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음악]

글쎄요, 재즈란 말이죠.
글 입력 2022.07.0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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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가 그렇듯, 어느 시기가 되면 마음에 꽂혀서 무한히 반복해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그중 하나가 재즈 뮤지션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라는 곡. 그녀는 노래의 시작부터 “도망가자,” 하고 나지막이 읊조리는데, 나는 그 도입의 순간마다 매번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에 휩싸인다.

 

어디서부터 어디로 어떻게 도망가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너무나 도망치고 싶은 간절함. 당장 도망가야만 할 것처럼 가슴이 뛰는데, 그럴듯한 도피의 이유부터 찾고 있는 나를 마주하는 실망감. 그런 절망적인 감정을 선서하는 도입부라니.

 

그리고 그 뒤로 흐르는 멜로디와 목소리는 절망감을 다독이고 위로하는 듯 안온하다.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노래는 이렇게 말한다. “울 것 같아”도 괜찮으니 우리는 가자고. “어디로든 어떻게든” 상관없으니 일단 함께 떠나보자고. 이토록 막연하고 대책 없는 도망을, 우리는 언제나 꿈꿔오지 않았을까. 그 도망의 끝이 결국 “돌아오”는 일일지라도, 함께 떠났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씩씩하게” 다시 살아갈 수 있을 테다.

 

두 손을 비벼 차가운 가슴에 가만히 얹어주는 연약한 온기 같은 노래이자, 사랑을 함께 도망가는 일이라고 감히 규정하는 노래. 이런 노래가 선우정아의 재즈(Jazz)다. 스윙과 임프로바이즈와 싱커페이션이 없어도 이미 완성된 한 편의 재즈. 여느 노래처럼 곧 질려서 자주 듣지 않게 되겠지만, 분명 가끔씩 다시 생각나 꺼내 듣겠지.

 

도망가자, 말해주는 사랑이 필요한 어느 막막한 날에는 꼭.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당연해 가자 손잡고

사랑해 눈 맞춰줄래

 

- 선우정아, <도망가자> 중에서

 

 


 

 

재즈에 대하여 말할 때 데이미언 셔젤의 영화 <라라랜드>(2016)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라라랜드> 서사의 큰 축은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두 청춘의 가난한 꿈과 사랑이다. 우리를 그 큰 주제에 가 닿도록 이끄는 세밀한 요소가 미아의 연기(acting), 그리고 세바스찬의 재즈다.

 

두 주인공이 가진 꿈의 차이는 분명하다. 미아는 배우로서 대중의 인정을 꿈꾸고, 세바스찬은 재즈의 생존과 부활을 꿈꾼다. 미아는 불확실성의 영역에서 싸우지만, 세바스찬은 외면과 망각의 영역에서 투쟁한다. 사람들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 그 대책 없는 사랑의 음악이 재즈다.


가난한 재즈 피아니스트인 세바스찬은 그의 연인이 될 (그리고 훗날 다시 남이 될) 미아를 재즈 클럽에 데리고 간다. 한창 재즈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클럽에 나란히 앉아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대중에게서 잊혀가는 있는 재즈의 사랑스러움에 대하여 설명한다. “장소는 좁은데 사람은 넘쳐나지, 서로 언어가 달라서 말은 못 하지, 그래서 태어난 소통법이 재즈였어요.”

 

그러나 미아는 여전히 재즈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엘리베이터 음악. 내가 아는 재즈 음악 말이에요”), 세바스찬은 그런 그녀에게 재즈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재즈는 그냥 듣는 음악이 아니에요. 얼마나 치열한 대결인지 직접 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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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와 세바스찬은 사랑에 빠지고, 함께 꿈을 좇는다.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이 막연한 꿈 앞에서 둘은 잠시 방황하지만, 서로의 도움으로 각자의 꿈을 다시 마주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미아와 세바스찬은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사랑했던 서로를 알아보고, 세바스찬의 연주가 흐르고(오직 미아에게 바치는 헌정곡이었을), 둘이 함께 맞이하는 미래가 환상처럼 펼쳐지는 장면에서 나는 문득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떠올린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으나 미아도, 세바스찬도 온전히 행복하다. 도망에 멋지게 실패했고, 각자의 트랙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으며,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다시 마주쳤기에. 세바스찬의 손이 마지막 노트에서 오래 머물고, 미아는 남편과 함께 클럽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흐르는 음악.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재즈만 남는다.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는 위로가 끝난 후, 혹은 세바스찬의 < Mia & Sebastian's Theme > 연주가 멈춘 뒤, 우리는 비로소 재즈를 이해하는 데 성공했을까. 재즈의 시간이 지나고 여전히 알 수 없는 여운이 남는다면, 우리는 다시 우리가 아는 재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재즈란 대체 무엇일까. ‘상대방과의 호흡? 화합?’ 혹은 곡의 틀 안에서 음계와 리듬의 자유로움, 충돌, 타협을 섞어내는 어려운 음악의 한 장르일까. 아니. 재즈란 어쩌면 좀처럼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마치 가붓하고 묵직하며 한없이 변덕스럽고 즉흥적인 우리의 마음처럼, 그리고 꿈처럼, 언어로는 결코 온전히 규정하지 못하는 것. 혹은 우리의 눈과 귀로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는 “치열한” 무엇.


그러니까 누군가 재즈가 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사실 재즈를 잘 알지 못하므로, 이렇게 말해야만 한다. 재즈란 그저 선우정아고, 세바스찬이며, 도망가는 것이고, 사라진 후에 남는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듣고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재즈에 대하여.

 

 

 

차승환.jpg

 

 

[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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