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블랙스완'에서 나타난 욕망의 미학 [영화]

라캉의 욕망이론을 중심으로
글 입력 2022.06.2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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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블랙스완(2010)에서는 주인공 니나(나탈리 포트만)를 중심으로 한 타자의 욕망이 어떻게 그녀에게 투영되는지를 보여주면서 욕망의 초월과 파멸을 동시에 나타낸다. 니나-에리카(엄마), 니나-토마스(감독), 니나-릴리(경쟁자)로 대표되는 극중 관계들은 니나의 욕망을 증폭시키는 트리거다. 니나의 욕망이 커져감에 따라 환각, 환청 등의 정신분열증세가 점증하며 수많은 거울 속에서도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프로이트, 라캉 등의 정신분석학자의 이론을 통한 분석해볼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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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캉의 욕망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 자크 라캉은 “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고 말하며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라는 명제를 비판했다. 라캉에게 인간다움이란 사유보단 무의식과 욕망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타자에게 보여지고 싶은 욕망, 즉 타자의 욕망이다. 그리고 욕망은 대게 에로스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프로이트와 다르게 라캉의 욕망은 욕구, 요구와 엄격히 구별된다. 욕구(need)는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본능, 식욕이나 성욕 같은 형상이며 요구(demand)는 언어적 표현이나 추상적 개념으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욕망(desire)은 요구에서 욕구가 제외된 결과로 이 둘의 빈틈에서 생겨난 무의식의 공간이다. 욕망은 요구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요구 너머에 있으며 안쪽에 있기도 하다. 예로 극중 에리카는 니나에게 종속과 복종을 강요한다. 그녀는 니나를 “Pretty girl”이라 칭하며 자신의 요구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렇듯 욕망은 언어적 표상체계를 통해 파악될 수 있다. 라깡의 욕망은 역설적이고 일탈적이며 불안정하고 괴상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 소망은 완전하게 충족될 수 없다.

 

 

▲ 니나의 타자화된 욕망

 

영화의 서사는 주동인물인 니나의 프리마돈나를 향한 욕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니나는 유명 발레 공연인 <백조의 호수> 주연 배역을 따낸다. 기존 공연과 달리 영화에서는 백조가 흑조의 연기 또한 해내야 한다. 니나는 백조 연기를 완벽하게 해내지만 흑조 역할에서는 늘 감독 토마스의 눈에 차지 않는다. 이는 홀로 가정을 책임지는 에리카가 니나에게 부여한 집착과 강박적 도덕관념이 원인으로써 작용한다.

 

에리카는 니나를 하나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니나의 욕망은 감독과 릴리를 통해 점증되어 흑조 역할까지 완벽하게 수행해내어 프리마돈나가 되고자 하는 흑조적 욕망으로 이어진다. 극중 니나의 욕망은 그녀의 것처럼 보이지만 라캉이 말하듯 타자의 욕망이다. 이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니나-에리카, 니나-토마스 간의 관계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① 니나 – 에리카(엄마)

영화 초반 에리카와 니나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니나가 주연을 따내자 가장 먼저 연락한 것도 에리카다. 하지만 그녀는 니나를 “Sweet girl”이라 부르며 유년기의 거울단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도록 억압하고 종속시킨다. 주연을 따낸 딸을 축하하기 위해 환하게 웃으며 케이크를 크게 자르던 에리카가 “너무 많다”, “아직 속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니나의 말을 듣자 이내 표정이 섬뜩하게 바뀌며 케이크를 “쓰레기”라며 쓰레기통에 버리고자 한다. 이에 니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사과를 하며 억지로 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보인다. 니나의 클로즈업된 얼굴은 일그러진 웃음이지만 에리카는 기뻐한다. 에리카의 자녀를 향한 마음이 애정이 아닌 히스테리로 보이는 신이다. 니나를 향한 에리카의 강박과 집착은 대사뿐만 아니라 집안의 공간들에서도 나타난다.

