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종로 스케치 4-3, 안녕, 인사동

기억을 몰고 오는 단맛
글 입력 2022.06.0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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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쌈지길을 나왔다. 얼마나 오래 걷고, 멈추었는지 그려지시려나. 다음으로 갈 곳은 '안녕 인사동'이다. 지난번 르네 마그리트 展으로 처음 알게 된 곳이고, 그쯤 오픈한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입점이 덜 된 휑한 건물로 기억하고 있다. 가는 길, 잠시 거리 한중간의 돌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다시 출발하려 고개를 들었는데, 또 발이 걸렸다. 그쯤엔 정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서, 곧 해가 지고 하루가 마감될 것 같아서, 글로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걸을수록 쓰는 시간은 줄어들고 쓸 것들만이 늘어날 것 같아서, 마음속에는 지면을 박차는 힘찬 관성이 생겨나는 즈음이었으나…

 

- 지난 에세이, 종로 스케치 4-2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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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인사동'은 인사동 길의 안국 쪽 끝에 있다. 인사동의 초입으로부터 여기 오기까지도 꽤 오래 걸렸다. 내 생각보다 인사동에 머물게 된 시간 자체가 길다. 전편을 보신 분은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나무시계 매장에서도 한참을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 인사동'의 입구에는 바자회로 지날 틈 없이 붐볐고, 내 기억 속에 비해 많은 점포가 들어서 있었다. 이쯤 다리 쉼을 하려고 카페에 들어갔다. 배가 고팠다. 눈꽃 빙수를 시켜서 혼자 다 먹을 생각이었지만 매진이었고, 덕분에 나는 인절미 티라미수를 시킬 수 있었다.

 

인절미, 내가 왜 인절미를 떠올리지 못했을까. 좋아하는 것에는 팥과 인절미도 당당히 들어 있다. 한입 퍼넣고 노트를 펴 적었다. 인절미의 맛도 맛이지만, 이 고운 베이지색을 너무 좋아한다. 베이지는 태양을 듬뿍 머금은 밀의 색깔, 낮잠을 몰고 오는 포근한 펠트의 색깔, 그리고 인절미의 색깔이다. 티라미수라길래 혹시나 인절미 가루로 위장된 커피맛 디저트일까 했는데, 다행히 그렇진 않았다. 안에는 크림과 시트와 흑당과 또 시트로 층층이 이루어져 있다. 흑당의 과한 단맛을 인절미가 품는다. 인절미도 얼마간 달지만, 인절미의 단맛은 품이 넉넉해 다른 무언가가 들어차 녹아나고 스러질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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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땡을 가더라도 무조건 인절미 빙수를 시키곤 한다. 친구들과 싸워도 나는 막무가내이다. 딸기빙수나 메론빙수를 시키고 싶은 의견과 팽팽한 대립을 이루면, 나는 두 개 다 시켜서 인절미를 나 혼자 다 먹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실제로 다 먹는다. 입가에 묻은 인절미 가루를 두고 바보 같다고 웃어젖혀도 인절미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다 인절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이겠지.

 

팥, 간혹 어떤 빙수집에서 인절미 빙수를 시키면 조그만 종지에 팥이 담겨 나오는데 한 종지 팥을 다 부어보기도 전에 하나 더 달라곤 한다. 점원은 못마땅한 건지 미심쩍은 건지 나를 쳐다본다. 그것도 다 괜찮았다. 나는 그 팥을 다 먹을 수 있고, 반드시 한 종지로는 부족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500원을 내라고 했다면, 당당히 두 종지를 샀을 것이다. 빙수 없이도 단팥은 그 자체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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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은 직접 쑤어 먹어야 제맛이다. 겨울철 뽀얀 김 속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알알이 살아 있는 튼실한 팥죽과 팥소를 기억한다. 비록 내가 쑬 줄은 모르지만, 어머니가 잘 쑤셨다. 참 우리 어머니는 요리를 잘하셨다. 어머니가 담근 김치, 동치미며, 수정과건, 식혜건, 팥죽이건 전부 다 맛있는 것들뿐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키는 140이었고 몸무게가 40 나갔는데, 그게 생각보다 통통한 상태라는 걸 너는 알까?

