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회피하면 평화를 찾을 수 없어요.

영화 <디 아워스> (2002)
글 입력 2022.06.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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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워스_포스터.jpg
영화 <디 아워스> 포스터

 

 

영화 <디 아워스>는 나의 첫 ‘자기만의 방’에서 만났다. 경기도민 생활을 정리하고 대학 근처에 방을 구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를 벽면에 붙이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노래를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서 듣고, 밥을 차려 먹었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였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우울이 나를 찾아왔다. 내 몸은 매트리스 아래로 꺼져서 지하로 내려가듯 무거워서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 속에 나를 가뒀다. 그때 본 영화가 <디 아워스>다. 영화는 내 생각보다 더 우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지 못해 살아가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의 공허한 눈빛과 강물 흐르듯 들리는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나를 안아줬다. 나에게 “우울해도 괜찮다.”라며 위로해줬다.

 

 

버지니아 울프 블루.jpg
영국 런던에서 직접 찍은 파란 명판

 

 

나는 순식간에 버지니아 울프에게 빠졌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을 읽고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었다. 영국 런던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건물을 찾아갔다. 호텔이 된 건물에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울프의 이름이 적힌 파란 명판*을 찾았다. 한 인물을 거의 맹신하는 것처럼 좋아했다. 올해 열린 ‘제10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디 아워스> 상영 소식을 듣고 바로 표를 예매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동인천역으로 향했다.

 

(*파란 명판 (Blue Plaque) : 런던에서 유명인사가 과거에 살았던 건물에 붙이는 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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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아워스> 스틸컷 속 클라리사 (메릴 스트립)

 

 

 

세 여자의 하루, 그리고 세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디 아워스>는 세 여성의 일생 중 하루를 고리로 연결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파티의 꽃은 자기가 직접 사겠다고 말했다.”는 「댈러웨어 부인」의 첫 문장이다.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가 글을 쓰면 1951년의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가 책을 읽고 2001년의 클라리사(메릴 스트립)이 꽃을 사러 나간다.


세 여자는 모두 삶을 간신히 버텨내는 사람처럼 보인다. 버지니아가 숲에 누워서 생기가 사라진 새의 눈을 바라보고 로라가 이웃집에 리차드를 맡기고 도망가듯 떠나고 클라리사는 리차드의 수상 축하 파티를 열기 위해 요리를 하다 눈물을 터뜨린다. 그들의 얼굴은 대체로 불안하지만 가끔 무거운 고요한 평화가 스친다. 인생의 한 페이지를 읽는다고 섣불리 그들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어떤 세월을 보냈을지 조심스럽게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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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아워스> 스틸컷 속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떠난 자와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삶을 회피하면 평화를 얻을 수 없어요.” 죽음은 삶을 회피하는 것일까? 직면하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듯이, 버지니아 울프는 주머니에 돌을 넣고 천천히 그리고 과감하게 강으로 걸어갔다. 로라가 둘째 아이를 낳자마자 리차드와 남편을 떠났다. 로라에게 그곳의 삶 자체가 죽음이었다. 그녀들에게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가는 삶이었다. 이것은 삶의 아이러니다. 이기적인 생존하기 위해 필연적인 선택이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리차드가 선택한 죽음도 그렇다. 리차드는 생존을 위한 선택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어머니 ‘로라’의 생존은 상실의 상처를 받았고 끝없는 우울의 근원이 되었다. 리차드의 죽음은 ‘클라리사’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그들은 모두 삶의 목적이 내가 아닌 타인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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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아워스> 스틸컷 속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 영화 <디 아워스>에서 많은 외로운 사람을 보여준다. 그들이 겪는 우울과 고통의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그들을 느슨한 줄로 연결되어있다. 줄의 연장선이 스크린 너머 영화를 보는 나에게 닿는다. ‘어쩌면 나의 우울도 그들과 같은 궤를 이루고 있지 않을까?’라는 착각에 빠진다. 나의 고독은 완전히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나의 삶을 지킬 수 있다. 오늘도 난 영화에 빚을 졌다.

 

 

[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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