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 찰리 채플린 라이브 콘서트

글 입력 2022.06.0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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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아트프로젝트) 찰리 채플린 라이브 콘서트 포스터.jpg



찰리 채플린, 시대가 지나도 절대 잊히지 않고 있는 이름이다. 그의 이름과 작품은 음악에서도, 그림에서도, 영화에서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아이유의 ‘Modern times' 후렴 속 한 구절인 ‘또 봐요, 미스터 채플린’을 흥얼거리다 보면, 도대체 채플린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익숙하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는 찰리 채플린. 지난 5월 29일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그와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찰리 채플린의 대표적인 걸작 <시티 라이트>를 영상과 40인조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음악으로 만날 수 있는 <찰리 채플린 라이브 콘서트>가 개최된 것이다.

 

<찰리 채플린 라이브 콘서트>는 스크린에 무성 흑백 영화가 상연되는 동시에 오케스트라가 배경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의 종합 예술 공연으로 기획되었다. 무성 흑백 영화의 형식이 찰리 채플린의 이름과 현장의 오케스트라 심포니를 교두보로 하여 전해오는 이 공연에선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쉬이 경험하지 못했던 형식의 예술이 어렵지 않게, 천천히 우리에게 스며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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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고, 장면들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던 것은 스크린 속 미디어와 앉아있는 관객 사이에 현장의 오케스트라라는 탄탄한 연결 고리가 있었던 덕분이다. 시티 라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현장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무성 영화와 어우러져 장면의 현실감을 한껏 살려주었다.

 

또 반대로, 오케스트라의 진입 장벽이 코미디 장르의 영화 속 찰리 채플린의 유머를 통해 한껏 얇아지기도 한다. 오케스트라는 언뜻 배경으로 밀려나 연주하만 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현장의 관객들과 소통하며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때, 그들이 연주하는 노래의 익살스러움은 그 존재감을 한층 밝고 가볍게 만들어주어 관람객들에게 ‘즐거운 오케스트라’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아주 사소한, 뚱땅거리는 효과음조차도 현장에서 악기의 다양한 부분을 활용하여 소리를 내는데, 어떤 악기가 어떻게 배경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난다.

 

<시티 라이트>라는 영화 자체를 통해서는 찰리 채플린의 존재와 그의 예술에 가까이 가닿을 수 있었다. 극 자체의 장르는 분명히 코미디인데, 그 어느 예술보다 심오하고 감동적이었으며 아름다웠고 드라마틱했다. 적은 수의 인물들이 등장하며 거의 주인공 한 명의 시점에서 단선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해주는 감정은 너무나 풍부하여 여운이 짙게 남았다. 미사여구로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으면서도 주제를 뻔하지 않게 전달하는 <시티 라이트>를 통해 찰리 채플린의 명성이 헛되지 않음이 피부로 와닿았다.

 

*

 

영화 속에서 채플린이 연기한 부랑자는 아주 외로운 사람이다. 길거리를 돌아다닐 땐 모두가 그를 업신여기며 친구 하나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유리창을 통해 가게를 구경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에 사랑을 품고 산다. 자신이 물에 빠지면서까지 자살하려는 부자 신사를 구하고, 유일하게 남은 돈으로 거리의 눈먼 소녀에게서 꽃을 산다. 가진 거라고는 몸과 한 벌의 옷, 동전 한 닢뿐이었던 그가, 남들에게 자신의 전부를 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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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은 그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는 부자 친구와 아리따운 맹인 여인과의 사랑을 얻었지만, 그들은 채플린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않는다. 부자 친구는 술에 취했을 때만 그를 생명의 은인으로 대우하며 술에서 깨면 매번 그를 쫓아내고 모르는 사람 취급한다. 맹인 여성은 채플린을 부유한 신사라고 여기며 그녀가 상상하는, 실제가 아닌 그의 모습을 사랑한다.

 

그럼에도 채플린은 자신의 모든 것, 아니 없는 것까지도 구해서 여자에게 주기로 결심한다. 밀린 월세와 눈을 고치는 수술에 드는 비용을 대주겠다고 호언장담한 후 돈을 벌 수 있는 온갖 일들을 찾아다닌 것이다. 심지어 눈을 고치는 수술을 하고 자신을 똑바로 보게 된다면 더이상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 여기면서도 오직 그녀의 나머지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결국 그가 돈을 구한 곳은 부자의 주머니였다. 대신 그 댓가로 감옥에 가게 된다. 여자는 그 돈으로 눈도 고치고, 길거리가 아닌 상가 한 켠에 당당히 자신의 꽃집을 낸다. 그리고 자신의 후원자이자 사랑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채플린이 출소하여 거리를 거닐던 때에도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옷이 다 찢어진 채 거리에서 놀림을 당하고 있는 채플린을 마주하게 되자, 그의 외모를 보고 웃음 섞인 동정을 던진다.

 

마음씨가 착해 이 거렁뱅이가 신경이 쓰였던 여인은 선심을 쓰며 직접 동전과 꽃을 쥐어주려 하는데, 그의 손을 만진 순간 이 사람이 자신이 그려왔던 그 남자라고 확신하게 된다.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채플린은 그녀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말한다. “You can see now?" 그렇다는 대답에 채플린은 수줍은 듯 꽃을 입에 물고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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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눈을 고친 여인과 채플린이 만나는 장면에서 여인은 이전과 달리 채플린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해피엔딩을 바라기는 하지만, 부유하고 멋진 신사를 상상했던 그녀가 작고 왜소하며 빈털터리인 채플린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것을 관람객 모두가 안다.

 

마음은 아프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 너무 많은 사람이 그러하며 나조차도 그럴 것 같아서 그녀를 차마 탓하지는 못할 것 같다. 아마 채플린도 그녀가 자신을 향해 던지는 시선을 본 순간, 그 사실을 예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채플린은 그 모든 것을 떠나 그녀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한다. 그 장면을 보며 우리는 그가 그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채플린은 어떠한 조건 없이 그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며 사랑했던 것이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묵묵하게 사랑을 향해 나아가고, 자신의 처지가 어떻든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해맑은 미소를 띄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지향하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너그럽고 순수한 사랑의 모습이 누구에게나 무시 받고 지독하게도 외로운 삶을 사는 거렁뱅이에게서 보인다는 것은 굉장히 역설적이다. 또, 슬랩스틱 등 다양한 코미디 요소와 생김새 묘사를 통해 거렁뱅이를 아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도 그의 내면을 한없이 깊게 그렸다는 점은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세지를 한층 진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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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와 사회적 지위로 그 사람의 깊이를 판단하는 것, 내가 느낄 수 있는 부분만으로 상대를 속단하는 것에 대한 풍자는 물론이거니와 채플린을 통해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이 영화는 재고 따지는 인간관계의 파도 속에 놓인 우리에게 따끔한 충고를 던진다. 가끔은 조건 없이 사랑해보자. 마음껏 주고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아보자. 그런 순수한 사랑을 해도 넘칠 만큼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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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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