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사람]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이름 '취준생'
글 입력 2022.06.3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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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했어야 하는 나이, 스물 중반. 초등학교만큼 다닐지도 모르겠다는 신입생 때의 우스갯소리를 실현하려는 건지 유예생이라는 이름으로 끈질기게도 붙어 있다.

 

어릴 적 스물 중반이라고 하면 참 어려 보였다. 취업해서 일을 하러 다니는 그 나이대 사람들을 보면 마치 아이가 커다란 아빠 정장을 입고 역할놀이를 하러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크면 과자 많이 사 먹어야지. 이게 스물 중반을 보는 어릴 적 시선이었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스물 중반은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대학에 들어가면 어른이라며,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보단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을 드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많아봤자 고작 3년인데.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기간은 그렇게나 짧았다.

 

그렇게 스물에서 훌쩍 벗어난 스물 중반. 아직까지 어른이 되지 못하고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재학생도 아니고 졸업생도 아닌 어중간한 유예생처럼,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취준생이 되었다.

 

 

 

제가 졸업이요?


 

원래는 이번 연도까지 학교를 다닐 줄 알았다. 하지만 어째선지 학교에서는 졸업하실 거냐는 전화가 계속 왔고, 그제야 학점을 다 채웠다는 걸 알게 됐다. 다급하게 서류를 정리하고, 유예를 신청하기까지. 정신없이 몰아치다가 유예 신청 완료 메시지를 보자 힘이 탁 풀렸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사회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천천히 토익과 자격증을 준비한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학교를 다니는 스물 중반과 학교를 다니지 않는 스물 중반의 느낌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하루라도 빨리 직업을 구해야 할 것 같고, 하루라도 빨리 독립을 해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맨몸으로 사회에 내던져진 샘. 금방 일을 하고 싶어도 내가 갖춘 자격은 턱 없이 부족했다. 차근차근 공부를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나가기 시작했다. 왜 영어를 쓰지 않는 회사조차 토익이 필수인 것처럼 되었는지. 수능 때나 열심히 공부했던 영어들이 왼쪽으로 들어와 오른쪽으로 나가길 반복했다.

 

 

 

하고 싶은게 없어서


 

아침에 일어나 저녁때 들어오는 삶을 살면서도 남들보다 조금 더 척박한 이유는 '꿈'에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신입생 때까지만 해도 어느 회사에 들어가서 어떤 부서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있었는데. 이제는 그저 취칙이라는 것을 목표로 돈이라는 목적을 위해 달려가니 어디든 취직자리가 있다면 하는 생각만 들었다.

 

공부를 하다가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렇게 힘든 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취직이라는 것은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목표였다. 그냥 계속 이렇게 공부나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주식도 도박중독이 될 수 있다던데. 공부에 계속 매달리는 것도 중독이 되는 걸까 하는 시답지 않는 생각만 들었다.

 

 

 

새벽이 싫어요


 

mbti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infj는 밤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새벽만 되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른다. 이러다 서른까지 이러고 있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들.

 

기분 전환으로 노래를 듣자니 연애를 할 때도 하지 않았던 '이 노래 주인공은 나'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우울함만 더해졌다. 이럴 때면 인생이 뮤지컬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슬픈 일이 있더라도 넘버 하나만 부르면 다 해결되어 있는 상황. 이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중 위기는 막말로 거저먹고 싶다.

 

 

 

가장 가난한 시기


 

5년째 좋아한 뮤지컬이 이렇게 싫어진 시기는 처음이었다. 왜 하필 많은 것 중에서 뮤지컬인지. 내 배우는 왜 대극장 주연 배우인지. 왜 이럴 때만 재밌는 뮤지컬들이 몰려오는지. 비싼 곳은 15만 원 그나마 싼 곳은 6만 원. 15만 원이면 15일 치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회전문을 돌던 나는 정말 그 문에서만 뱅뱅 돌고 있다.

 

문제는 싫어서 보기 싫은 게 아니라 더 격렬하게 보고 싶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돈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돈만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빨리 취직을 해야지로 흘러가면 좋으련만. 언제나 왜 나는 돈이 없지 하는 자존감을 파먹는 형태로 가버린다.

 

돈이 뭐라고 하며,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냐는 생각에 배달어플을 키면 배달료를 보고 어플을 닫는 날의 연속이다.

 

 

 

뭐가 되고 있긴 하네


 

2달 동안 준비하던 토익이 끝내 막을 내렸다. 아침에 나와 저녁에 들어가던 삶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처음 본 토익이 목표 점수에 턱걸이로 걸렸다. 매번 결과 없는 과정을 밟다 보니 목표에 대한 확신도 없었는데, 눈에 목표 점수가 보이니 뭐가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 보다 과정을 중요시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가 나왔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잘 못했지만 열심히 했으니 됐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과정을 장기적으로 잡는다면 쉽게 지치는 것 같았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했으니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는 작은 목표들을 세울 차례인 것 같다.

 

오랜만에 이렇게 하다 보면 취직 까짓것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일 뭘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 일기와도 같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거의 누운 거나 마찬가지인 자세로 타자를 치고 있다. 시험을 보고 난 후, 내 몸은 지구의 다른 생명체와는 다른 중력을 받고 있다. 애초에 일주일은 나에게 휴식을 준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와식 생활이지만 몸이 편하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쉬는 게 쉬는 것 같지가 않다.

 

매일 꾸준히 공부만 했기에 거의 정해진 삶을 살았다. 그런데 내일 할 게 없다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불안하게 할 줄이야. 한창 바쁠 때는 내일 할 일이 없으면 좋겠다 싶더니, 이제는 내일 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내일 할 일이 없으니 미래가 불안했다. 실질적으로 취직을 못하는 상황보다도 가장 암울한 모습으로 그려내는 미래에 마음이 힘들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밖으로 나갔다. 나가서 작은 일거리를 찾았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그저 집안일일지 몰라도 머릿속을 깔끔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머리가 깔끔해지니 드는 생각들도 달라졌다. 이렇게 하나하나 하고 있으니 다른 것도 잘 되겠지. 이미 이만큼 해놓았으니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

 

여전히 내일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거창한 계획을 세울 수도 없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무언가 되겠지 싶다. 깊게 생각할 거 없이 이러다 보면 무언가 되어 있겠지, 취직? 되어 있겠지. 계속 해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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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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