처럼 자신을 스스로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껴, 행여 모든 것을 포기할까 봐. '나'는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선두 주자에게 보내고자 했던 환호와 갈채를 후발 주자들에게 보낸다.

 

'나'의 환호는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져, 고요했던 경기장이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찬다.

 

 

 

감동과 경외감, 연대감 그 뒤섞인 무언가


 

작품 속 '나'가 후발 주자를 보면서 든 생각은 내가 약팀을 응원하면서 느꼈던 생각과 일치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 감동했고, 그들을 존경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며, 스포트라이트가 없는 외로운 길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들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경기를 마치는 모습은 승리 게임을 볼 때와는 또 다른 전율과 벅차오름을 선사했다.


순간적인 감동을 넘어 그들을 온 마음으로 응원했던 이유는 결과 때문에 노력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심이 담긴 박수와 응원으로 결과와 상관없이 노력은 그 자체로 충분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작품 속 '나'의 환호가 다른 사람들의 환호를 끌어내었듯, 응원하는 나의 모습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실패로 인한 아픔보다는 또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었다.


이러한 열망은 사실 동질감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나는 성공보단 실패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 '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성적은 그렇게밖에 안 나오니'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시험을 위해 들였던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순식간에 별 볼 일 없는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그로 인해 공부는 노력이 아닌 재능의 영역인 것만 같았고, 무기력과 좌절감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분이 학생인지라 쉽사리 공부를 놓을 수 없었고, 마음을 다잡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했다. 역시 과정은 험난했다. 한없이 떨어진 자존감을 똑바로 세워야 했고, 매번 겪어도 아픈 실패의 고통에 둔감해져야 했다. 실패와 회귀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나의 모습과 같았고, 그들을 향한 응원은 곧 나에 대한 응원이기도 했다.

 

요즘은 노력의 가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효율성의 가치가 급부상하면서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큰 부와 명예를 얻는 사람들이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었다. 반면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고 죽어라 하고 노력만 하는 사람은 미련하고 우둔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더 나아가 노력의 가치마저 부정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사라짐에도 좋은 것이 하나 있다. 특별해질 수 있다는 것. 이제 노력은 쉽고 흔해서 경쟁력 없는 방법이 아니다. 더 이상 노력하는 자는 미련하고 우둔한 사람이 아니다. 노력하는 자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있다.


이제는 특별해지고 있는 너와 나의 노력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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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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