 

직접 쑨 팥에서만 나는 구수한 향기가 있다. 가족 건강을 생각해 설탕은 줄였지만, 구수함이 그 자리에 잔뜩 차 있어서 오히려 풍부하다. 겨울과 따뜻한 것과 뽀얀 김과 구수함, 팥죽은 딱 그런 음식이다. 팥죽에 늘 옹심이는 빼달라고 했다. 너무 쫀득하게 된 찹쌀이 목을 막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옹심이 먹는 것은 나잇살을 먹는 의미라며 꾹꾹 눌러주셨고, 그래서 항상 동치미를 같이 퍼오셨다.

 

집 바깥 편 눈 덮인 장독을 열면, 꽝꽝 언 얇은 얼음. 그것을 국자 등으로 쾅쾅 쳐부수면, 국물에 살얼음을 덧댄다. 씹어도 씹어도 짓이겨지지 않는 옹심이는, 사실 그때부터 성미가 급해서 빠르게 마셔댄 탓이지만, 동치미로 씻어내는 것이라고 그 시절 배웠다. 그리고 팥죽 한술에 김치를 얹어 먹는 것이라고도 배웠다.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조합이지만, 그래서 투덜대며 거부했지만, 옛것에는 옛법이 있는 것이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것이 구수한 덕분이 아닐까. 달기만 한 설탕 팥에도 김치가 어울릴지는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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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카페와 '안녕 인사동'을 빠져나오는 길에서 결국 이 매장마저 지나치지 못한 탓은, 인절미가 팥의 기억을 더불어 내게로 왔기 때문이다. 여행자들의 발목을 붙잡는 달콤한 늪 같은 느낌. 결코 강권하지 않지만, 은근하고 차분하면서도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래서 그 눈빛을 받는 자로 하여금 동요하게 만드는 어떤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 양갱엔 향기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먹을 것이 뿌리는 최초의 유혹으로써 이끌린 것이 아니다. 양갱의 몸체처럼 매끈하고 말간 얼굴로 된 매장이 결단코 아무런 사심도 없이 내게 건넨 안녕, 그러니까 대화를 한번 나눠보고도 싶지만 준비되지 않은 섣부른 목소리로 '저기'하면서 불러보는 것은 영 부끄럽기도 볼썽사납기도 해서, 오히려 아무것도 담지 않은 말간 눈빛, 그런 눈빛을 일부러 준비한 다음 마찬가지로 투명한 안녕을 불러본 것이다.

 

매장의 색은 어떻게 바라보자면 좀 묽게 태워낸 수정과, 혹 그보다는 홍시 색을 띠고 있다. 홍시, 홍시도 되게 속 깊은 음식이지. 고향 집 마당에는 언제 온 건지 모를 감나무가 하나 있었다. 감나무 가지는 그 속이 텅 비어버려 잘못 밟으면 우지끈 부러지곤 해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 아마 그 끝에 달린 홍시에게 전부 바쳐버린 탓이다. 약간만 억지를 부려보자면 심장 모양과 색을 닮은 것, 그 속들이 결이 나 있는 어느 나무의 심장에는 다홍빛 섬유들로 가득 차 있다. 비물어 먹을 때면 치아 끝으로 섬유 결을 찢어 뭉개는 뭉클한 감각, 이내 은은하게만 퍼지는 달콤함은 어떤 심성 고운 이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집착하지 않는 사랑을 닮았고, 오래 바라보는 눈빛을 담았다. 이런 그윽함이라니.

 

