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흐의 사랑에 지독히도 잠식되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22.06.20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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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당신에게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는가?

 

정신병을 앓다가 죽은 비운의 천재 화가? 절친과 불화로 인해 자신의 귀를 잘라낸 미치광이 화가? 혹은 그저 노란색을 좋아하던 화가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일부일 뿐이다. 사랑이 가득했던 그의 생애, 고흐의 사랑에 한번 잠식되어 보는것은 어떠한가?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하다


 

교환학생 신분으로 유럽에 있을 때, 나의 첫 여행지가 되었던 곳은 바로 암스테르담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고흐는 왜인지 나에게 불운한 천재 화가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의 생애 중 자극적인 일면만이 나에게 각인되어 있었고, 그의 작품보다도 그러한 자극적인 일화를 소비하는 것같아 내심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이런 생각이 해소되길 바랬던가? 그래서 더더욱 궁금했다. 그는 왜 천재 화가로 불리우는가?


벌써 반 고흐 미술관을 다녀온지 2년이 훌쩍 넘었다. 모든 것들이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고흐가 내게 있어서 최고의 예술가인걸 보면 그 때의 감상들은 소중히 살아 있는 것 같다. 첫날 반 고흐 미술관에서 6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또 방문해서 하루를 보냈다. 바로 이북(e-book)으로 그의 편지들을 묶은 책을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날이 고흐의 세계에 잠긴 상태로 지냈다.


반 고흐 미술관의 규모는 엄청나다. 그 큰 건물의 대부분이 그의 생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그가 교류했던 친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고, 그가 사랑했던 주제들과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다. 동생 테오와 주고 받았던 편지들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공간의 일부는 기획 전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고흐의 작품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초상화’를 주제로 한 기획 전시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 미술관을 방문하게 된다면, 꼭 음성 해설을 듣길 바란다. 한국어를 지원하고 있고, 듣기에 굉장히 편한 말투와 목소리이다. AI의 목소리가 아니라, 성우의 목소리였다. 그 때문인지, 오디오 해설의 이야기 구성이 더 효과적으로 들어온다. 단순히 작품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그의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미적 관점으로 분석한 내용도 제공하여서, 전시와의 궁합이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반 고흐 미술관 관람의 완성은 음성 해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흐, 사랑을 말하다


 

본격적으로 사랑이 가득한 그의 예술 세계를 소개해보겠다. 본 글은 고흐 작품의 미술사적 지위 서술에 목적을 두지 않고, 개인적인 감상을 기반으로 그의 사랑이 가득한 그림 세 점을 소개한다. 이 글을 통해 고흐의 생애가 단지 자극적인 사건들로만 소비되는 시선들이 조금은 해소되길 소망한다.

 

 

1. 가족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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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Almond Blossom], February 1890-1890, Amsterdam, Van Gogh Museum

 

 

고흐는 테오 부부의 아들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려내었다.


“어머니께서도 요즘 저처럼 테오와 제수씨 생각을 많이 하실 거라 생각해요. 무사히 분만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쁘던지요. … 그 애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입니다.” -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2019), 신성림, 위즈덤하우스, 317쪽


고흐에게 조카의 탄생은 너무나도 기쁜 일이었다. 그의 사랑과 축복, 기쁨을 가득 담아 선물한 그림이다. 고흐의 인생에서 테오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었다. 고흐의 예술적 영혼을 보듬고 지지해주었을뿐만 아니라, 물질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던 테오. 어쩌면 그의 예술적 영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테오가 아닐까 싶다. 이토록 고마운 사람의 아들이 탄생했다는 건 고흐에게 엄청난 경사가 아니었을리 없다. 오로지 ‘그 애’, 즉 조카만을 위해 그린 그림을 바라보다 보면, 그의 넘치는 사랑이 흘러나오기까지 하는 것 같다.


