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지금과 여기로부터 멀어진, 2단지 - ~ [음반]

소리로 그려낸 원경(遠景)
글 입력 2022.07.1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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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종종 거리를 잴 때가 있다. 회화와 사진은 원근으로, 문학은 글로서 공간과 마음의 거리를 표현한다. 소리에도 분명 멀고 가까움이 있다. 소리가 발생하고 퍼지는 과정의 거리감, 멀찍이 떨어진 마음의 가사는 음악이 표현하는 원근이다. 우리는 흔히 음악을 듣고 ‘멀다'고 느끼진 않지만 2단지의 음악은 ‘멀리 떨어진'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글과 소리, 마음을 모아 원경(遠景)을 노래하는 2단지의 음악을 소개한다.

 

2단지는 속삭이는 저음과 아련함을 가진 싱어송라이터다. 2017년 EP <나무>로 데뷔해 정규 앨범 <9707>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발매했다. 2단지는 다작가이면서 동시에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음악가다. 어쿠스틱부터 드림팝까지 닿아 있으며, 종종 R&B와 신스팝이 등장하기도 했다. 은근한 실험과 탐구 속에서도 2단지는 늘 한결같은 감성을 지켰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내가 잠에서 깨면 구워 먹어줘'에서 확인할 수 있던 잔향 가득한 아련함이 2단지만의 색이 아니었을까.

 

지난 5월 발매된 EP <~>은 2단지의 드림팝 문법을 이어간 작품이다. 형태나 효과는 몽환과 노스텔지어를 표방하던 음악이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2단지는 표현을 골라내어 먼 곳으로 던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필자가 설명하려는 소리의 원경은 다음과 같다. 미약한 발생과 긴 파장으로 이어지는 소리, 간격이 멀어진 리듬의 노트, 코드의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긴 주기, 현재와 떨어진 무언가를 노래하는 태도까지. 롱숏으로 롱테이크를 담아내는 감독처럼 2단지는 음악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모아 느긋하고 멀게 노래한다.

 

첫 트랙의 제목은 ‘녘’이다. ‘녘’은 단어의 의미로서 숨겨진 거리를 은유한다. 방향 혹은 때의 무렵을 가리키는 행위는 멀리 떨어진 곳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녘'은 앨범의 전반적인 공간감을 제시한다. 빈티지한 피아노와 멜로트론, 울려 퍼지는 심벌과 아득한 스네어를 담아낸 룸은 사운드의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을 설계한다. 특히 파이프 오르간처럼 밀려오는 패드 위에서 조심스럽게 내딛는 2단지의 목소리는 사랑의 노랫말을 아련히 담아낸다.

 

앨범과 동명의 트랙 ‘~’은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곡이다. 2단지는 서로와 서론을 교차하는 운율, 읽거나 문장을 나열하는 행위로 사랑을 표현한다. 따뜻한 아르페지오로 시작하던 기타 사운드는 곡의 후렴에 이르러 거대한 풍경으로 펼쳐지고, 왜곡으로 가려진 탄현과 공간을 타고 뻗어나가는 기타는 노랫말 사이의 빈틈에 스며든다. 특이한 점은 타악기 없이 음악을 채웠다는 것이다. 오히려 짧은 파장을 제시하기보다 긴 여운을 남기려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타이틀 ‘물결'은 독특한 거리감을 연출한다. 가사에서 화자는 ’멀지 않은', ‘이곳'에 있지만, 정작 담아야 할 마음은 희미해지고 사라져 ‘남겨진 건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늘 먼 곳만을 바라보던 태도에서 시도된 약간의 변화다. 사운드 또한 달라졌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베이스와 리듬을 한 땀씩 채우는 드럼은 앨범의 밀도와 강도를 조금씩 높여갔다. ‘물결’은 노랫말의 형태나 코드가 순환하는 모습에서 포크적인 색채가 짙게 드러나는데, 익숙한 형태의 작곡은 거대한 원경 아래에서 새로운 감각으로 완성됐다.

 

마지막 트랙 ‘새'는 드림팝에서 신스팝으로 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자드럼과 복잡해진 리듬, 그리고 기타의 자리를 대신한 건반은 아기자기한 구성으로 곡을 채운다. 그럼에도 가사는 ‘머나먼 곳'과 ‘아주 먼 곳'을 반복해 보여주며 원경의 시상을 유지한다.

 

*

 

2단지의 <~>은 마음을 원경으로 은유한다. 앨범의 그리움과 아련함은 멀리 떨어진 무언가였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사운드와 가사는 쉽게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하며, 시상으로 사용되던 물결과 바다는 아득한 수평선의 풍경을 그린다.

 

멀리 떨어진 것의 서술은 적막하거나 고요하고 외로운 일이다. 그리고 닿을 수 없는 대상을 인식함이 그 감정을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지금과 여기로부터 멀어진 소리를 쌓아 올린 2단지는 그의 마음과 기억을 청자들에게 제시한다.

 

마치 해변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파도치는 기억이 필름에서 재생되는 모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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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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