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졸업합니다.

안락했던 둥지를 떠나며...
글 입력 2022.06.1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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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모든 대학생들이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즌이 돌아왔다. 아직 학기를 마치지 못한 이들은 시험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고, 이미 학기를 끝내고 이른 종강을 맞이한 이들은 끝남 뒤에 오는 나른한 여유와 휴식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4학년 학생들은 나른한 휴식보단 마지막 방학이 될 이번 여름 방학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바쁘게 준비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글을 쓰는 난 어디에 속해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려 한다”라고.

 

*

 

코스모스 졸업을 하는 대학생들이 많다지만 설마 내가 코스모스 졸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8월, 늦여름이 찾아오면 학교 곳곳엔 코스모스가 한가득 피어나곤 했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등 하교하던 길목에도, 늦은 새벽 과제를 하다 말고 밖으로 나와 아이스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걷던 산책로에도, 발길이 닫는 모든 곳에 피어 있던 꽃들을 보며 그땐 그저 ‘아, 코스모스 피는 계절이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이번 여름에 마주하게 될 코스모스는 조금 달라 보이지 않을까 싶다가도, 꽃이 다 거기서 거기고, 그 꽃이 그 꽃이지, 하고 말아 버린다. 아직 내 깃털은 조금 덜 마른 것 같은데, 아직 내 날갯짓은 하늘을 날기엔 어색하고 미숙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진짜 둥지를 떠나야만 하는 때가 왔다.


긴장과 설렘 사이에서 나는 후회한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이게 정말 떠나기 완벽한 때인가. 지금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나도 되는 것인가. 내가 대답한다. 완벽한 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단 한번 몸을 던져 보라고 한다. 멍청하면 용감하다고, 지금 나는 겁이 없다. 적어도 삭막하게 추운 2월 겨울의 콘크리트보단 8월 여름의 코스모스 꽃 더미 위로 추락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하며 스스로를 달랜다.

 

*

 

연극영화과의 하계 정기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모든 학년이 참여하고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고, 역할을 맡은 여러 배우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자신의 연기를 펼쳤다. 그중 주연 여배우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작년과 재작년, 두 수업을 같이 들었던 연극 영화과 학생이었다. 아는 얼굴이 보이자 맘속에 묘한 기분이 퍼졌다. 연극은 무탈하게 잘 마무리되었고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자 관람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배우들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실상 첫 공연이지라 나를 제외한 다수가 공연에 참가한 이들의 동기 혹은 친구들인 듯했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발걸음만은 서두르며 소극장을 빠져나왔다.

 

누가 쫓아오는 것 마냥 황급히 나온 것이 무색하게 역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다시금 느려졌다. 하늘은 이미 캄캄한 어둠이었다. 건물 외벽 곳곳에 공연 홍보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그곳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같은 4학년, 졸업을 앞둔 그녀에겐 마지막 교내 공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 공연이 누군가에겐 졸업 공연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연기를 선보이는 자리였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공연은 지금껏 봐 왔던 다른 연극들보다 서툴고 어색했다. 배우들의 긴장과 실수가 여실히 드러났고 연극의 몰입도는 다소 떨어졌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난생처음으로 연극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를 채우는 그들의 열정과 땀방울을 느끼며, 그들이 나아갈 미래를 상상했다. 그날, 안티고네가 말했다. ‘자신은 설령 죽음이 다가올지 언정 옳다고 생각한 일을 실천할 거라고.’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안티고네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곧 닥칠 불행한 미래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완벽히 해내가고 있는 듯한 그녀를 응원하는 동시에 부러움이 일었다. 부럽고 또 부끄러웠다.

 

*

 

졸업 패션쇼에 참석했다.

 

동기들이 한 학기 동안 고생하며 만든 작품들이 쇼에 올랐다. 가족, 친구, 교수, 동기들이 모두 모여 그들의 시작을 지켜보았다. 나 역시 그 자리에 함께했다. 쇼가 끝나고 자신의 상체만 한 꽃다발 더미를 든 채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꽃다발을 건넸다. 언젠가 화려한 선물들 사이 보잘것없던 내 선물이 결국 바닥을 나뒹구는 모습을 목격했던 때가 떠올랐다.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능하면 멀리.

 

모두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4년을 마무리하는 동기들을 보며, 과연 살면서 몇 번이나 그런 축하를 받을 기회가 올까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그건 그들이 부럽냐고 물었다. 나는 축하받는 상황이 부럽다기보단 그런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은 그들의 선택이 부러웠다.

 

*

 

방황하던 4년의 시간 동안 결국 달리 어떠한 명쾌한 해답도 찾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일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렸던 지난 시간과 지난 나를 원망한다. 이 길이 내 길인가. 저기 저 길이 내 길인가. 수많은 갈림길 사이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여전히 그럴 예정임을 안다. 그러나 나의 모든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 ‘마이크 니콜스’의 영화 < 졸업 The Graduate >(1967) 속 ‘벤자민’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기에 나의 여정은 불안하고 미숙하다. 그러니 나의 연극을 보는 동안 서툴고 어색하다 하더라도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

 

곧 졸업을 한다. 안락했던 둥지를 이제 그만 떠나보려 한다. 나와 같은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 이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 어느 곳에 있든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당신을 응원한다. 언젠가 멋진 모습을 재회할 날을 기약하며 길었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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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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