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별이 진다네 _ 우리는 별을 잘 보내는 이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6.1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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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MC 송해 선생님을 보내며


대한민국의 큰 별이 졌다. 상투적이지만, 이 외에는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기꺼이 써야만 하는 문장이다. 방송인 송해 선생님이 타계했다. 2022년 6월 8일의 일이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중

 

 

송해. 그 이름만큼이나 푸르게 살다 떠난 사람. 세대 간 갈등은 깊어지고 이해는 어려워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90년대 생 청년들에게도 익숙한 20년대 생 노인의 이름이다. 성악을 전공한 코미디언이자 매주 일요일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TV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MC였다. 34년간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며 무대에 올랐고, 그 무대를 꿈꾸는 시민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줬다. 무대에 오른 출연자들이 맨손으로 집어 건네는 떡이며 간식을 스스럼없이 받아먹었고, 모든 출연자와 눈을 맞춰 대화를 했고, 어떤 때는 그들에게 무릎을 꿇거나 넙죽 절을 했다. 그는 무대에 오른 시민에게 마이크와 함께 존경을 건넬 줄 아는 어른이었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해 대중과 어울린 국민 놀이꾼. 놀이가 깊어지면 예술이 된다. 그렇다면 송해 선생님을 노래와 춤, 국민의 놀이 문화를 예술의 경지로 올린 대중예술가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스타’의 역할론

 

별은 아름답다. 광활한 우주를 빛의 속도로 아주 오랜 시간 달려서 겨우 당신의 눈에 안착한 그 반짝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에게 별이란 과학 이전 인류의 역사가 그 반짝임에 기댔을 만큼 밀접한 존재이자, 과학 이후의 인류에게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았을 만큼 먼 존재이다. 깊은 감상에 젖거나 간절한 소원을 비는, 혹은 기상을 예측하거나 동서남북 방향을 점지하는 대상. 우리에게 별의 의미는 광막한 우주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란 과학적 뜻을 훌쩍 넘어선다.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문화예술인을 ‘스타’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가깝고도 먼 그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대하여 대중이 바치는 찬사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저 깊고 먼 곳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별들이 탄생하거나 소멸하고 있을 테다. 동시에 우리의 눈앞에는 날마다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고, 또 조용히 스러져간다. 우리는 그들의 생성과 소멸에 열광하고 안타까워한다. 대중의 열정과 슬픔을 투영하는 존재.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별의 역할은 그런 것이다. 대중문화에서 스타는 대중의 감정을 대변하는 필수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스타의 존재는 거대하다. 오늘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에서 대중이 없다면 스타가 반짝일 수 없고, 스타가 없다면 대중이 울고 웃을 창구가 사라진다.

 

 

별의 태도, 별을 마주하는 태도

 

송해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선생님에 대해 안다. 대중문화를 이끌었던 한 시대의 상징인 그의 죽음 앞에 많은 이가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대체로 깊은 슬픔이 아닌 아름다운 작별의 인사였다. 항상 촬영 지역의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며 시민들과 소통했다거나, 무대 앞좌석을 차지하려는 고위공직자 의전에 대해 호통을 치기도 했다는 그의 일화가 죽음 후에 새삼 반짝인다. 빛나는 자리에서 올라서도 건실함을 잃지 않았던 사람. 스스로 딴따라임을 자랑스러워했지만 흥에 취해 선을 넘지 않았던 사람.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쏟아진 애도는 그가 살아온 인생과 대중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우리의 평가이자 결론이었다. ‘스타’ 송해 선생님의 삶은 사후에 다시 한 차례 빛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몇 번의 죽음을 기억한다. 찬란하게 반짝이다 훌쩍 떠나버린 몇 개의 별들을. 거대한 애정만큼 과한 비난이 만들어낸, 조금 더 어둡고 슬픈, 어쩌면 너무 이른 소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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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 아름답게 졌고, 우리는 이제 별들을 아름답게 마주하고 보내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스타라는 이름 아래 과도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에 대해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릴 정도로 신랄한 비난을 허용하는 사회. 그런 문화가 오랜 문제로 고착된 현실에서 우리는 대중과 스타 사이 균형을 맞추려 노력해야 한다. 창작과 비평의 건전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스타는 대중과 눈을 맞추며 빛나고, 대중은 스타의 재능을 충분히 누리며, 또 그들의 아름다운 소멸을 끝까지 지켜보며 슬퍼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도록.

 

‘초신성’이라는 천문학 용어가 있다. 수명이 다한 별이 소멸되기 전 마지막으로 내뿜는 강렬한 반짝임이다. 문화에도 수명이 있다. 때문에 문화 발전의 과제란, 감히 규정해본다면, 찬란한 소멸의 장면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가지는 태도의 문제다. 스타의 재능은 소비재이지만, 스타의 인격은 가치재이다. 문화예술계의 각종 소음과 안타까운 죽음이 없도록 별의 태도와 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모두가 중요한 이유다. 스타가 대중의 사랑에 기대는 것처럼 대중도 이미 스타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지만, 그런 “별이 지면 하늘도 슬”프다.

 

故송해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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