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로 비추어보는 현실 [영화]

영화 <카트>가 말하는 2022년 노동운동의 현주소
글 입력 2022.07.0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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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영화가 존재한다. 영화 취향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도 한다. 미학적 연출, 효과적인 미장센, 감각적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카트>는 큰 관심을 끄는 영화는 아니었다. 감정에 호소하고, 연민을 자극하는 작품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카트>를 보게 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취향에 맞는 영화만 고집하던 내가 자발적으로 <카트>를 보게 된 계기는 복학 이후 반갑게 맞이한 교정에 걸려있던 빨간 현수막,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꽹과리 소리였다. 학내 노동자분들이 학교에서 노동 환경 개선을 이유로 시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위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학교에 분노하여, 임시적 노학 연대를 결성하고 활동했다.

 

학생이 관심을 보이면 더욱 수월해질 거란 다소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순탄치 않은 일의 연속이었다. 노동권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관람한 영화 <카트>는 집회의 내부에서 본 무력한 현실과 많은 접점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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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기반 영화 <카트>는 부당 해고를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계약직 여성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 통보를 받으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하는 장면을 그려냈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원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기 쉽게 담아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애환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다소 작위적인 연출이 존재한다는 점은 아쉽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화 <카트>는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2007년에 발생했던 사건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지만, 2022년 지금 현실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본 영화 <카트>를 빌려 노동자의 시선에서 노동조합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무엇이 낙숫물이고, 무엇이 바위인가


 

노동조합의 시위, 파업에 대한 기사 내용이나 댓글을 통해 '노조가 갑이다'라는 반응을 종종 발견한다. 규모나 크기에서 노동조합이 기업보다 우세하다는 것처럼 들린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이 투쟁하는 방식은 사회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언뜻 보면 노동조합이 합리적 경쟁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사회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카트>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그늘에 가려진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통해 고용자와 피고용자 간의 격차를 보여준다. 선희(염정아)는 벌점 하나 없는 성실한 근로자다. 회사가 잘 되면 나도 잘 된다는 마음으로 일한다. 기업에 충성심 있는 태도로 업무에 임하지만, 기업은 선희에게 예고 없던 연장 근무를 반복시키고, 추가 수당을 제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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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 혜미(문정희) 역시 회사 매뉴얼대로 근무하는 비정규직 직원이다. 그러나 근로자 업무 방침을 모르는 고객 눈에는 그저 무능력한 직원일 뿐이다. 고객의 기분보다 업무 방침을 중시하는 혜미의 태도에 반감을 느낀 고객은 부조리하게 사과를 받아내려 한다. 무작정 직원에게 책임을 돌리는 고객 앞에서 기업은 계약 직원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결국 혜미는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

 

피고용인과 고용인은 처음부터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등한 입장이 아니다. 여성이자 주부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생계를 유지해야 할 책임을 수행하기도 바쁘다. 계약 조항, 근로 관련 법 조항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기업과는 다르다. 고용인들은 법망을 피해 가며 본인들에게 더욱 유리한 방법을 활용하기 쉬운 구조다. 백지 계약서, 구두 계약서 등을 통해 명시된 계약 기간과 관계 없이 원하는 기간만큼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비교적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인력이라 해서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않고 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투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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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이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그들을 향한 시선이다. 마트를 점거하면서 기업에게 본격적으로 항의하는 노동조합원들을 향해 소비자들은 왜 우리가 피해를 입어야 하나며 항의한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처음부터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시위를 한 건 아니다. 기업 직원들이 조합원과 직접 만나 협상을 시도하는 장면은 한 번 등장한다. 그조차도 조합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불법 점거를 끝내면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기 위한 자리다.

 

노동조합원들은 기업 대신 무수한 어려움만 직면한다. 대체 인력으로 고용된 아르바이트생과 만나고 몸싸움을 벌여야 하고, 불법 점거를 제지하기 위해 온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언론은 회사가 받은 피해와 손실, 소비자가 얻은 불편함만 주목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집에 도착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 적힌 손해배상 청구 소장이 도착해 있다.

 

기업의 부당 해고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듯, 마트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투명인간 취급한다. 기업이 노조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으면, 노동조합원들은 더욱 거세게 소리칠 수밖에 없다. 얌전하고 상냥한 목소리로는 많은 사람들이 듣지 못한다. 더욱 크고 사나운 소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는다. 다른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때, 비로소 노동조합의 존재가 드러난다.




노사 갈등에서 고단한 처지 간 갈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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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는 노동조합이 단순히 노사 갈등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각자의 고단한 삶이 끊임없이 부딪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의 고단한 처지를 상대의 처지와 비교하는 현상이 노동조합을 둘러싸고 끝없이 발생한다. 정직원에게 노조 가입 신청서를 돌리는 강 대리를 향해 최 과장은 말한다. 네가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아서 현실을 모른다고. 최 과장은 자녀들의 학원비, 식비를 마련하기도 벅차다며 노동조합을 외면한다.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투쟁에 정신도, 형편도 궁핍해지는 조합원들을 향해 혜미는 서로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독려한다. 하지만 아이 한 명을 건사하는 혜미와 자신의 처지는 같지 않다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온다. 낙숫물이 바위를 향해 처절하게 떨어진다 한들 바위는 단숨에 깨지지 않는다. 반면 낙숫물은 무수한 갈래의 예측 불허한 방향으로 튄다.

 

내 한 몸 감수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른 생활을 하지만, 내 삶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고되다. 혼자 살기도 버거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굳은살이 하나씩 늘어간다. 삶에 박힌 굳은살은 타인의 생에 대한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분노하는 감정을 무뎌지게 만든다. 공감의 끈을 끊어버린다. 그리하여 구조의 치명적 단점을 지적하기보다 당장 눈앞의 피로함을 처리해버리기로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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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학연대 활동을 직접 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2014년 개봉작 영화 <카트>에 담긴 이야기들과 많이 닮아있음을 느낀다. 노학연대 활동을 하면서 모든 학생들이 학내 노동자들의 시위에 동참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학내 노동자들의 시위를 묵인하는 학교에 화가 난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반면, 빨간 현수막을 찢고 나무에 걸어놓은 모습이 외관상 꺼려진다는 의견이 존재했다. 학교가 아니라 학생들한테 피해를 가게 하는 방식은 시위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는 반응도 존재했다.

 

비단 우리 학교뿐만이 아니다. 학내 노동자의 집회 소음으로 인해 학생과 집회 간에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에 소란스러운 사건들이 들려옴에도 학교들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다. 투쟁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삶을 살기도 정신없는 사람들은 조금씩 투지와 열정을 잃어간다. 영화 <카트>를 보면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은 단순히 캐릭터에 이입해서가 아니라, 현실이 투영되기 때문임을 체감했다.


문득 <카트>같이 약자를 대변하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삶에 박힌 굳은살을 떼어내는 역할을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박한 현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절규 섞인 외침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반전 운동가 마틴 니묄러가 <그들이 왔다>에서 말한 구절이 다시금 떠오른다. 다른 사람의 삶을 침범하는 구조적 난점은 언젠가 내게 돌아오기 미련이다. 삶의 틈새에 남을 고려하는 시간을 틈틈이 끼워 넣을수록, 삶의 고됨이 조금씩 느슨해질 거라 믿는다.

 

그것이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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