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연'스러움, 그것이 예술. - 최인 기타 리사이틀

당당히 이것을 예술이라 부르리라.
글 입력 2022.06.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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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회,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드문드문 들리고 조곤조곤한 기타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힐 때 느껴지는 풍부한 감성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연주자와 함께 조용히 교감하는 청중들.

 

오래 전부터 막연히 이런 이미지를 그려보곤 했다. 찾아보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은데, 환상속에나 있을 법한 연주회라며 상상의 나래를 그리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자연을 동경하는 나에게 자연과 함께하는 연주회는 제법 낭만적인 사건이다. 이보다 더 낭만적인 일이 있을까!

 

이런 내가 '자연속에서 즐기는 자연을 담은 음악회'라는 소개 문구에 끌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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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의 연주회가 열렸던 문화비축기지는 과거 마포 석유비축기지였던 곳이다. 당시 존재하던 5개의 탱크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됐는데, 오랜 기간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다 2013년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했다.

 

5개의 탱크 중 휘발유를 보관했던 T1은 탱크를 해체하고 유리로 된 벽체와 지붕을 얹어 매봉산의 암반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재는 전시와 워크숍, 공연을 진행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T1 파빌리온은 원통형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유리로 주위를 감쌌기 때문에 어디를 돌아봐도 푸른 녹음이 느껴지게끔 설계되어 있다.

 

 

최인 기타 리사이틀_ 파빌리온_사진2.jpg

 

 

원통형 구조라는 특성 때문에 음악회 소리가 잘 울려퍼진다는 점은 T1 파빌리온의 장점 중 하나다. 소리가 쉽게 새어나가지 않고 공연장 내부를 계속 맴돌기 때문에 공연을 감상하는 우리들에게 연주자가 풀어낸 선율이 쉽게 꽂힌다. 일반적인 공연장이라면 잘 들리지 않을 섬세한 음들까지 직관적으로 들리기에 연주에만 집중하기 정말 좋다. 조용히 눈을 감고 음악을 음미하면 마치 거대한 공연장에 온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물론, 그렇기에 소음 또한 잘 들린다. 기침 소리, 물건 떨어지는 소리, 사소한 잡음 등등 또한 음악 소리와 함께 잘 울려퍼진다. 그리고 연주가 끝난 뒤에 관객들과 소통하려는 연주자의 잡담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단점 또한 있다. 에코가 과하게 들어간 노래방 마이크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소리가 너무 중첩되고, 그에 따라 멀리 있으면 멀리 있을수록 연주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힘들다.

 

곡의 작곡 의도, 작곡 배경, 작곡 당시 느꼈던 감정을 들어보고 싶었던 내게 이 점은 매우 아쉬운 요소 중 하나였다. 내가 곡의 정보를 알게 된 경로는 팜플렛이 7할 이상을 차지했다. 그나마 어렴풋이 들었을 때 팜플렛과 내용이 겹쳐서 그리 큰 아쉬움은 들지 않았다는 게 위로가 될 요소라면 요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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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도 정말 좋았지만, 기타리스트 최인의 연주곡 또한 T1 파빌리온과 잘 어우러졌기에 리사이틀을 감상하는 1시간 30분 내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기타리스트 최인은 자신을 '여행과 캠핑, 자연을 좋아하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여행을 가서 자연 속에 있다보면 사람 생각이 나요. 그렇게 떠오른 것들을 바탕으로 곡을 쓰죠."

 

 

자연 속에 녹아드는 사람이 바탕이 된 연주였기 때문일까, 그의 곡들은 억지로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러니까, '곡을 만들어야 해'라는 강박 속에서 만들어진 곡이 아닌 것 같다는 의미다. 심상이 떠올라서 곡을 만든 것과, 곡을 만들고 심상을 부여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심상대로 만든 것은 우리가 듣기에는 '불규칙하다'고 느낄 수 있다. 무질서하고 여지껏 듣던 음악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한 음, 한 음이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고, 다음 나올 음이 무엇일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누군가에겐 정돈되지 못함, 혹은 혼란으로 다가올 테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것을 낯설다고 여기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허나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심상은, 그리고 그것의 원천인 자연은 애초에 무질서하고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패턴이 정해져있지 않고 변화무쌍한 것이 자연이다. 우리의 통제에서 쉽게 벗어나고 예측 불가능한 특성을 지닌 것이 자연이기에, 난 그것을 '아름답다'고 칭하고 싶다. 정해져 있지 않고 고정된 것이 아닌 자연을 난 감히 예술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최인의 곡들은 그렇기에 예술적이다. 아름답다. 정말로 아름답다. 단번에 사람 마음을 홀리진 않지만, 조금씩 천천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 깊숙한 곳으로 스며든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우린 그렇게 최인의 연주에 몰입하고 만다. 그래, 이게 진정 예술이지.

 

 

 

 

최인의 곡들은 어느 하나 가만히 내버려 둘 곡이 없었다. 내가 평소에 동경해 마지 않던 자연의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이와 비슷한 형태를 띠었으리라. 그가 느꼈다던 자연이 무엇인지 이토록 생생히 느껴질 줄이야.

 

산과 숲, 섬, 바다, 바람, 길, 그리고 사람. 아득한 선율이 들려오는 T1 파빌리온에서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저기 저 널리 펼쳐진 자연에서 시작해 나로 다가오는 이 부드럽고 유연한 과정을 예술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예술이라 불러야 한단 말인가?

 

비록 그의 말과 소통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음악과는 제대로 된 소통을 한 것 같다. 그가 체험했다던 자연, 그리고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의 향기가 고스란히 느껴졌으니 말이다.

 

 

(Together.)

 

 

앙코르곡인 <함께.>를 듣는 순간,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음을 감각했다.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순간이지만, 쉽게 언어로 내뱉을 만큼 가벼운 순간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만큼은 모든 사람들과 같은 감정을 공유했으리라 자신있게 이야기 하고 싶다.

 

난 이 감정을 느끼기 위해 문화 예술을 즐긴다. 모두가 함께 된다는 것. 각자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있다는 것.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닌,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우린 태생적으로 홀로지만 결국은 같은 감정을 느끼고 같은 상황을 공유하는 하나의 개체,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

 

벅차올랐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그래, 이것이 예술이었지. 이게 우리의 삶이었지. 그러니까 우린 외롭지 않은 셈이지. 함께니까. 혼자가 아니니까.

 

이것을 체화하고도 자연이, 예술이 아름답다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난 여기서 예술을 느낀다. 문화 예술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 감각을 영원히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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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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