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함께 읽으‘시’죠] 5편 –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6.1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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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어떤 저녁은 투명했다.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불꽃 속에 

둥근 적막이 있었다. 


2013년 11월 

한 강

 


< 채식주의자 >, < 소년이 온다 > 등 다양한 작품으로 유명한 한 강 작가이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도 재학 중인 한 강은 멘부커 국제상을 수상했던 < 채식주의자 > 덕분인지 소설로 대중들에게 더 많이 인식되어 있지만, 실은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소설가로써의 한 강의 작품만큼이나 시집에도 매력있는 작품들이 많다.


이 시집은 어느 날 도서관에서 처음 발견했다. 나 역시 처음엔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고, 앞뒤로 책을 살피고 몇 장을 읽고 나서야 이 분이 그 분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첫 장에 적힌 이 시를 읽고 나서는 아무렴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아졌다. 뒤에 함께 소개할 ‘해부극장’ 이라는 시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를 고르라면 이 두 편은 언제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제목: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한 강의 작품에는 특유의 다크함이 있는데 그 어두움이 깊이가 아득한 심해처럼 느껴진다. 소설에서도 시에서도 그렇다. 어떤 작품에서 혹은 어떤 순간에서는 그 때문에 깜짝 놀라거나 뒷걸음치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 깊이를 통해 발견되는 것들이 우리 삶을 뒤흔들만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맨부커 상을 받았다는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던 < 채식주의자 >가, 수업에서 선정되어 분석을 해야했던 < 소년이 온다 >가, 한 강의 신작이라는 말에 무작정 구매했던 < 흰 >이, 그리고 오늘의 이 시집 <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의 어떤 작품들이 여전히 나를 뒷걸음치게 한다. 앞으로 각각의 작품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고, 더불어 여러분에게도 직접 읽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나도 요즘 내가 어떤 시기들을 지나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가능성으로만 열려있던 순간을 지나 또 하나의 선택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을 맞이한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미 결과가 정해진 일도 있는 듯하다. 어쩌면 한 해가 지나면 한 살의 나이를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시기를 통과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언제나 그렇다. 그럴 때 위로가 되는 것은 이 시의 뒷부분이다.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담담하고 고요하게 서술된 일상적인 보통의 행동이 위로가 된다. 오늘 나도 그래야지. 밥을 먹어야지. 일상의 순간들을 계속 이어가야지. 나는 오늘도 저녁을 먹을 것이다.



제목: 해부극장


한 해골이 

비스듬히 비석에 기대어 서서 

비석 위에 놓인 다른 해골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섬세한 

잔뼈들로 이루어진 손 

그토록 조심스럽게 

가지런히 펼쳐진 손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이 

안구가 뚤린 텅 빈 두 눈을 들여다본다


(우린 마주 볼 눈이 없는걸.)

(괜찮아. 이렇게 좀 더 있자.)

 


뼈밖에 남지 않은 해골 한 쪽이 다른 쪽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눈이 없으면서도)서로 눈을 맞추는 상상을 하면 위로가 된다. 몇 년 전 내가 아주 고생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할 때 이 시를 속으로 자꾸만 외우곤 했다.


서로를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누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마주 볼 눈이 없으면서도 서로를 들여다보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왠지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주보려해도 해골에게는 마주 볼 눈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에 실패할 거다. 나도 나를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누군가가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를 바라고, 나 하나만으로 버거운데 어떻게 다른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린 마주 볼 눈이 없”다, 그렇지만 괜찮다. 텅 빈 눈으로라도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들여다보려 하고 있으니까. 온기 하나 전해지지 못할지라도 너에게 손을 얹고 있으니까. 우리 "이대로 좀 더 있자"


김초엽 작가의 < 방금 떠나온 세계 >라는 소설집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문장이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이 소설에 서술된 모든 문장들은 결국 마지막 한 페이지를 향해 달려오는 거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나중을 위해  (내가 충분한 분량을 통해 설명할 수 있거나 여러분이 직접 작품을 만날 다음 기회를 위해) 장 전체를 옮기지는 않겠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기나긴 시도를 통해 뼈져리게 느끼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껴안는 순간의 감동은 문학이 주는 선물이다. 이 시에서의 해골들 역시 그렇다.


한 편만 더 살펴보자.

 


제목: 회복기의 노래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이제 살아가는 일이 무엇일까’를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은 얼굴에 내리는 햇빛이다. 꼭 그런 순간에 햇빛같은 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찾아온다.


여기서의 햇빛을 희망이라든지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라든지 그런 것으로 읽고싶지는 않다. 그냥 햇빛은 햇빛일 뿐이다. 그러나 그 당연함이, 그 일상적인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새삼스러운 위로가 된다. 우리에게도 햇빛이 지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대단할 것 하나 없이 지나쳐온 것들이 삶의 공백을 메우곤 한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은유로써가 아니라 말 그대로 햇빛 한 자락이 다시 살아볼 용기를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감고 햇빛을 가만히 맞는 일 밖에는 달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빛이 지나가면 다시 또 하루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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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을 고르고 보니 모두 비슷한 느낌이다. 이런 작품이 요즘의 나에게 필요했나보다. 시집에는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주제들이 많은데 넓고 깊이 있게 소개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시를 읽으니 참 좋다. 시에 대해 잘 모르고, 대단한 해석을 내놓을 식견은 없으면서도 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 혼란한 마음에 자꾸 되뇌일 문장과 단어가 있어 즐겁다. 그리고 그 감상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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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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