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들과는 다른 하루를 마무리하는 술 [문학]

하라다 히카 '낮술'을 읽고
글 입력 2022.05.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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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정반대의 단어가 이어져 커다란 시너지를 일으킬 때가 있다. 가령 '한겨울에 아이스크림 먹기'이라거나 '한여름에 뜨거운 물에 샤워하기' 같은 문장 말이다. 완전히 다른 상황의 단어가 합쳐져 배덕감이 극에 달해 굉장한 만족감을 준다. 몰래 먹는 간식이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단어 중 가장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낮술'이다.

 

낮술. 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보면 술을 무슨 저녁도 아니고 낮부터 퍼마시냐고 눈살을 찌푸린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기분 좋은 단어다. 물론 나라도 오후부터 술 냄새를 풍기며 비틀비틀 거리를 걸어가는 취객은 피할 것이다. 하지만 적당량으로 조절해서 마신다면? 이보다 좋은 게 없지!

 

낮술을 처음 해 보았던 건 대학교 새내기도 아니고 이제 막 전공 수업을 시작한 2학년 때였다. 오전부터 휘몰아친 전공 수업에 지쳐버린 나는 오후 수업이 없던 날, 단골집 메뉴판을 뒤적이다 맥주를 시켰다. 처음에는 낮술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어머니가 술을 싫어하시는지라 저녁에나 한 잔씩 하곤 했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날따라 꼭 먹고 싶었다. 소주도 아니고 맥준데. 밥도 있고 반찬도 있는데. 더도 말고 덜지도 말고 딱 한 잔. 그날 마셨던 맥주는 참 좋았다. 더 수업이 없다는 해방감과 일찍 하루 일정을 끝낸 것에 대한 기분 좋음에 이후로도 종종 낮술을 하곤 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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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홀린 듯 빌렸다. 어찌도 이렇게 나에게 딱 맞는 제목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빌린 것이다. 주인공인 이누모리 쇼코는 오늘도 점심에 식당가를 헤맨다. 쇼코는 야간 '지킴이' 일한다. 쇼코의 고객은 다양하다. 치매의 걸린 편집장의 어머니, 싱글맘의 4살짜리 딸, 치매 걸린 강아지, 아내와 사별한 늙은 화가 등. 고객들을 방문해 해가 뜰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한낮의 점심. 술을 곁들인 식사를 하고 집에 들어가 짧지만 깊게 잠을 자고 다시 저녁이 되면 다른 곳으로 일하러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점심 식사는 쇼코에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저녁 식사와 같은 존재다. 기왕이면 맛있는 것, 어울리는 술,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고 마시며 쇼코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쇼코가 야간 지킴이를 한 것은 아니다. 홋카이도에서 올라온 사회초년생이었던 쇼코는 우연히 나간 미팅에서 나이 많은 '스기모토 요시노리'를 만난다. 첫 만남 이후로 호감이 있었던 두 사람은 어쩌다 보니 속도위반하게 되어 쇼코는 요시노리와 결혼하게 된다.

 

아이를 지우기 위해 수술대에 오르고 싶지 않아 한 결정이었지만 쇼코는 아이를 얻은 대신 잃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직장은 다니며 자격증을 따는 등 미래를 계획했었지만, 아이가 생기고 결혼하며 직장이 자신을 곱게 볼 것 같지 않아 퇴사했다.

 

집의 경우 남편이 전에 사두었던 2세대 주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기에 쇼코는 24시간을 시부모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시어머니는 한참이나 어린 며느리를 곱게 보지 않으셨다. 홋카이도에 농부 딸이라며 쇼코를 깎아내리고 감정 쓰레기통처럼 화내고 짜증 내고 미안해하고 살갑게 대했다가도 차갑게 무시하는 태도에 쇼코는 남편에게도 얘기해보았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는 남편과 시집살이, 육아라는 힘든 현실에서 아직 어린 아이만 보고 버텨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은 남편의 통화 내용을 듣고 그가 외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너져버렸다.

 

그래도 자신보다는 유복한 남편에게 자식을 맡기고 쇼코는 홀로 집을 나왔다. 결혼과 동시에 퇴사해 슬프지만, 흔히들 말하는 '경단녀'가 되어버린 쇼 코를 고향 친구인 다이치가 쇼코의 소식을 듣고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와 야간 지킴이 일을 주고 있다. 쇼코는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며 다양한 사연을 듣고 그들이 대처하는 방식을 직접적으로 보며 정신적으로 단단해진다. 우울감을 모두 몰아내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받아들이고 남편의 외도와 재혼을 인정하며 새로운 목표를 만들며 쇼코는 오늘도 일을 마치고 한잔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책의 초창기를 읽고 있자면 쇼코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없다. 쇼코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어쩌다 생소한 야간 지킴이 일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낮술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술의 가짓수, 고객의 명수가 늘어날 수록 쇼코의 회상을 통해 이누모리 쇼코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풀린다. 그것을 보고 있자면 남들에게는 좋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낮술'이라는 존재가 쇼코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게 된다.

 

처음에 책을 읽었을 때 남편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초년생의 발을 묶어 자리에 주저앉혀 놓고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정작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좋은 아들,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하는 게 고까웠다. 쇼코가 잘 살아있는데도 쇼코 없이 새로운 배우자와 둘이서 딸에게 재혼 사실을 알리겠다고 쇼코 있게 통보하는 장면은 화를 불러일으켰다.

 

쇼코에게 낮술은 숙면을 위해 모든 것을 잊고 푹 잠들기 위해 시작했지만 거듭할수록 삶의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어떤 것을 먹을지 기대하는 사람이 되었다.

 

술도 술이지만 고객들도 쇼코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미쳤다. 그들은 돌봄이 필요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술과 함께 다시 되뇌며 쇼코는 단단해졌다. 고객뿐만 아니라 쇼코를 생각해주는 주변의 친구들이 그가 무너지지 않도록 기분전환도 시켜주며 쇼코를 도왔기에 쇼코가 이혼 후 버텨 재혼 소식을 들었을 때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제가 쇼코가 딸인 아카리와 함께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쇼코는 조금은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 낮술 中

 

 

술이라는 것은 양날의 칼처럼 정말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모든 폭력의 시작 같은 이미지를 가지다가도 세상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는 청량한 이미지를 가지기도 한다.

 

요즘 술을 주제로 한 책이 많다. 그렇기에 옛날처럼 부정적 이미지 보다는 좀 더 밝은 이미지로 많이 등장한다. 쇼코가 그랬듯 주인공들이 즐거운 얼굴로 술을 즐기는 삶의 활력소가 되는 역할로 나온다. 왁자지껄한 술자리 분위기도 좋지만 혼자서 조용하게 주인공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위기의 작품도 좋다. 스스로가 자신의 주량을 지키면서 딱 기분 좋은 정도로 마시며 하루를 되돌아보는데 그러한 분위기가 좋다. 과하지 않게 적절하게. 자신을 조절하는 이미지를 강조하여 술이라는 매체가 사람들에게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가갔으면 한다.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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