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하여, 도서 서른다섯, 늙는 기분

글 입력 2022.06.0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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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항상 눈부신 속도로 발전한다. 그래서 과거부터 상전벽해란 말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의 산출물들은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사람은 의외로 그렇지 않다. 상당히 경로의존적이다. 열려 있으면서도 보수적인 게 사람의 의식이다. 이건 실제로 정치학에서 투표 양상을 분석할 때에도 '연령효과(Aging effect)'로 설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어릴 때에는 진보적이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점차 보수화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기술은 괄목할 만큼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은 진보적으로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 비하면 평균수명이 늘어났고, 초혼 시기도 늦어졌고, 출산 시기도 늦어진 데다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의 비율도 과거에 비해 늘어났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과거처럼 결혼하고, 빠르게 출산하고, 낳는다면 아이 하나가 아니라 둘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누군가의 나이를 후려치곤 한다. 왜냐면 결혼과 출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아무래도 나이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사람들의 편견을 마주하다보면 내가 이 세상의 아웃라이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남들은 다 정상이고 나 혼자 비정상인가 싶기도 하고, 왜 자꾸 나에게 수많은 것들을 강요하는 것인가 짜증도 나면서 하드웨어의 변화만큼 빠르지 못한 이 세상의 소프트웨어가 답답하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인 이소호의 산문 '서른다섯, 늙는 기분'이 아마 손에 착 달라붙을 것이다. 내가 겪었던 그 상황을, 시인이 정제된 글로 풀어낸 것을 보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크기 때문이다.


 



< 책 소개 >


시집 [캣콜링]으로 2022년 펜 아메리카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 문학의 주목을 받은 이소호가 '삼십 대 여성의 노화'라는 주제를 특유의 파격적인 언어로 생생하게 전한다. 이소호 시인의 글을 두고 노벨문학상 [방랑자들]의 번역가, 제니퍼 크로프트는 "그녀의 글은 '훌륭하다'라는 형용사로는 부족하다"라 했고, <뉴욕 타임스>와 <시카고 리뷰> 등에선 "고통스럽지만 매력적인, 날것이면서 때론 의도적으로 유치한 글"이라 평했을 만큼 저자는 살아있는 언어로 견고한 규범에 균열을 내는 데 독보적이며, 이 책이 그 정수라 할 만하다. 

 

[서른다섯, 늙는 기분]은 여성의 나이에 유통기한을 매기는 매일의 곤경과 사투하며 자기만의 성장을 이루어나가는 삼십 대 여성의 모험기이다. "<거짓말>이라는 노래 제목을 들으면 빅뱅보다 god가 먼저 떠오르는" 저자는 서른다섯을 앞두고 명백하고도 투명하게 늙어가고 있음을 처절하게 고백한다. 늘어난 흰머리, 짙어진 팔자주름, 빠지지 않는 군살, 늘어나는 영양제 수보다 더 잔혹한 건 삼십 대 중반의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있다. 


