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걷다 보니 느껴지는 것들의 기록, 책 '산책가의 노래'

글 입력 2022.07.06 00: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산책가의_노래_앞표지.jpg

 

 

대학에서 <소비사회학>이라는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너무도 일상적인 단어이자 참 좋아하는 단어인 '산책'이 담론으로 제시되었다. 우선 나는 산책이 담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다음으로는 산책이 특권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단지 걷는 행위인 산책이 어떻게 특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무척 궁금했고 교수님의 설명을 기다렸다. 교수님께서는 '어딘가 목적지가 있어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닌, 주위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기 위해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런 시간을 누릴 수 있을 정도의 삶의 여유가 있다는 사실을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아차, 싶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산책은 분명 그냥 걷는 행위가 아니었다. 목적지가 없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시작과 끝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며 시간과 장소를 정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상상 이상의 굉장한 특권이었다.

 

그런데 책 <산책가의 노래> 속 화자는 어딘가 다르다. 자신에 주어진 그러한 특권을 누리고자 산책길에 나선 것 같지 않다. 목적이 있는 산책이 존재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저자는 슬픔을 겪었다 말한다. 그 슬픔을 안고 시작한 산책. 세 번의 뜨거운 여름. 치유를 향해 가는 연이은 산책길에서 보고 듣고 만나고 경험한 일상 속 풍경의 이야기를 은은한 수채화와 함께 담아낸 것이 바로 책 <산책가의 노래>이다.

 

본진은 그림라고 한다. 따라서 글보다는 그림에 더 손이 익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먼저였을지, 그림이 먼저였을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산책을 하던 중 획득한 잔상을 물리적인 결과물로 남겨두려 했던 저자의 의지이다.

 

그 점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감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참으로 멋진 일이다.

 

 

꽃향기에 취한

새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고

멍하니

봄을

바라보고 있다.

pp.30-31

 

 

사람이 두렵지도 않은지, 요즘은 꽤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도 쉬이 날아가지 않는 새들을 간혹 본다. 크게 발길질을 해야, 그제야 돌아보는 새들이 그저 번거롭게만 느껴졌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들도 무언가에 취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을지 모르는데.

 

 

오 잎 클로버

네 잎 클로버를 찾다가 오 잎 클로버를 찾았다. 더 값진 걸 찾은 것 같아 뽑아서 간직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찾은 순간 행운은 이미 나에게 왔으므로 또다시 누군가의 행운이 되도록 그대로 남겨 두었다.

p.199

 

 

이런 마음을 좋아한다. 우연히 찾아온 행운을 스스로에게 묶어두려 하지 않고 행운을 찾아 나설 누군가와 기꺼이 나누려는 마음. 나는 어쩌면 살면서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마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참으로 가져보고 싶은 마음.

 

치유를 위한 산책. 산책에는 목적지는 없어도 목적은 있을 수 있다.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산책. 책 <산책가의 노래>는 그런 산책의 서사였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나 또한 치유받는 기분이 들었다.

 

따스한 시간이었다.

 

 

[김규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