아몬드 나무는 추운 2월에 꽃을 틔운다. 봄이 오는 걸 알리는 아몬드 나무는 생명이 움트는 것을 가장 먼저, 생생히 보여준다. 조금은 차갑게 느겨지는 푸른색 하늘에, 아몬드 나무의 꽃 주변으로 따스한 노란빛이 감돈다. 그리고 그것이 어우러져 초록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고흐는 차가운 색을 따뜻하게 보이도록 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묘한 색깔의 배합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사랑과 벅참은 여전히 우리 앞에 꿈틀거리는 듯 하다.

 

 

2. 자연, 그리고 농부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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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The potato eaters], April 1885 - May 1885, oil on canvas, 82 x 114 (cm), Amsterdam, Van Gogh Museum

 

 

이 그림은 우리에게 <감자 먹는 사람들>로 잘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고흐의 다른 작품들과 대조적인 색감이다. 그러나 이 그림 역시, 고흐의 열정적인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고흐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가장 가까운 농부를 사랑했다. 그는 당시의 주류였던 도시의 사람들이 아닌 농촌의 사람들을 그리겠다고 결심하였다. 밀레처럼 ‘농부 화가’가 되고자 한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 가장 소외되고 밀려나는 사람들, 그러나 전통을 갖고 꾸준히 일하는 사람들인 농부를 그리겠다는 그의 믿음과 열정은 눈여겨 볼 만하다. 농부의 삶은 자연과 가깝고, 삶과 죽음은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것과 닮았다. 농부는 소외되었으나, 가장 기본적이고 없어선 안되는 사람들이다.


농부들의 손을 자세히 살펴보자. 고흐는 그들의 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땅을 일구고 흙을 자주 만지는 그들의 손은 도시의 문명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기에 자연과 가장 많이 닮은 부분 중 하나이다. 고흐는 이를 두고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a way of life completely different from ours, from that of civilized people)”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고흐는 깊고 어두운 색을 사용해 농부의 손을 표현했다. 땅과 닮은 색을 사용한 것이다.


이 그림 외에도 그가 농민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들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으로 많은 그림을 그려내었다는 사실은, 그림을 지켜보는 이 마저도 엄숙하게 한다.

 

 

3. 예술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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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Garden with Courting Couples: Square Saint-Pierre], May 1887, oil on canvas, 75.0 x 113.0 (cm), Amsterdam, Van Gogh Museum

 

 

고흐는 색깔로 사랑을 표현하려 했고, 그런 표현이 가능한 예술을 사랑했다.


이 그림은 커플들을 그리고 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조화로우면서도 그 안의 커플들은 매우 돋보인다.  두 연인은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관계이다. 색에도 그런 관계가 있다. 바로 보색이다. 그림 속 커플들의 의상을 보면, 보색을 활용한 것이 보인다. 보색이 서로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과 연인 간의 사랑을 빗대어 표현한 고흐는, 가히 천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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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Seascape near Les Saintes-Maries-de-la-Mer], June 1888, oil on canvas, 50.5 x 64.3 (cm), Amsterdam, Van Gogh Museum

 

 

보색 활용의 대가라고 불리워도 마땅한 고흐의 역작은 바로 이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의 보색이 어디에서 활용되었는지 보이는가? 바로 그의 붉은색 서명과 배경의 초록-파랑 빛깔을 띄는 파도이다. 그의 서명은 파도를 더 돋보이게 만들면서, 동시의 파도는 그의 서명을 두드러지게 보인다. 서명이 비로소 이 그림의 완성을 맺은 것이다.


보색을 사랑의 관계에 빗대고, 그렇게 세상을 묘사할 수 있는 통로로서의 예술을 사랑했던 고흐. 그는 실제 사물이 주는 제약에서 벗어나,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했다. 그 연구와 고민에 담긴 그의 가득한 사랑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한껏 느끼길 바란다. 고흐는 자신만을 위한 작품활동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 곳곳에서 자연, 가족, 친구,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다양하게 녹아 들어간 사랑의 온도, 여러분도 함께 잠식되어보길.

 

 

[참고문헌]

반 고흐 뮤지엄, "The Potato Eaters"

 

 

[장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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