저자는 서른다섯은 시들어갈 일만 남았다는 듯 바라보는 편협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 "서른다섯은 또 다른 성장판이 열리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 선언하며,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해 나간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써 내려간 이소호 시인의 산문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기 어려운 삼십 대 여성에게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특별한 방식으로 뜨거운 응원과 감동이 되어줄 것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참 서글픈 기분이다. 그 기분을 홀로 느낄 때에도 그렇지만, 누군가의 언어를 통해 나이 듦을 마주할 때면 새삼 현실이 나에게 펀치를 날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웃는 모습 그대로 팔자주름이 패인다든가, 얼굴 근육을 자주 쓰는 탓에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든가 하는 것에서부터, 소화능력이 예전 같지 않아 원래 먹던 양만큼 먹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보다 더욱 뼈아프다. 그런데 그걸 스스로 써내려간 사람이 있다. 바로 시인 이소호다. 그는 앉아 있으면서 점점 늘어가는 나잇살 같은 뱃살, 새치라고 우기고 싶지만 점점 더 많이 돋아나는 흰머리, 줄어가는 생리 양과 일수를 보며 신체적 노화가 어떻게 서른다섯 시인에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가 그려내는 삼십대는 이십대와는 다른 그 사소하고도 엄청난 차이들을 면면이 담고 있었다. 하나하나 놓고 보자면 분명 사소한 차이들일 뿐인데, 그걸 겪는 당사자에게는 매번 큰 충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삼십대는 '시간이 너무 없기 때문에' 사랑에도 시간을 아끼게 된다. 할 일이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십대 같은 체력과 에너지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남아있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면 그 중에 가장 가치가 덜한 것부터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동시에, 이렇게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더이상 이십대 때와 같은 만용을 부리는 일도 없어진다. 여행을 간다면 이층 침대가 즐비한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당연히 편안한 침대가 구비된 호텔을 잡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술을 여전히 마시고 그 후에 손으로 목구멍을 찔러 술을 다 게워내고 마는 이소호의 모습에는 연민을 느끼고 만다. 애당초 술이 맛있고 술이 좋다는 느낌을 내가 모르다보니,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마셔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분명 클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에게 파티라면, 살아있음을 느끼고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라면 그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그저 조금 더 몸을 보살피면서 즐기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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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대목은 '아무거나'였다. 아무거나. 예전엔 참 별 생각 없이 쓰던 말인데 이제는 잘 안쓰려고 노력하는 단어 중 하나다. 누군가가 뭘 먹고 싶은지, 뭐가 필요한지를 물었을 때 아무거나라고 대답해버리면 질문한 사람이 굉장히 부담스러워진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는 아무거나라는 대답보다는 큰 카테고리라도 꼭 제시하려고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아무거나라는 답은, 타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도 유의해야 하지만 나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차원에서도 유의해야 하는 단어인 것 같다. 스스로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면, 그 영역이 점점 넓어져서 나중에는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무기력으로까지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십대보다 삼십대가 되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보다 조금 무뎌졌다는 점이다. 이십대에는 감정이 극을 달렸다. 물론 그 당시에는 십대 시절에 비하면 온화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지금 보니 여전히 그 때에도 희로애락이 극명해서 즐거우면 눈을 꼭 감고 미간을 찌푸려가며 빵빵 웃음을 터뜨렸고, 화가 날 때는 뒷목에 열이 차오를 정도로 분기탱천했다. 슬플 때에는 세상에 그 누구도 없는 완전한 고독에 갇힌 것처럼 홀로 서글펐다. 그런 이십대를 보내고 나서 맞은 삼십대의 나는, 그 모든 기복이 좀 덜해졌다. 기쁨이나 분노, 슬픔 모두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진폭은 줄어들었다. 이런 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감정뿐만 아니라 호불호가 명확해서 취향의 범위가 좁았던 나였는데, 취향이 더 명확해지면서도 동시에 취향이 아니던 것들에 대한 관용이 조금씩 생겼다. 그래서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감정의 진폭이 줄어들어 기복이 없어진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모든 감정이 0으로 수렴해가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이십대 때에는 미처 겪어보지 못했던 거라 잘 몰랐다. 내가 점점 무기력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내 상황이 힘들지만, 누구나 겪는 거니까 나도 버텨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러면서도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고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점차 내 삶이 무가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시기의 나는 '아무거나'를 입에 달고 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무엇도 나에게 가치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그 무섭고 진득한 무기력의 늪을 벗어나 돌이켜보니, 무기력한 '아무거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달았다. 어차피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의 감정은 조금씩 모난 돌이 깎이듯이 다듬어진다. 취향도 마찬가지다. 내 호불호가 너무 뚜렷해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던 대상들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희석되어 버리면서 내가 누군가 싶을 정도로 낯설어지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내가 변해가는 과정이다. 그런 '아무거나'라면, 긍정적이다. 내 내면과 외연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소호가 말하는 '아무거나'가 나에게 아주 뜻깊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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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 초반인 나에게도 결혼 얘기로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서른다섯인 시인 이소호에게는 얼마나 더 다양한 결혼 잔소리들이 쏟아질까. 심지어 그는 결혼정보회사에 개인정보가 팔린 모양이다. 알지도 못하는 번호로 연락하면서 결혼정보회사 영업을 들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다. 그들은 사람을 품평하고 고기마냥 등급을 매겨서 헐값에 결혼으로 팔아치운 다음 결혼성사비를 받으려 애쓰기만 할 텐데 말이다. 실제로 작가에게 결혼정보회사 영업사원이 일장연설을 하며 그를 후려치려고 애쓰는 장면을 볼 때에는 혈압이 살짝 올랐다. 뚫린 입이랍시고 그 틈으로 혀를 나불댄다고 해서 그게 다 인간의 말이 되는 것은 아닌데.


내가 그의 상황에 이입할 수 있는 건, 비슷한 결의 상황들을 나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정보회사의 연락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들볶는다. 부모님, 친척들, 직장동료들. 오히려 친구들은 기혼자여도 전혀 그런 소리를 안하는데, 연령대가 높을 수록 확실히 잔소리가 심하다. 그럴수록 더더욱 거부감이 들고 반발심이 든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청개구리 심보는 어릴 때만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어딘가에서 애기 엄마 같은 소리를 들으면 한없이 삐딱해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초혼 연령이 늦어졌고, 30대 중반이나 그 후에 결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노산의 기준이라는 서른다섯, 그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출산을 하고 아이를 양육한다. 그뿐만 아니라 비혼인 사람들도 늘었다. 그래서 결혼률이라 출생률이 낮아진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은 많이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 인생의 대업이며 출산 역시 필수 코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판을 친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뺨을 내리친다. 본인들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히 날 선 가시 돋힌 말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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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나는 괜찮은데 세상이 거지같다는 거다.

나보다 내 나이 숫자를 더 열심히 세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저주다."


이소호는 예리하게 날 선 문장으로, 내 마음의 틈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바뀐 것은 그리 큰 차이가 아니기에, 누군가는 이소호더러 교훈을 줄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지만 단언컨대 그건 오판이다. 이렇게 문장 하나하나로 생생히, 온몸을 다해 살아있음을 밝히는 그를 어떻게 교훈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동시에 어떻게 그더러, '9부 다이아가 되기 전에 빨리 시집을 가라'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앞자리가 바뀐 후에 느낄 수 있는 이 모든 생각과 감정, 순간들을 면밀히 담아내는 그를 왜 세상은 노산이 되려는 가임기 여성으로만 보는가.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이소호가 답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들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경험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은 이 글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그것이 꺾이고 낡아지는 과정이 아니라 늙더라도 나아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노화가 두려운 질풍노도의 당신도 꼭 알길 바란다.


 



서른다섯, 늙는 기분 


지은이: 이소호

분야: 에세이


출판사: 웨일북

페이지: 224쪽


정가: 14,500원

ISBN: 979-11-92097-20-6 (0381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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