달콤함은 여러 가지 사랑을 그려내곤 한다. 너무 쨍한 달콤함은 열렬하고 저돌적인 사랑, 그것은 열렬한 이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붙잡아둘 수 없이 쏘나가는 마음의 비유 같다. 받는 이, 맛보는 이로서는 분명 달콤하지만, 한편 부담스럽기도 한 것, 그래서 오래도록 맛볼 수가 없는 그런 맛이다. 비하여 홍시는 은은하고 속 깊은 과실로 생각되는 것이다. 진득한 맛이다. 과육이 목구멍을 넘어간 뒤 남긴 뒷맛에 집착이 옅다. 흠- 흠- 하고 코로 숨을 뱉어보면, 쓰지 않아 얼마든지 머금고픈 향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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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그 나무는 너무 많은 사랑의 모양을 빚어내느라,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나무 한 그루가 어림잡아 일흔 개가 넘는 심장을 영글어내느라, 그 허약한 빈 가지를 축 늘어뜨린 모습으로 애처로이 서 있었다. 긴 장대로 된 전지가위로 가지를 솎아내면, 바칠 것이 적어진 나무는 이듬해 더욱 커다란 것을 만들어 낸다. 어린 나의 손을 가득 채우고도 한참을 남았던 튼실한 과실, 막 땄을 때는 여물차다. 가을 바람이 덜 들었을 때의 그 심장은 튼튼한 촉감이다. 하지만 이내 괘씸한 생각이 들어 손아귀에 힘을 주면, 손자국이 남는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볼수록, 그것은 마음의 비유 같다, 흔적을 간직하는 것으로서. 그러니 가을 바람이 그리움을 퍼담으면, 쉽게 물러지고 하염없이 말랑말랑해지지. 그 말캉함마저 좋았다.

 

아버지가 사다리에 올라 쪽가위로 홍시의 머리에 난 대동맥을 끊으면, 가슴팍에 바구니를 안아 든 내가 밑에서 받았다. 머리 위에 소쿠리를 인 캐릭터가 좌우로 다니며 감을 받아내는 어느 게임의 모습이 연상된다. 쪽가위를 대고, 밑을 한번 슥 훔치시곤 탁-, 그걸 바라보는 나는 갑자기 쿵 하고 떨어지는 감의 무게가 꽤 무겁다고 생각했다. 몇 개의 소쿠리를 채워내고서야 감나무는 비었다. 그러고도 다 따지 못한 것, 나무 정수리 위로 너무 높게 난 것들은 말 그대로 까치밥으로 두었다. 정말 까치가 와서 그걸 쪼아먹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간 그것들이 땅에 떨어져 깨지는 것도 보았다. 늦가을 흐린 하늘 아래로 수척해진 감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보인 색은 조금 창백한데, 자랑해 보일 늠름한 다홍색 심장을 다 떨어트리고 나면 되게 초라한 모습으로 널브러진다.

 

소쿠리에 채워둔 감은 숨이 죽을 때까지 '광'에 두었다. 튼튼함이 말랑함이 되는 동안, 심벽의 두께는 얇아지고 딴딴했던 색깔은 흐물흐물한 다홍색이 된다. 가을부터 겨울 초입까지 후식이 되어주고, 남은 것들은 말린다. 말리는 것은 할아버지의 몫이다. 어떻게 말리는 거였더라, 그것까진 기억이 잘 안 난다. 수분이 빠져나간 과육을 볏짚 같은 것으로 동여, 안방 자개장에 걸어두었던가 그랬다.

 

곶감은 이제 시간에 익어버린 사랑이 숨죽어, 수분을 잃어, 대상을 잃어 집약된 그리움 같다. 비물어 보면 이제 느껴지는 결이 없다. 심장 속에 자리 잡은 섬유들이 결결이 마음과 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면, 곶감은 생생한 섬유를 모두 잃어버리고 웅크린 무언가이다. 샘솟아 계속이 꿈틀거리는 마음은 사라지고 추억만이 남아, 집약돼, 오래도록 앓고 있는 맛이다. 본래의 4분지 1, 5분지 1 크기로까지 쪼그라든, 웅크린 과육에 털어내지 못할 하얀 서리가 베인다. 사실 그것은 설탕이 가슴 바깥으로 돋아난 것이라고 하던데, 이제 쨍한 달콤함이 되어버린 곶감이지만, 살아있다기보다는 죽어있는 맛이라 또 다른 사랑 같다. 흐물흐물했던 수많은 결이 숨죽어, 쫀득하게 집약되어 있다. 미간을 좁히는 단맛은 아마 그 마음이 지어낼 표정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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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와 팥과 홍시와 계피, 인사동이 좋은 이유는 이런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어여쁘게 단장한 양갱들을 바라보다간, 조그맣게 된 홍시 모양 곽에 손을 뻗었다. 집에 와서 조심스러운 손길로 포장을 뜯었다. 달다, 많이. 팥이 단 건지, 박혀 있는 홍시가 단 건지 모르겠지만 달다. 팥과 달리 양갱은 본디가 쨍한 단맛을 내니까 이상할 것 없다. 탱글탱글한 표피 아래로 조각난 홍시가 박혀 있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단것을 먹어야만 하는데, 글 쓰느라 과열된 앞통수가 쨍한 단맛을 느끼곤 오히려 놀래어 깼다. 오늘 잠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아주 조금씩 비물어먹었다.