 

니나의 방은 이불, 벽지, 인형 등이 모두 핑크색이다. 마치 유년기의 여아가 동화 속 공주의 방을 따라 꾸미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니나는 에리카에 의해 “예쁜 소녀”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갖고 살아간다. 에리카의 방에 있는 니나의 초상화들은 모두 에리카가 그린 것들이다. 니나에 대한 에리카의 광기어린 집착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림들은 니나에게 환시와 환청을 불러일으키며 에리카와의 갈등이 깊어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니나는 에리카가 사육하는 동물에 불과하다. 자신의 말을 잘 들을 때에는 기뻐하며 사랑을 주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무서울 정도의 태도를 보인다. 니나는 에리카가 임신을 하며 포기했던 발레리나의 꿈이 전이된 욕망의 결과물이다. 니나의 욕망은 엄마의 욕망으로서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었다는 점에서 소외된 욕망인 것이다. 그렇기에 니나의 육체는 성인이지만 어머니의 집착과 과잉보호 속에서 실제로는 거울단계에 머물러 있는 아이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니나는 에리카의 욕망을 잘 따르는 ‘착한 아이’다. 

 

에리카에게 니나는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줄 ‘예쁜 아이’ 백조로 남아있어야만 하는 존재다. 하지만 니나의 욕망은 에리카의 그것을 넘어섰으며 프리마돈나가 되기 위해 흑조까지 완벽히 수행해내고자 한다. 엄마의 집착과 강박적 도덕관념에서 벗어나 흑조가 되고자 했던 니나와 에리카 사이의 욕망의 간극이 그들의 갈등을 심화시킨 원인이다.

 

② 니나 – 토마스(감독)

니나는 <백조의 호수>에서 주연을 맡고자 욕망하고 토마스는 해당 공연을 완벽하게 수행해내고자 욕망한다. 그리고 토마스 또한 릴리처럼 니나에게 내재된 흑조적 본능과 충동을 해방시키고자 한다. 말이 좋아 해방이지 흑조를 깨우려한다는 명목 하에 하는 토마스의 행동은 실로 성추행·성희롱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니나는 정신적으로 파괴적인 고통을 받는다. 에리카와 토마스는 니나의 정신을 파괴하는 반동인물이지만 에리카는 니나를 억압하고 토마스는 초월시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욕망은 충돌된다. 그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니나는 주체성과 욕망이 상실된 것으로 보여진다.

 

발레단의 감독 토마스는 극 중 절대적 권위와 능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지만 그의 근원적 욕망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표면적으로는 공연과 발레단을 성공시키려는 욕망을 보인다. 성공을 위한 토마스의 욕망은 니나에게 투사되어 그녀를 더욱 가혹하게 압박한다. 니나의 자리가 릴리 등의 무용수로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을 거라는 압박, 내재된 흑조를 일깨우기 위한 토마스의 행동들은 다분히 가학적이며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죄송합니다”라는 니나의 말에 “그 말 좀 그만해! 그만 좀 약하게 굴라”며 다그치는 장면은 약한 모습을 버리고 그녀 속에 내재되어 있는 강인하면서도 악한 흑조의 모습을 이끌어내기 위한 토마스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토마스의 행동은 니나의 정신병 증상을 심화시킨다. 그의 방식은 파괴적이고 고통스럽지만 니나가 흑조 연기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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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나와 흑조

 

니나는 백조 연기를 완벽히 수행해내지만 흑조 연기에선 늘 부족함이 보인다. 이는 언급했듯 엄마의 강박적 도덕관념과 집착 탓에 흑조적 욕망, 즉 일탈적이며 에로스적인 욕망을 억압해왔기 때문이다. 니나에게 내재되어 있는 흑조적 욕망은 토마스와 릴리에 의해 발현된다. 특히 릴리는 니나가 에리카와의 종속관계를 깨고 일탈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 니나는 흡연을 시작으로 술과 마약을 하기에 이른다. 클럽에서 춤을 추고 이성과 유흥을 즐기며 일회성 섹스를 한다. 일탈적이며 에로스적인 니나의 흑조적 욕망이 폭발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니나는 에리카에게 자신의 일탈 사실을 말하며 억압하던 주체와 직접적으로 맞선다. 클럽에서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면 니나의 얼굴이 흑조로 변하는 모습이 두 프레임 정도로 짧게 등장한다. 이는 니나에게 내재되어있던 흑조의 욕망이 깨어나 이미지로서 표현된 모습이다. 니나는 자신과는 상반되는 삶을 살아가는 릴리를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주연 배역이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열등감에 그녀를 거부한다.

