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마주친 사색의 시간, 혜화 <어쩌다 산책>

공간 탐색 - 책을 고르는 즐거움이 있는 곳
글 입력 2022.06.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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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의 서점 찾기


 

노력하지 않으면 독서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짬을 내서라도 읽지 않으면 생활과 미디어의 늪에 파묻혀버리기 때문이다. 챙겨볼 것이 많아질 수록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시간도 꼭 사수해야겠다고 느낀다. 활자를 통해 느끼는 감정과 영상을 보며 느끼는 감정의 결이 너무 다르고, 창의력이 생기는 범위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속도다. 내가 접하고 있는 콘텐츠의 속도를 온전히 나에게 맞출 수 있는 것은 독서라고 생각한다. 유익한 내용이건, 재미있는 예능이건, 흥미진진한 영화건 모든 영상물들은 그들의 속도와 화면 밖의 연출진이 의도한 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흘러가는 영상을 통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붙잡아 두지 않으면 금방 휘발되고 만다. 그래서 활자를 읽으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고 기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루를 인지하며 살아가는 습관을 독서가 도울 수 있다.

 

어떤 책을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에게 맞는 서점을 먼저 찾으면 좋을 것 같다. 어떤 글을 보니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서점에 가서 책을 잔뜩 산다고 한다. 정작 사고 읽지는 않는데 그 사람은 사는 행위에 초점을 둔 것이다. 나에게 유익할 재료를 찾으며 서점을 돌아다니는 활동을 통해 안정을 되찾았나보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도 좋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그리며 서점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내 모습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독서의 기회가 생기니 말이다. 여기서 내 평소 텐션, 가치관, 흥미, 취향에 맞는 분위기의 서점을 찾으면 독서가 더 쉬워진다. 그리고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해주는 서가나 사장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오늘은 내게 그런 경험을 가져다 준 서점 한 곳을 소개하려고 한다.

 

 

 

우연히 마주친 사색의 시간


 

책을 읽다가 풍경을 보고, 다시 읽다가 벤치에 앉아서 쉬는 독서. 책을 들고 공원으로 산책 나간 듯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서점이 있다. 대학로에 위치한 <어쩌다 산책>이다. 간판이 따로 없는 이곳은 대학로의 소극장들을 지나 뮤지컬 센터로 올라가기 전에 보이는 건물의 주차장을 자세히 보면 계단으로 이어진 입구를 찾을 수 있다. ‘건물의 지하에 위치하는데 이런 볕이 들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서점의 작은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볕과 조성된 중정은 판타지적인 공간을 연상시킨다. 마치 비밀의 화원에 들어온 듯 하다. 그야말로 이름 값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화에서 어쩌다 만나 산책하듯 독서할 수 있는 곳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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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산책>은 서점과 카페가 결합된 공간이다. 정면으로 들어오면 카페가 있고, 왼 편에 분리되어 있는 서점이 있다. 이곳은 ‘무용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는 공간 철학을 갖고 있다. 그 철학대로 동선이 잘 설계된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진한 우드톤의 실내와 널찍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숲 속에 있는 도서관처럼 느껴진다. 하이라이트 조명은 강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서점의 손님들은 작게 들려오는 클래식을 배경으로 책장을 둘러본다. 벽면의 책장과 중앙 책장의 거리가 넓기 때문에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음악과 조명, 인테리어의 3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공간에 감탄하며 공간을 좀 더 탐색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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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는 즐거움, 큐레이션 서가


 

이곳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계절마다 하나의 주제를 기준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책을 추천한다는 점이다. 서점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넓은 중앙 책장에서는 봄이라는 시의성을 담아낸 책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의 큐레이션은 맥락을 파악하기가 좋아서 고르기가 쉽다. 정해진 책만 올려져 있어 추천도서에 집중할 수 있고, 책들 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면서 훑어보는 재미도 있다. 평상처럼  넓은 의자도 있지만, 그곳에 앉아서 책을 읽기 보다는 서서 읽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중앙에 놓인 높은 책장이 책상 역할을 대신하는 듯 했다. 주로 손님들은 추천도서를 보는 김에 그곳에 책을 얹어두고 기대어 읽었다.