 

더 이상 글은 못 쓸 테고, 멍하니 캄캄한 밤을 치어다 보며 씹었다. 양갱… 양갱은 어둔 밤 같다. 또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다. 할아버지가 좋아했고, 할아버지 때문에 이따금 먹게 되었으니까. 그러면 할아버지도 밤 같은 걸까? 아니면 양갱과 관련된 어느 일화 안에서만, 양갱과 밤과 할아버지가 하나로 이어지는 걸까? 멍해진 머리 안으로 이런 생각을 곱씹다간, 역시 후자를 택했다. 할아버지는 잠이 없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았다. 그 옆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자는 나는 정말 이따금씩 새벽에 깨버리는 일이 생기는데, 그러면 가장 먼저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친다. 누워서 머리를 괴고 있는 할아버지와 눈을 마주친다는 건, 이미 그전부터, 아마 더 오래전부터 바라보고 있었음을 의미한다는 것, 어린 나로서도 그것을 퍼뜩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깨는 어느 밤마다 그런 지긋한 응시를 마주한다는 것, 이 체험이 반복됨에 따라 마음 안에 영글어지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어린 나로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양갱을 좋아했고 밤잠이 없었다. 한밤에 어머니를 깨워, 애미야 밥 좀 차려다오, 하지는 못하실 터이니 밤에는 양갱을 드셨다. 한 입 하련, 하셔도 난 먹지 않았다. 그건 너무 달기 때문이다. 곶감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많이 먹지 못했다. 한입 물곤 할아버지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다 씹어 잡수셨다. 깐 양갱을 쉬어가지도 않고 다 먹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양갱과 곶감같이 너무 쨍하게 단 것들을 어떻게 씹어야 하는지 알겠다. 그런 것을 씹어 삼키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한지도 알겠다. 하지만 그것까지 지금 다 말해 보이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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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양갱집에 들어간 건 맞지만, 진짜로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것은 양갱을 먹는 동안의 일이었다. 밤에 먹는 동안이었다. 이젠 없지만, 언제까지고 간직되는 그가 내 잠을 더 흩어놓는다. 나의 온 밤을 지켜본 지긋한 응시가 어린 때 만들어둔,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잠에서 놓여난다. 그리고 '종로스케치 3, 낙원상가'의 문미에 성급하게 드러나버린 것, 기억하는 한 존재는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익어간다. 여태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언제나 그를 생각할 적마다 내 안에 움트는 이 미약하면서도 질긴 감정이, 언제까지고 얼마든지고 되살아나리라는 자신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관계'라는 관념을 지탱하는 것, 구성하는 것이 대상 자체라기보다는 존재에 있었다면, 대상이 사라지고 나서도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그 존재가 지속되는 한 그렇다. 그리고 존재란, 아직 내 안에 정의되지 않은 무언가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상관물이다. 나는 그렇게 불러보려 한다. 내게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무언가를 나는 존재라고 부르고, 그 반응을 통해 끊임없이 존재가 감각된다면, 이제 비약을 통해 할아버지가 내 안에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다'라고 말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기억하고 불러봄으로써 존재가 일으키는 반응이 점차 또렷해지고, 그 반응으로써 다시 존재의 형상이 또렷해진다고 한다면, 이내 할아버지의 존재가 시간의 먼지, 망각과 흩어냄이라는 시간의 자연스러운 인과를 역행하여 '점차 되살아날 수 있으리라'고 섣부르게 믿어보고자 한다. 나아가 이것이 시간에 대해 반항하고 저항하는 나의 태도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 이 결론을 위해 사고의 계단은 뒤이어 얼기설기 생겨난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조금 섣부름'이라는 속도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머리 뒤편에 씨앗을 심어두면, 나중에 그것이 익어 터질 때 '그럴듯함', 누구 말을 인용하자면 '근사함'이 되어 줄 것을 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양갱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조금 더 나아가서는 홍시에서, 인절미에서, 심지어는 계피 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