 

영화 초반, 터널을 걸어가는 니나가 그녀에게 내재되어 있는 흑조적 욕망을 도플갱어라는 이미지를 통해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자신에게 억압되어 있는 낯설면서도 확연한 흑조의 욕망을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토마스와 릴리에 의해 흑조의 욕망이 발현되기 이전에도 그녀는 그것을 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니나의 불안과 욕망이 커져갈수록 정신분열증은 더욱 심해져만 간다. 피가 나도록 손의 살갗을 뜯거나 날개뼈를 긁는 등의 자학적이고 히스테리적인 행동 또한 강화된다. 마침내 니나는 릴리로 투사되었던 자기 자신을 찌른 뒤 완벽한 흑조로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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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로서의 니나

 

거울의 파편으로 자신을 찌름으로써 완벽한 흑조가 된 니나는 “나는 완벽했어(I was perfect)”라고 말하며 무대 뒤로 떨어진다. 엄마의 욕망을 따라 발레리나의 삶을 살던 니나가 에리카로부터 ‘분리’하며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영화 속에서 거울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소재다. 주인공 니나가 발레리나이기에 거울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거울의 특성, 즉 ‘비침’이 반복된다는 점을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극중 거울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기도 하지만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기도 한다. 혹은 환각으로 나타나기도, 파편화되어 인물들을 왜곡되게 비추기도 하는 소재다. 거울은 물체를 비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영화에서 은유적인 소재로 흔히 사용된다. 극중에서도 거울은 니나가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도구다. 

 

하지만 그녀는 집, 지하철, 화장실 등 수많은 공간에서 거울을 마주하면서도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릴리로 착각한 니나 자신과 싸우며 거울을 깨뜨릴 때에야 그녀는 비로소 자신에게 내재되어있던 흑조적 욕망과 주체성을 확립한다. 깨진 거울의 반영은 본질을 흐리고 거울을 바라보는 주체가 자신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극중 니나는 멀쩡한 거울에서는 자신을 주체로서 인식하지 못하다가 거울을 깨뜨린 후에야 진정한 주체로서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니나는 타자의 욕망을 반영하기만 했던 깨진 거울을 몸속에서 꺼낸 뒤 프리마돈나로서 ‘완벽’해 질 수 있게 된다.

 

니나는 주변 인물들의 욕망이 투사된 집약체다. 니나의 타자화된 욕망은 죽음으로써 ‘완벽’해질 수 있었다. 영화 <블랙스완(2010)>은 극한으로 치닫은 욕망의 투사가 한 개인을 어떻게 파멸에 이르게 하는지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억압된 에로스적 욕망은 니나가 그러했던 것처럼 왜곡되어 표출될 수 있으며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상실하게 만든다. 라캉이 말했듯 욕망이란 원초적으로 충족될 수 없으며 일탈적이고 불안정한 것이다. 다만 무조건적인 억압은 니나와 같은 파멸의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때문에 욕망 또한 욕구와 같이 어느 정도의 충족은 필수적이라는 고찰을 해볼 수 있다.

 

 

<참고문헌>

류범열, 양세혁, 2021, 내사된 욕망을 반영하는 깨진 거울의 공간

구자룡, 2011, 영화<블랙스완>에 나타난 대타자의 파괴적 욕망

임찬, 김형기, 2012, 블랙스완의 상상, 상징, 실재 이미지

김현주, 2017, 라깡의 주체 담론 : 인간의 욕망구조의 서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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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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