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열광하는 '인왕제색도'

글 입력 2022.06.2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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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건희 컬렉션이 세간에 공개된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그중 〈인왕제색도〉에 대한 열기는 여전히 식는 법을 모르는 듯, 전시 매진 행렬에 1등 공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 또한 이건희 컬렉션을 보기 위한 이른바 ‘피켓팅’을 경험했다. 피켓팅을 뚫고 들어선 전시장을 찬찬히 둘러본다. 사람들이 유독 많이 몰려있는 곳, 그곳이 바로 〈인왕제색도〉가 자리한 곳이다.

 

 

[크기변환]정선필_인왕제색도.jpg

정선, 〈인왕제색도〉, 1751년, 국보 제216호, 지본수묵, 138.2x79.2cm, 국립중앙박물관.

 

 

조용한 관람 분위기도 좋지만, 전시 관람의 재미를 더하는 것은 역시 자유로이 감상을 나누는 관객들의 모습, 들려오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이가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물러 있는 모습을 마주하면, 그 작품의 무엇이 그 사람을 오래 머무르게 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가끔은 아이들의 1차원적인 감상이 뒤통수를 때려올 때도 있다. 저게 미술 감상의 본질이었지, 생각하며 모든 것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를 잠시 내려놓는 자신을 발견한다.

 

〈인왕제색도〉 앞에서 보았던 모습들을 떠올려보자. 짤막한 탄사부터 생각보다 작품의 크기가 작아 실망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유명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휴대폰 카메라로 작품을 담는 사람, 한참을 그림 앞에 앉아 작품과 교감하는 사람, 이 작품이 왜 유명한 건지 궁금한 아이들까지 다양한 모습이 떠오른다.

 

전시 관람의 옳은 방식이란 없다. 하지만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관람의 목적이 휴식이든, 취미든, 공부이든 간에 전시와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면 관람의 재미는 배가 된다는 것이다. 동행한 사람에게 아는 척하기도 좋고,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눌 때는 배로 재미있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인왕제색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인왕제색도〉를 그린 화가, 겸재 정선과 진경산수화

 

정선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형식을 완성한 화가이자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익히 알려져 있다. 호는 겸재이고 자는 원백이다. 4대가 벼슬을 하지 못해 실질적으로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이었으나, 당시 정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노론의 핵심 세력 안동 김씨 집안 김창집의 도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림의 뛰어난 재능을 보인 정선은 이후 영조의 총애를 얻었으며, 명예직에 가까우나 이후 종2품에 오르기도 하는 등 화가로서, 또 문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지냈다.

 

또 유력한 후원자였던 안동 김씨 세력과 더불어 평생의 벗이었던 시인 사천 이병연과 함께 산수를 유람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는 등 문학적, 예술적 교류를 나누었으며, 이 과정에서 정선은 조선의 실경을 그려내는 조선만의 진경산수화 화풍을 성립하였다. 중국의 관념적인 산수풍경을 그리는 풍조가 절대적이었던 조선 중기를 지나, 드디어 조선의 실경을 소재로 한 산수화가 그 위상을 달리하는 변화를 맞게 된 것이다. 정선이 성립한 진경산수화의 형식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무엇보다도, 우리 산천의 모습을 감상할 때의 감동을 본인만의 변형과 조형원리를 이용해 독자적인 화풍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정선이 바라본 인왕산

 

〈인왕제색도〉는 기본적으로 비가 내린 후 물기를 머금은 인왕산의 모습을 그린 수묵 산수화이다. 실제 정선이 안왕산의 모습을 직접 보고 그린 산수화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그림을 그릴 당시 며칠 내내 비가 내리다가 개었다고 전해진다. 정선 75세에 그려진 만년 작으로, 그 완숙한 필치의 묘미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며, 인왕산을 부수적인 요소가 아닌 독립적인 주제로서 그린 몇 안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왕제색도〉를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화면 가득 들어찬 인왕산의 모습이다. 특히 전경을 농묵으로, 원경을 담묵으로 그리는 보통의 산수화 기법과 달리, 원경에 위치한 인왕산의 모습을 농묵으로 대담하게 표현했다. 또한 근경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원경은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적용했다.

 

또한 실제 인왕산의 바위가 밝은 색상인 것에 비해, 정선이 그린 인왕산의 바위는 어둡게 칠해져있다. 이는 정선의 특징적인 표현법으로, 먹을 여러 번 덧칠하는 적묵법이 적용된 것이며, 정선은 인왕산의 묵직한 괴량감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적묵법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묵직한 산등성이와 대비되는 하단의 하얀 안개는 비 온 뒤 물기를 머금은 인왕산의 모습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면서 그림 전체에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여러 가지 시점을 혼용해 사용하는 기법은 엄밀히 말하면 사실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선의 진경산수화란 그저 실경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실경을 볼 때의 감동을 옮기는 것이다. 화면의 세부적인 요소들을 통해 인왕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를 보았을 때의 감동을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의 고민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인왕제색도〉 속 가옥과 인왕산 일대

 

언뜻 바위산의 엄청난 존재감에 하단의 작은 가옥을 눈치챘을지 모르겠다. 이 기와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로는 절친한 친구였던 시인 이병연의 집이라는 해석이다.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영조 27년 5월 당시 이병연은 깊은 병세를 앓고 있었다고 하는데, 비가 온 뒤 하늘이 개는 것처럼 친구 이병연의 병세가 나아지기를 바라며 인왕제색도를 그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 속에 이병연과 관련된 직접적 언급이나 서사가 없기에 이병연의 쾌유를 위해 그려졌다는 해석은 무리가 있다고 보는 미술사가들도 있다.

 

두 번째는 정선 자신의 저택이었던 인곡정사를 그렸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인왕제색도가 당대 명문가이자 정선의 또 다른 후원자였던 이춘제의 주문화이며, 따라서 그림 속의 가옥이 이춘제의 집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외에도 근처에 있던 정선의 외조부 박자진의 고택일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전경에 그려진 이 가옥에 대해 이렇게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왕산과 백악산 일대가 정선이 나고 자란 곳이자 당시 정선의 유력한 후원자였던 안동 김씨 집안의 오랜 세거지이면서, 친구 이병연의 거주이기도 했던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시 인왕산 일대는 이른바 ‘청풍계’라고 불리며, 조선 중기 이래로 문인들의 문학과 예술 교류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여겨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다시 〈인왕제색도〉를 바라보다.

 

정선과 후원자를 비롯한 당대 문인들 사이에서 당시 인왕산 일대는 문학적, 예술적 교류를 나누는 장소였다. 당시 조선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인기와 명성을 누렸던 정선이라는 화가와 정계의 유력한 인물들, 문인들, 시인들이 공유하는 상징적인 장소였을 테다.

 

〈인왕제색도〉를 보고 있자면, 나는 살아보지도 못했던 그 시절의 생동감을 느낀다. 비록 300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했다. 아마 정선과 같은 화가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의 역사를 상상하는 일은 지금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시와 그림과 글을 즐기고 산수를 유람하는 선비들, 이를 시중드는 시동들, 이 모든 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백성들, 저잣거리에 돌아다녔을 소문들, 비가 그친 뒤 적막하게 내려앉은 산안개와 그 사이로 육중함을 드러내는 산등성이. 개인의 상상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그 시대를 정선의 화면을 빌려 엿본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인왕산을 보며, 정선은 어떤 마음으로 이를 종이 위에 옮겼을지 가늠해본다. 또 정선이 담은 한 폭의 인왕산 그림은 당신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하는지 궁금하다.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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