 

**

 

언젠가 사랑하는 종로를 떠올릴 적에, 유년의 종로를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지에 대해 생각하면 부러움을 느끼노라고, 이야기해 보인 적이 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것도 다 맞는 말이 아니었구나. 내 안에 이리도 많은 유년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기억하지 못한 소치였다. 거꾸로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나는 지금 이런 생각 속을 마음껏 전전한다.

 

나는 집돌이라서 말로 풀어낼 설 같은 것이 그다지 없다. 당연히 글에서도 그런 줄 알았는데, 내가 이렇게도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 줄을 글 쓰는 중에도 다 몰랐다. 이렇게나 값지고 빛나는 경험들이, 내 유년의 기억 속에 평범하게 묻혀 있을 줄 몰랐다. 뒤엔 첩첩으로 이루어진 팔공산, 앞으로는 광활한 논을 끼고 있는 내 고향 집,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엔 대략 400평 정도 되던 내 집 마당에서 나는 어릴 적부터 혼자 놀았다. 거기엔 커다란 은행나무도 있고, 감나무, 사과나무도 있었고, 그래, 자두나무가 특히 사랑스러웠다. 아무도 손보지 않는 나무들이었지만, 그래서 사과는 너무 작고 속도 다 여물지 못했지만, 자두만큼은 그 나무의 자두가 가장 맛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우리 고장이 기획한 특산물에는 자두가 들어섰다. 옹골찬 자두라고, 그래도 내 기억 속의 맛과는 견줄 수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의 손을 타지 않아 당도가 덜 베인 자두. 조금의 당분, 나머지는 수분으로 가득 이루어져 있는 그 자두는 과즙이 왈칵 베어 물렸다. 그러면 무언가 비어있는 맛, 아니, 품이 넉넉한 단맛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은은하게만 퍼지는 수분 찬 단맛, 나이가 차고 그 기억이 선물처럼 떠올라 퇴근길에 자두를 사보면, 죄다 맛으로 가득 차 있다. 시다. 이게 자두의 본디 맛이었는지를 나이가 들고서야 알게 된다. 나는 기억의 목록에 있는 '자두의 맛'을 수정하고 기존의 것을 '우리 집 자두 맛'으로 네임택을 달아 따로 떼어둔다.

 

