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스물일곱, 늙는 기분 - 서른다섯, 늙는 기분 [도서]

글 입력 2022.06.1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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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본 드라마 몇 개가 떠오른다. 그다지 나이들어보이지도, 뚱뚱하지도 않던 서른살 김삼순은 가족들에게 노처녀 취급을 받았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어느 드라마의 서른 한살 주인공은 결혼 적령기를 놓쳤다며 골드미스라고 불렸다. 굳이 어릴 때가 아니어도 드라마나 영화에는 노처녀가 항상 존재했다. 감초로, 혹은 골치거리로.

 

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서른살 즈음에는 응당 가정을 꾸려야 하는구나.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20대 후반에, 아무리 늦어도 삼순이보다 빨리 결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재수를 하고, 재학 중 1년 휴학을 한 나는 졸업을 앞두고 남들보다 2년 뒤쳐졌다는 생각에 조급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들 때마다 대략적인 계산을 했다. 스물 여섯에 졸업하고, 정말 빨리 취업을 해서 스물 여섯이나 일곱에 돈을 벌기 시작한다면 나는 언제 결혼할 수 있을까? 물론 너무 결혼하고 싶어서 시작한 생각은 아니었다. 사회통념적인 인생의 로드맵이 비교 대상이었을 뿐이다.


스물여섯 일곱에 돈을 벌어서 모으기 시작한다면 서른살까지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결혼하는 데 돈이 무지막지하게 든다던데 반이나 모을 수 있으려나? 아니지, 애초에 결혼을 전제로한 연애를 하고는 있으려나? 집 값이 이렇게나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데 집은 살 수 있을까? 무엇 하나 온점으로 끝나는 것이 없었다. 나는 로드맵 그리기를 멈췄다. 우선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생각하자. 이게 작년서부터 가지고 있는 내 마음가짐이다.

 

나는 올해들어 아주 심란하다. 대학 동기들이 하나둘 결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순수하게 놀랐다. 아니 벌써? 이윽고 무슨 돈으로 결혼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나는 스물 일곱 살이기에 그들은 나와 동갑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아봤자 한두 살 더 많다.


사회가 요구하는 코스 중, 이제야 ‘취업’ 단계를 지난 나로서는 꽤나 당황스럽다. 벌써 ‘결혼’ 단계를 깨야하는 시기인가?


서른다섯 이소호와 스물일곱 김혜정은 다른 세대를 살았다. 하지만 같은 단계를 앞뒀기 때문일까? 그가 겪은 에피소드는 비단 그만 겪은 것이 아니었다. 나도 종종 같은 상황에 처한다.


애기 엄마!

애기 엄마는 몇 동 살어?

애는 집에 두고 맨날 개만 데리고 나와서 앉아 있는 거야?


남자의 모든 말을 들어주세요

너무 잘난 여자 싫어하거든요.

내가 오늘 소호 씨 겪어보니까 몇 년간 연애를 왜 안 했는지 알겠네.

소호 씨, 너무 똑 부러지면 부러져요.

그러니까 적당히 하는 말에 알아도 모르는 척

많이 웃어주고 맞장구쳐주고 그러세요.


책을 읽는 내내 어떤 게 그의 이야기고 어떤 게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인지 구분하기 모호했다. 그간 살아온 환경의 차이가 무색할정도로 비슷한 인생이었기에 저자의 책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또한 결혼이라는 단계는 제쳐두고 커리어 성취를 목표로 달리고 있는 나는 이제는 성취 너머 생존을 고민한다는 그녀의 고백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 개인적 성취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달랐다. 생존을 위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앞으로 적어도 일흔 살 이상까지는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다 돈이 있어야 나도, 건강도 지킨다. 가족도 지키고, 나라도 지키고, 집도 지키고, 다 지킨다. 그러나 시인인 나는 아무리 뼈 빠지게 글을 써도 돈이 없다. 없을 수 밖에... 우리는 직업군에도 없는데. 누군가 작가, 소설가처럼 뒤에 '가'가 붙는 것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인'은 인간 그 자체라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대학 입시가 끝나고 내가 한동안 무기력했던 건 인생의 첫 관문을 이제서야 통과했다는 시원섭섭함 때문이었고, 취업을 하고 마음이 어수선한 건 인생 2막이 이제 막 시작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생존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영원한 목표다. 대학, 취업, 승진, 결혼 등은 생존을 위해 사회가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부가적인 관문일 뿐이다. 인생에 대한 관점이 조금은 넓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 속에서 그녀는 생존을 위한 고민 때문에 우울해하지만, 나는 오히려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단기적으로 달성해야하는 목표는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싫어도 시간은 흐르고, 나는 나이 먹고 있다. 같은 목표를 나보다 빨리 이뤄낸 사람은 지천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다. 그렇다고 좌절할 순 없다. 기간을 넓게 잡는다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각자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무엇이 나를 기쁘게 만들고 슬프게 만드는지 알아가고,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늙었지만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자.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단 하루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 알고 있는 지혜를 얻느라 여태껏 얼마나 노력했는데,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과 커리어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럼 기억을 다 가지고 간다면?”

그때도 이야기했다,

“그때가 딱 내 나이에 맞게 좋은 일이 일어났던 것 같아. 그 이전이었으면 더 지옥이었겠지, 지옥을 더 일찍 겪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라고.


 

서른다섯, 늙는 기분 표1 띠지.jpg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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