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이 시국 교환학생 일기 9

글 입력 2022.06.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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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 동안은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모든 강의의 성적이 떴고 4개 중 3개를 패스했다. 그중 2개는 정말 간당간당하게 패스를 받았지만 어쨌든 패스는 패스니까. 걱정했던 강의는 패스를 받았고 이건 패스 받겠지 했던 강의에서 패스를 받지 못했다.

 

이전에도 말했듯, 유럽 학교는 재시험을 통해 패스를 받을 기회를 준다. 재시험은 교수의 재량으로 방법이 다 다른데, 내가 듣는 강의의 교수님은 오피스에 직접 방문 혹은 영상통화를 통해 시험과 그동안의 프로젝트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성적이 뜬 날에 이미 마드리드 여행을 하고 있어 영상통화를 택했다. 서로 시간을 조율해 맞춘 시간이 이도 저도 애매한 3시 반이어서 여행 중간에 다시 숙소에 들어갔다. 내가 언제 스페인 교수랑 영어로 영상통화를 또 해볼까. 20분간의 영상통화를 통해 결정된 나의 재시험 방법은 커뮤니케이션의 최근 동향에 대한 주제로 3000자 에세이를 써서 이번 달 30일까지 제출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대충대충 한 내 잘못이 크지만 눈앞이 캄캄했다. 다시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곳으로 돌아가 플랫에 있는 짐을 다 한국으로 택배를 보내고 귀국하기 전까지 유럽을 돌면서 여행을 다닐 예정이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언제 자료를 찾고 에세이를 써야 할지 막막하다.

 

종강 후 바로 떠난 여행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원래는 같은 한국 교환학생 두 명과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나는 톨레도를 가고 싶어서 마드리드를 가려고 했고, 그 둘은 발렌시아를 간다길래 각자 두 도시를 갔다가 남부에서 만나 남부를 돌고 포르투갈로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오래 있고 싶은 도시가 달라 결국 마지막 3일 동안 포르토에서만 함께 다니다가 같이 돌아가게 됐다.

 

처음에는 남부에서 만날 거라 생각해 정말 종강 이틀 후 바로 아침 9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하고 숙소까지 다 결제했다. 5시간을 버스로 가니 너무 지쳐 첫날은 그냥 숙소 주변만 돌았고 (그래도 숙소가 중심지인 그란비아에 있어 시내 구경을 한 셈이기는 했다.) 그래서 일정이 계속 뒤로 밀려 마드리드에 온 가장 큰 목적인 톨레도를 가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목적인 소로야 미술관은 다녀와 목적의 반은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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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 같은 비주얼에 살짝 당황스러웠던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내가 마드리드에 있던 날 유독 사람이 많았고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슬로건을 목에 두른 채 잔뜩 흥분해 길거리에서 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수도니까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하지 싶었는데 아무리 수도라고 해도 축구단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많나? 싶어 찾아보니 그날이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있는 날이었다.

 

그냥 챔피언스리그 경기도 아닌 결승이라니. 숙소가 마드리드임을 감안해도 너무 비싸다 싶었는데 앞뒤가 딱딱 들어맞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우연히 왔는데 이런 큰 경기가 있다니. 안 그래도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에 가려고 하긴 했는데 지금이 타이밍이다 싶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부터가 난리였다. 잔뜩 흥분한 팬들이 지하철 안에서 천장을 두들기며 응원가를 불렀다. 처음 보는 사람들일 텐데도 한 사람이 선창하면 거기에 맞춰 따라 응원가를 불렀다. 드디어 베르나베우 역에 도착해서 내리니 길거리에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연기가 나는 폭죽 같은 것과 몸만 한 깃발을 흔들어댔다. 그런 분위기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정말 경기가 시작하면 깔려 죽겠다 싶어 다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숙소에서 씻고 누워서 어떻게 됐나 찾아보니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혼자 여행이라 바 같은 곳에서 함께 즐기지 못한 게 조금 아쉽지만, 내가 이 순간에 마드리드에 있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마드리드에서 3일을 보내고 그라나다를 가는 버스를 탔다. 차에 타자마자 미친 듯이 잠을 자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그라나다는 알람브라 궁전 말고는 볼 게 없다길래 2박만 잡고 하루는 네르하에 가려고 했었다. 그래서 그라나다에 도착한 당일 저녁에 알람브라 궁전을 예약하고 전망대까지 갔다 왔는데, 결국 네르하는 가지 않았다.

 

여행 6일 만에 벌써 지쳐 여유롭게 여행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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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기만 해도 좋았던 스페인 광장.

 

 

그라나다에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세비야로 가기까지의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트램을 눈앞에서 놓쳐 바로 다음 트램을 기다리는데 배차 간격이 길어 예상 도착시간이 버스 출발 2분 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미친 듯이 뛰어 온갖 버스 기사님들에게 세비야로 가냐고 물어보니 다들 옆으로 가보라는 말만 했다.

 

계속 옆으로 가서 세비야행이냐고 물어보니 다들 아니라고만 말했다. 이미 시간은 지났고 버스를 놓친 건가 싶어 거의 울기 직전에 어떤 아저씨가 세비야로 가냐고 물어보시길래 그렇다고 말하니 아직 버스가 안 온 거니 이 줄에 서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버스는 예정 시간보다 15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시외버스임에도 어떨 때는 예정 시간보다 빨리 출발하고 어떨 때는 예정 시간보다 늦게 오니 버스를 타는 날은 항상 불안하다. 빨리 나시를 사러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다행히 다음날부터 바람이 불면 춥다고 느껴질 정도로 날이 풀려 구석구석 걸어 다니면서 구경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알카사르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아 예약도 하지 않았고 세비야 대성당과 대성당 안에서 바로 연결된 탑, 살바도르 성당, 스페인 광장만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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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다리에서 찍은 야경.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서머타임 때문에 밝게 찍혔다.

 

 

세비야 자체도 좋았지만 호스텔에서 만난 프랑스인과의 만남으로 인해 더 세비야가 좋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둘 다 혼자 여행 온 걸 알게 됐고, 야경을 보고 저녁 식사 약속을 잡았다.

 

그라나다에서 일몰 때 전망대에서 본 전경은 혼자 봐서 아쉬웠는데 이사벨 다리의 야경은 함께 봐서 더 좋았다. 체크아웃 날짜도 같았지만 나는 아침 일찍 리스본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해서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지 못해 왓츠앱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언젠간 다시 만나기 바라본다.

 

처음에는 당연히 리스본까지 비행기로 가려고 했는데 포르투갈은 아직까지 pcr 테스트 결과지를 요구하는 것 같아 육로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7시간 동안 버스를 탄 건 이번이 처음인데 다시는 타고 싶지 않다.

 

6일 동안의 포르투갈 여행은 정말 할 말이 많아서 다음번에 이어서 쓰고자 한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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