이제는 땅을 거의 다 팔아버려 100평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을에서 가장 큰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상품성이 없는 사과나무와 세상 하나뿐인 자두나무는 사라졌지만, 고향 집은 이렇게 언제까지고 내 기억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부엌에서 광을 통해 이어진 바깥에 어머니가 직접 담그신 장이며, 동치미를 담고 있는 장독이며, 겨울과 팥죽과 홍시와 안방의 자개장과 할아버지도 그렇다. 그리고 매일 밤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그 눈빛마저 그렇다. 이런 것들은 잊을 수 없는 것들이다, 비록 빛바래가겠지만. 이런 오래된 것들이 내 정서의 몸체가 되어 이미 있었고, 그것이 습작하며 살아가는 지금, 글이라는 육신을 부여받아 살아 돌아온다는 것, 나는 이것에 대해 무어라 다 표현해 보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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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직도 다 쏟아나지 못한 벅찬 마음은 아직 살아계신 어머니께로 방향을 틀었다. 전화를 했다. 그 옛날이야기와 할아버지의 기억을 나누다간, 너희 정서의 9할은 할아버지의 몫이라고 이야기해오신다. 서울에 살면서 타향의 거리와 공기로 편입되려 할 때, 가끔 촌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도 사실은 다 이런 정서의 은혜인 것이고, 그것들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씀해오신다. 나는 바투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습작이 충분히 쌓여 읽어줄 만한 글을 낳을 때, 연륜이랄 게 생겨 세상에 대해 우아하게 이야기해 보일 수 있을 때, 나는 이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책을 쓰겠노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의 생애, 어머니의 유년과 산골 마을,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자란 나에 이르기까지의 긴 이야기, 新 三代를 써보이겠노라고, 그를 위해서 어머니와 긴 긴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또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니까. 아직 많이 먼 일이지만, 기왕이면 손주를 데리고 돌아와 마당의 늙은 골든 리트리버와 놀게 두고, 어머니 손을 잡고서 긴 긴 밤을 보내겠노라고, 기필코 그러겠노라고 다짐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는 단계, 지금 순간이 인사동과 수정과와 팥죽과 할아버지에까지 이어져 있음을 느낀다. 시간이다. 나는 눈 감아, 시간을 느끼노라는 감미로운 착각 속을 유영할 수가 있게 된다. 아주 먼 과거로부터 이어진, 시간의 비유가 내 앞에 놓였다. 오랜 기억과 그것이 모여 사람의 안에 형성해두는 모호한 것, 정서의 몸체, 그리고 지금. 쏘나가 앉아볼 만한 곳을 찾았을 때, 느닷없이 검은 천을 찢고 쏟아져나오는 기억과 더불어 온 정서가 지금, 내게 선형으로 이어진 어떤 짜깁기 된 시간을 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글 쓰는 복된 나는 이 필름 조각을 지금에 오려 붙이며, 더욱 아름다운 무언가가 되어주기를 원한다.

 

사랑하는 글쓰기를 넘어, 사랑으로 쓰는 글쓰기가 나를 어디까지 데려가 주는지 체험한다. 당연히 나는 천재가 아니라서, 감히 글을 설계하지 못한다. 이것은 온전히 글이 내게 준 것들이다. 이것으로 인사동이 내게 준 모든 것들을 써냈다. 소실된 것이 많지만, 얻은 것이 더욱 많다. 이 읽기도 힘든 긴 글은 시간을 극복하여 되살아나는 존재, 그러한 사상에 관한 단초가 '되어 있다'. 이것은 섣부름이라는 속도로 전개된 것, 사실 이제야 정수리에 심어본 씨앗. 하지만 조급하지도 않다. 이것을 능히 이야기해 보일 수가 있게 되는 때, 쏘나가 앉아볼 만한 미래의 순간을 접하여 그것이 분수처럼 터져 나올 것임을 내가 아는 탓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욱 써나갈 것이다. 다른 글에다가 쏟아낼 이야기이지만, 이제야 내 안에 욕심이랄 게 생겨나기 때문에. 시간, 과거와 지금에 대해 생각할수록 미래라는 허상, 혹은 이야기가 또렷해져 간다. 이 그려본 미래와 생장하는 욕심이 나의 지금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막 시작했다. 이제 나는 가져볼 것이다. 먼 미래의 천장에 걸어둔 굴비를 뻗어낸 젓가락으로 빠수어, 기어코 입 안에 넣을 것이다. 나는 지금, 22년의 늦봄과 초여름 사이 어딘가로부터 변화하는 나를 느낀다. 

 

감히 내가 무언가를 원할 것이고, 아프게 갈망할 것이고, 마침내 쟁취할 것이다. 모든 아름다운 기억들, 과거가 빛바래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인과라고? 흐름을 거부하는 것은 집착이고 결국 스스로 아플 것이라고 말한다. 내 안, 가치판단의 주재가 그런 '오래된 안온한 말'을 뱉어 온다. 나는 이제 그런 것들을 우격다짐으로 거부해볼 것이며, 그런 막무가내, 충동심은 오직 열렬한 욕망으로만 지속될 수 있는 것임을 내가 안다. 

 

이렇게 아름다운 유년을 가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것들이 지금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또렷하게 있었으면 한다. 더욱 선명하게 기억되기를 바라고, 오래도록 존재하기를 바란다. 마침내 다른 사람들과 심지어는 나의 자식에게까지 전해지기를 바란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그리고 이 모든 상념이 양갱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조금 더 나아가서는 홍시에서, 인절미에서, 심지어는 계피 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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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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