 

선택지가 많을 때보다 한정되어 있을 때 고르기가 쉬운 것처럼 자신만의 취향과 선호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면 큐레이션 서점이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내 성향과 맞는 서점을 찾으면, 얼마든지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다 산책은 문학, 예술, 산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취향을 저격할 만한 도서를 권할 가능성이 많아보였다. 이곳에 들른다면 한 편에 마련되어 있는 큐레이션 서가와 서점 직원들의 필담 노트를 살펴보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한 권 한 권 이유있는 추천을 하고, 큐레이션 도서간의 관계를 살피는 재미도 있다. 직원들의 필담 노트는 누군가의 진솔한 대화를 엿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으면서도 각자의 이야기와 추천 이유를 볼 수 있어 좋다. <어쩌다 산책>의 이런 흔적을 찾아가다보면 고요한 서점과 상호 작용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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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안에서는 책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지만 카페로 가지고 나갈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음료도 서점으로 반입할 수 없다. 나는 음료를 시켜놓고 서점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구경을 하다 큐레이션 서가에 있던 시집을 구매해서 나왔다. 안 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개별 테이블 좌석에 앉아 골라온 책을 펼쳤다. 서점과 카페는 공간의 성격도 다르고, 분리되어 있지만 동일한 분위기를 유지시켜주는 가장 큰 요소가 있었다. 우드톤의 인터리어, 군더더기 없이 비워낸 공간 위로 떨어지는 조명이었다. 이곳의 전체적인 밝기는 간접 등이 은은하게 밝혀주고, 강조할 부분은 하이라이트가 있는 식이다. 카페 공간만 보더라도 길쭉한 간접등 한 개, 둥근 조명등이 4개, 전시장에서 쓰이는 하이라이트 조명이 8개의 테이블마다 하나씩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책을 폈을 때 서점의 책장에서 읽던 그 분위기와 유사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작은 광원은 진하고 선명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수직이 아닌 사선 방향에서 쏘는 조명은 길쭉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자리에 앉으면 무대 위에 혼자 서게 된 배우처럼 나만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조명은 이곳의 분위기를 강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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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곳은 탐색하는 시간과 그런 시간을 갖는 독자들을 존중하는 무드로 가득했다. 여유롭게 취향에 맞는 책을 찾고 싶어지는 날이면, 이곳의 산책길을 또 걸으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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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 중요해지고 존중받는 사회가 될 수록 앞으로 서점의 책 큐레이션 서비스는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개인화된 취향과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선호의 욕구가 세분화 될 수록 기존의 방식으로만 책을 분류한 서점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오프라인 서점의 위기가 오기도 했으나 독립서점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미 서울의 많은 서점에서는 큐레이션은 물론이고 다양한 문화 활동들을 독자중심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동네의 서점이 문화활동 플랫폼으로, 커뮤니티 공간으로 역할하면서 로컬인들의 인문학 살롱이 되어가는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토론의 장이 많이 퍼져서 사람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콘텐츠를 나눌 수 있게된다면 좋겠다. 같은 내용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계속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동기가 된다. 그야말로 선순환이다.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에 익숙하고 편한 세상이지만, 결국 책이란 읽어보지 않고 사기 어려운 것이다. 아직 나만의 서점이 없다면 이번 기회에 한 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주변의 동네 서점들을 먼저 둘러보는 것도 좋다. 직접 책 표지를 만져가며, 한 장이라도 들춰가며 책을 고르는 재미는 구매 후 돌아와서도 이어지기 쉽다. 그러다 우연히 취향에 맞는 책을 발견하면 독서가 더 즐거워지고, 쉬는 날 동네 서점에 들르는게 일상의 기쁨이 될 지도 모른다.

 

 

[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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