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애정하는 것들 - 3. 커피 (coffee) [문화 전반]

여느 현대인들처럼 카페인에 중독된 채로 살아가는 사람
글 입력 2022.06.0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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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돌아온 [내가 애정하는 것들]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주제는 바로 "커피"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고른 결과다. 마침 카페에서 글을 쓰려고 하기도 했고. '커피'라는 소재를 가지고 쓸 수 있는 글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사랑하게 된 이유와 그 과정을 이야기 해볼까 한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호기심이 많았다. 이것 저것에 늘 관심을 두었던 나는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는 일이 없었다. 책도 돌아다니면서 읽고,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금세 싫증을 내고 피아노를 치기 일쑤였다.

 

제자리에 있지 않는다고 크게 혼난 적은 없었다. 간혹 숙제를 다 못했을 때에는 잔소리를 듣기 했지만, 엄마는 나의 산만함을 크게 문제 삼진 않았다. 돌이켜 보면, 아마 둘째를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웬만한 건 그려러니 하고 넘어가 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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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커피를 자주 마셨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피곤해서 커피 없이는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카페인의 힘을 자주 빌렸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여름이 되면 믹스 커피에 얼음을 동동 띄워 마시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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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식사가 끝나면 꼭 따뜻한 커피를 드셨다.

 

블랙커피에 설탕을 넣어 입맛에 맞게 탄 커피로.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다보면, 커피가 담긴 잔을 쟁반에 받쳐 그에게로 가져다 드리던 것이 떠오른다. 그 커피를 한 모금이라도 맛보고 싶어서 그의 곁을 맴돌던 어린 나도 함께 말이다. 아무튼 어렸을 때부터 커피는 내 주변에 늘 존재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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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살 무렵의 나는 그 나이 때 애들처럼 나가 놀기를 좋아했다. 부모님을 졸라, 용돈을 받아 놀 때면 스티커 사진을 찍고 분식을 먹은 이후에 달달한 음료를 마시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 때가 2009년 즈음이었는데, 막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때였다. 나의 관심사와 시기가 잘 맞아 떨어진 탓에 커피에 점차 깊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왜 그런 적 다들 있지 않나.

 

어렸을 땐 어른이 되고 싶어서 어른 흉내를 내는 그런 거. 옷도, 머리도, 그리고 식습관도 어린 애 티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없는 용돈을 쪼개 친구들과 놀러 나갈 때마다 '별다방'이나 '어떤 장소' 같은 카페서 커피를 시켜마셨던 기억이 난다. 아메리카노는 쓰니까 달달한 메뉴로 엄선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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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음료만 찾던 나는 중학교 3학년 즈음 되었을 때부턴 조금씩 커피 맛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공부량이 많아지다보니 에너지 드링크나 커피를 사먹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사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니였고 잘하는 편은 더더욱 아니였지만, 어쨌든 학교나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는 해가야 했기에 잠을 깨울 수단으로 찾았던 것이다.

 

커피를 자주 마시다 보니 맛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아메리카노는 어른들만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 학생인 내가 달콤한 것이 아닌 씁쓸한 것에서도 맛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나도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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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시절, 하교 후나 주말에 카페에서 문제집을 풀며 커피를 마시곤 했다. 독서실을 놔두고 카페를 굳이 찾는 이유는 뭐였을까. 그 시절 내겐 카페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카페에서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괜시리 성공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단조롭고 괴로운 그 시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주었기 때문에 자주 찾지 않았나 싶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순간만큼은 스스로에게 쉼을 선사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좋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일을 하면 더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 그러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카페라는 공간은 나에게 더할나위없이 행복한 공간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대학생이 되면 꼭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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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음식 프로그램을 자주 보았던 나는 음료 레시피에도 관심이 많았다.

 

책을 워낙 좋아해서 도서관을 자주 다녔는데, 그 때도 식문화와 관련한 책을 참 많이 빌려보았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파주 출판단지에서 책과 관련된 행사를 할 때면, 꼭 그런 책을 한 권을 사서 돌아왔다. 재료가 없어 지금 당장 만들 수는 없어도, 읽는 것만으로 설렜다. 텍스트를 하나하나 음미하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그 음료를 맛본 기분이 들었다. 생경한 음료의 레시프를 볼 때면, 언젠간 내 손으로 저걸 만들어 보리라 다짐도 했다.

 

내 나이 스물에 나는 나의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카페 알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꿈에 그리던 일로 용돈까지 벌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다. 예상외로 보이는 것 이상의 부수적인 업무가 많아서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그래도 글을 실물로 옮기는 작업을 원 없이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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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은 프랜차이즈 카페였지만,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 전에는 개인카페에서도 일했을 만큼 다양한 카페에서 일을 했다. 카페 알바를 꾸준히 하면서, 다양한 원두를 맛보고 여러 메뉴들을 직접 만들어보면서 점차 커피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

 

원래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알면 알수록, 깊고 어려운 세계가 펼쳐진다.

 

좋아하는 정도가 일정 이상을 넘어가면서 그 관심의 크기가 마음의 크기만큼 커지면 그것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다.

 

나에게는 커피가 그랬다.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도 카페 투어를 다닐만큼 진심이었다. 다양한 가게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커피를 맛보면서 쌓인 데이터베이스는 나를 섬세한 맛과 향의 세계로 인도했다. 같은 원두일지라도 추출 방식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달라졌고, 또 우유 스티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메뉴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도 재밌었다.

 

커피를 더 즐기기 위해서 관련된 책과 영상을 자주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알고 마시는 것과 모르고 마시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할수록 재밌게 느껴졌다. 코로나 때문에 실기시험이 계속 미뤄지는 바람에 자격증은 없지만, 실제로 바리스타 필기 자격증을 땄을 정도로 커피 공부가 좋았다. 살면서 이렇게 재밌게 공부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런 게 사랑의 힘일까?

 

이렇게 커피를 열렬히 사랑한 탓에 커피와 연관된 직업을 갖고 싶었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은 탓에 당장은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가슴 한 켠엔 늘 커피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다. 언젠간 꼭 커피와 늘 붙어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요즘도 계속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의 삶은 커피와 지독하게 엮일 것이다.

 

취업을 했지만 카페에서 일하던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요즘도 하루에 세 네잔 커피를 마신다. 피로해서 한 잔, 식후에 한 잔, 졸리니까 한 잔, 친구와 한 잔 이런 식이다.

 

어릴 때는 어른처럼 비춰지고 싶은 탓에 커피를 먹고는 했는데, 그 나이가 되어 보니 커피 없이는 하룰 시작하는 것이 힘들어서 마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한편으로는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튼 팍팍한 일상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커피는 나에게 영원히 동반자같은 존재일 것이다. 나에게 쉼과 에너지를 선사하는 것을 꾸준하게 즐기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만들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커피를 연거푸 들이키고 있다. 나에게 다양한 감정과 배움을 준 커피를 지금처럼 오래오래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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