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 사람이 예민한 걸까, 당신이 무지한 것일까.

"피씨주의자"들이 예민해서 불편하신가요?
글 입력 2022.06.2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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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엘의 트위터]

 

 

배우 이엘이 트위터에 남긴 짧은 글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워터밤 콘서트 물 300톤 소양강에 뿌려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가뭄과 기상이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멀쩡한 물을 굳이 쓰면서 공연을 해야만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던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준 글이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위드 코로나로 공연계가 다시 활기를 찾은 이 시점에서, 물을 뿌리면서 공연을 진행하는 '워터밤 페스티벌'과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가수 싸이의 '흠뻑쇼'가 돌아왔다. '흠뻑쇼'는 한 공연에서 약 300톤의 물을 사용한다고 싸이가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 흠뻑쇼도 코로나 이전 때처럼 전국 투어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약 3천 톤의 물을 사용하게 된다. 즐거운 공연을 위해 사용되는 물이지만, 가뭄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실제로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도 많은 이 시점에서 '공연을 위해 사용되는 3천 톤의 물'은 어쩐지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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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우 이엘의 트윗을 포함하여, 이러한 물 사용에 불편함을 느끼는 일부 사람들에게 반박하는 글도 적지 않다. 엄연히 자신의 돈을 지불하여 원하는 공연을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 아니며, 일시적인 공연에 쓰이는 물의 양보다 골프장 관리나 워터파크에서 사용되는 물의 양이 훨씬 방대하니 차라리 그것에 문제 제기를 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동안 많은 물의 양이 낭비되고 있는 것에는 가만히 있다가,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공연계가 겨우 공연을 재개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에 태클을 거는 사람들에게, 괜히 자신의 정의로움을 어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판했다. 진심으로 사회 정의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척'을 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쉽게 비난하고, 가르치려고 들며 도덕적 권력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에 의하면, 워터밤 페스티벌과 흠뻑쇼에 문제 제기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여러 사회 이슈들에 한 마디씩 거들고 'PC'(정치적 올바름; 말의 표현이나 용어 사용에서 각종 차별과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태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 진정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움을 어필하는 '피씨주의자'에 불과하다.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고, 자신의 날카로움을 과시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태도일 뿐이며, 사소한 거에 괜히 '예민하게' 구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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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엘의 트윗에 반박한 이선옥 작가의 글 일부 발췌]

 

 

그런데 여기서 '예민함'이라는 표현에 의문이 든다. "피씨주의자"들이 예민한 게 아니라, 어쩌면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사회 문제들과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자신의 피부로 와닿자 괜히 논점을 흐리고 '예민함'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환경 운동가들은 오래전부터 골프장 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해왔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절약하고 환경에 최대한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법을 실천하고 또 고민해왔다. '그렇게 따지면 골프장도 없애고 워터파크도 없애!'라는 반박은 사실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래 정말 지구가 위기인데, 제발 그런 것들에 관심 좀 가져봐'라고. 흠뻑쇼에만 괜히 예민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사실 계속 예민하게 문제를 제기해왔다. 예민하지 않은 자들이 사회 문제에 무지했을 뿐이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얼마나 정의롭길래 그러냐, 정의로운 척하는 것이다"라는 비판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겉으로라도, 말이나 생각으로라도 정의롭게 하는 것이, 의식적으로 정의롭고자 하는 것이 그러한 정의에 무지하게 사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고.

 

예민하지 않은 모습이 '쿨한'게 아니라 사실은 '이기적'인 것이다. 돈 냈으니까 된다, 이거 하나 즐긴다고 바뀌는 거 없다는 쿨하지만(?) 안일한 생각이 모여서 현대 사회와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이 예민한 게 아니라, 당신이 외면하고 싶은 사실이 인지되어서 불편한 건 아닐지 감히 생각해 본다. 맞는 말인데, 인정하면 자신이 이기적인 것이 들통날 테니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정의로운 척 하지 말아라, 너네도 이기적이다'라고 방어 기제를 발동하는 것은 아닐까.

 

비슷한 예로, 모든 범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에게 흔히들 '피해 망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 범죄에 조금씩 무지해진다면, 당장의 내 마음은 편할 순 있어도, 거기에 죽어가는 무고한 피해자들은 평생 줄어들지 못할 것이고, 그런 본인도 그 피해자가 절대 되지 않으란 법이 없다.

 

즉, 우리는 때로 예민할 필요도, 정의로운 척할 필요도 있다. 무지한 것이, 무시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태도다. 그런 측면에서, 정의로움을 어필하는 피씨주의자가, 쿨하다는 걸 가장한 이기주의자보단 당연히 더 낫다고 본다.

 

누구보다도 문화 예술을 사랑하고, 또 그 업계에서 일을 해오면서 그동안 공연계가 코로나 상황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위드 코로나로 전환된 시점에서 여러 행사들의 재개가 얼마나 소중한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분명히 있을 텐데" "굳이" 이 시점에서, 그러한 행사를 해야만 하는지는 의문이다.

 

텀블러 사용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만큼 지구온난화와 환경 오염이 심각해진 이 상황에서 내 텀블러 사용 행위가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일회용품을 써버리는 것보다, 그럼에도 나 한 명이라도 텀블러를 쓰는 게 조금이라도 더 낫다. 즉, 가뭄이 계속되고, 환경 문제가 대두되는 시국에 골프장 관리나 워터파크보다 물 낭비의 정도가 적다고 이 행사들을 강행하는 것보다, 그럼에도 하나라도 덜 하는 게 조금이라도 더 나을 것이다.

 

이 대량의 물을 사용하는 공연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상황에서, 요즘 사람들이 사회 문제들에 대하는 태도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본인이 정의롭지 못한 것에 애써 탓할 사람을 찾아 자기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자신은 없어서 진실에 관해 언급한 사람에게 괜히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들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정의로운척하면서 도덕적 권력을 쥐고자 한다는 "피씨주의자"들이 정말로 도덕적 권력을 가졌다면.. 피씨주의자들은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과연 누가 우위에서, 사회 문제를 만들고 또 무시하고, 프레임을 씌우며 애써 묻어보려고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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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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