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의미할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 [음악]

신현필, 고희안의 색소폰&베이스 앨범 [Iceland]
글 입력 2022.06.2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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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신현필, 고희안.jpg

 

 

신현필 & 고희안 - Iceland (2022, 엔플러그)

 

행위 바깥의 것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 행위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것. 거기에서 오티움 프로젝트가 시작했다. 첫 번째 앨범이었던 색소폰 연주자 신현필과 베이스 연주자 서영도의 [Otium]에 이어서 이번 앨범 역시 장르의 테두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연주자들끼리 관심사를 공유하고 그들 사이의 밀도가 높아지는 과정에 주목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경계들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하겠다는 패기나 그 무엇과도 비슷하지 않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런 선언들이 음악보다 더 큰 소리를 냈으나 말도 없이 사라진 광경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봐왔는지. 그런 의미에서, 신현필과 피아노 연주자 고희안이 이번에 들려준 음악은 억지로 실은 무게감 없이도 충분히 묵직하고 따뜻하다.

 

신현필이 전작에서 보여준 차갑도록 맑은 북구의 정서는(이제는 신현필 스스로의 정서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번 앨범에서도 ‘아이슬란드’라는 간명한 바탕 위에서 이어진다. 색소폰 리드를 타고 내려오는 호흡의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곡들은 고희안의 섬세하지만 단단한 피아노의 앞뒤에서 체험의 공간을 확장한다. 공간감이 느껴지는 녹음도 여기에 한 가지 역할을 했을 테다.

 

아이슬란드 말로 집을 뜻하는 ‘Heima’에서는 반복되는 피아노의 두 음 사이를 색소폰이 오고 가다가 점점 이야기가 고조된다. 그러다 잠시 꿈속에 빠진 것처럼 현악이 멜로디를 어루만지듯 일정한 톤으로 몇 마디 건넨다. 다시 피아노가 반복적으로 두 음을 연주하고, 이게 꿈이었나 생각하던 찰나에 현악이 색소폰과 피아노의 한 편에 합류하면서 그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혹은 꿈의 바깥으로 이 기별들이 나왔음을 이야기한다.

 

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아름다운 집인 ‘Heima’로 돌아가기 이전 그들이 먼저 올라탄 도로가 있는데, 바로 아이슬란드의 가장 주요한 1번 도로인 링 로드(Ring Road)다. 앨범의 첫 곡 ‘828 miles’는 이 링 로드의 전체 길이를 뜻한다.

 

1330킬로미터 넘게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피아노의 반복되는 리듬과 멜로디 앞에서 색소폰은 그 광활함을 불어낸다. 곡 중간 잠깐의 정적은 오랜 시간 도로를 달릴 때 생기는 먹먹함처럼 느껴지고,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이미 우리는 그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어느새 음악이 그 길을 따라가며 마주치는 풍광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과 함께 걷는다. 카페에 들어간다. ‘Kaffi Havari’에서 수프와 빵, 커피를 주문한다. 기다리는 동안 짐짓 이곳의 시간이 여행이 아니라 일상처럼 느껴진다.

 

신현필의 색소폰도 어딘지 묘한 느낌을 전해준다. 리드의 질감은 여전하고 다만 조금씩 멀어졌다가 가까워진다. 고희안의 피아노는 그 주변을 배회하며 하나의 완결된 단상이자 단정한 호흡을 만들어낸다. 이 멜로디들이 서정으로 끝나는 건 지금 여기에 있음에 대한 기분 좋은 실감 때문이지 않을까. 언젠가는 이곳에, 그리고 이 음악 속에 있었다는 것을 미리 추억하듯이.

 

이번 앨범은 뚜렷한 장소성으로 듣는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떠올릴 만한 어떤 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히 그 안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모두 다를 테고, 이런 우리 각자의 마음과 감상이 두 연주자가 바라는 것 아닐지 생각해 본다. 아치볼트 매클래시가 시에 관해 건넨 말을 음악으로 바꿔보면서... “음악은 의미할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

 

* 글의 제목은 이수명의 시론집 「횡단」(2019, 민음사)에서 인용한 아치볼트 매클래시의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라는 문장을 재인용 한 것이다.

 

 

 

조원용 컬처리스트.jpg

 

 

[조원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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