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픔을 사랑합니다 [사람]

예술과 우울의 상관관계
글 입력 2022.05.3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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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아픔을 사랑합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하고, 또한 이상한 말일 수 있겠다. 아픔을 사랑한다니. 좋고 행복한 것을 서로 많이 나누어도 모자랄 판인 세상에서 감히 글의 첫 문장을 저렇게 잡아보고자 한다.

 

에디터가 되고 나선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긴 하지만 이전에도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전시를 관람하는 시간을 따로 할애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비슷한 경향에서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용을 더 꼼꼼히 보고, 생각을 본격적으로 메모해두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힘을 빼고 아무 생각없이 재미로만 문화예술을 접하려 했던 때와는 어쩐지 조금 멀어진 것 같기도 하다.

 

편식하지 않고 경험하려 노력해야 한다지만 그럼에도 더욱 끌리는 것들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취향은 이내 관성이 되어 익숙하고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끌어당겼다. 그런 과정에서 행복보단 우울에 좀 더 쉽게 젖어 드는 사람이란 걸 인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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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은 묘한 불편함을 주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예술에는 창작자의 시선이 어느정도 반영된다고 생각하는데, 예술이라는 껍질로 포장된 누군가의 아픔과 우울을 좋아하고 이를 소비하는 꼴이 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작게나마 발현된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또 꼬리를 물어 이내 누군가의 슬픔을 담은 예술 작품이 아름답다고,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는 현상에도 의문을 품었다. 과연 이것이 괜찮은 걸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모든 문화예술 작품들이 우울함을 품고 있는 것도, 모든 예술가들이 우울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울은 예술의 소재로 꽤나 자주 이용된다. 당장 떠오르는 뭉크의 ‘절규’를 생각해보기로 할까. 해당 작품은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고 그만큼 패러디도 많이 된 작품이다. 하지만 그는 이 그림에서 공황발작을 겪었던 일을 계기로 충격파처럼 인물의 얼굴을 원초적 두려움의 모습으로 변형시키는 선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아마 이렇게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알고 나면 절대 유쾌하게 감상할 수만은 없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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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절규'.

 

 

이렇게 미술 작품이 되었든 음악이 되었든, 혹은 다른 문화예술 작품이 되었든 대상의 이면에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면 이를 향한 내 관심은 더욱 커진다. 그렇다고 내가 행복이나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왜 우울이 짙은 예술 작품에 더 이끌리게 되는지 조금 더 파고 들고자 했다.

 

이에 대한 결론은 2가지로 정리되었는데, 각각 ‘공감’과 ‘승화’를 키워드로 잡아보고 싶다. 우선 부정적인 감정이 적어도 나에겐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조금 더 효과적인 면이 크다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삶의 경험과 닿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각자 인생에서 많은 사연이 있겠지만 일단 나는 아직까진 긍정적인 경험보단 부정적인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마주한 감정 역시 썩 좋지 못했기에, 이를 더 잘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연장선상으로 우울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이라 수용하는 경향이 크다. 때문에 그만큼 회피하는 경우도 잦다. 나아가 이러한 감정들은 병적으로 인식되고 빨리 벗어나야 하는 감정이라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존재하는 법 아니던가. 삶이 언제나 화창하고 쨍쨍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흔히 부정적이라 인식하는 감정들이 꼭 필요한 순간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 보낸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때 느끼는 슬픔을 두고 우리는 부정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한 감정이라 받아들이고, 이를 충분히 느낀 후 놓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무작정 빨리 빠져나와야 하는 감정은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감정이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발현되는 것이라면 고민해 볼 문제겠지만 모든 감정은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을 거쳐 두번째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흔히 부정적인 감정이라 인식하는 부분을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건강하고 보다 덜 극단적으로 발현시키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는 실제로 승화로 정의되며, 자아가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기제 중 성숙한 방어기제에 포함된다.

 

타인이 예술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은 나에게도 좋은 영감을 준다. 우울함을 내포한 예술 작품은 내가 비슷한 감정을 마주했을 때 좌절하고 힘들어하기 보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결국 내가 배울 점이 많아지기에 그러한 작품을 자주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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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제멋대로긴 하나 고심 끝에 결론을 내리다 보니 왜 슬픔을 두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추(醜)에 속하는 대상을 미(美)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니 말이다.

 

작품을 가까이하며 드는 또 다른 생각이 있다면 창작자들에 대한 존경심의 부분이다. 의도한 대로 표현하기 위해 자신이 겪은 아픔과 시련을 마주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했을 텐데, 이를 볼 수 있는 용기가 대단하다 싶었다. 물론 작품이 항상 창작자 자신의 상황과 결부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에, 결과물은 창작에 대한 순수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예술이 창작자에게는 자신의 또다른 표현 수단이자, 그 작품을 향유하는 사람에게는 결핍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효과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묵혀 둔 감정을 발견하고 해소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예술은 삶에서 가까이하면 좋은 문화이자, 오래도록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혹자는 좋아하는 것을 그 자체로 좋아하면 되는 걸,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작품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창작 동기를 파악하고 작품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 너무나도 즐겁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것처럼, 예술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많은 예술 작품을 접하려 노력할 듯싶다. 과정 속에서 여전히 취향에 의해 우울이 짙은 작품에 손을 더 뻗겠지만, 보다 다양한 색과 감정을 담은 작품을 경험해보며 많은 것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숨겨진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찾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길, 그래서 배워가는 것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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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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