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묻혀있던 가야의 이야기를 꺼내다 - 허왕후

글 입력 2022.05.2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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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허왕후.jpg


 

김해시, (재)김해문화재단이 제작한 <허왕후>는 가야역사 문화콘텐츠의 발굴을 위해 지역성을 기반으로 가야문화의 시초 김수로와 허왕후의 스토리를 담은 창작오페라이다.

 

2020년 2월 사업을 시작하여 2021년 4월,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초연되었고, 같은 해 대구오페라하우스(9월,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와 강동아트센터(10월,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에서도 무대를 선보여 김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 제작의 좋은 표본이 되고 있다.

 

 

어떤 소재로 문화예술 콘텐츠를 창작하고 그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 대중은 그 소재에 관심을 두게 된다. 그 소재가 역사라면 사람들은 역사를 다시 기억하게 되고 실제 있었던 일을 찾아본다. 픽션과 문화예술 콘텐츠의 의의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주로 삼국의 이야기가 많았다. 안시성,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고구려), 황산벌, 계백(백제), 서동요, 선덕여왕(신라)처럼 말이다. 같은 시기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고대국가 가야에 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오페라 <허왕후>를 보고 가장 좋았던 점은 이 오페라를 통해 가야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문화예술 콘텐츠로 접하며 친숙했던 삼국의 역사에 비해 조명받지 못했던 가야의 역사를, 이번 기회에 다시 기억해 볼 수 있었다.


김수로의 시조 신화, 아유타국에서 온 허왕후의 이야기, 가야가 영향을 준 일본의 스에키 토기 등. 학교에서 배웠지만 다시 상기시킬 일이 없어 묵혀있던 기억들이 오페라 <허왕후>를 보며 떠올랐다.


 

"얼마 안 되어 쳐다보니 보랏빛 노끈이 하늘로부터 드리워 땅에 닿아 있었고 노끈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로 싼 금합이 있었다. 합을 열어 보니, 둥글기가 해 같은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 여섯 개의 알 중에 가장 먼저 사람으로 변한 이가 그달 보름에 왕위에 오르니,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이름을 ‘수로’ 혹은 ‘수릉’이라 하고 나라를 ‘대가락’ 또는 ‘가야국’이라고 일컬었으니, 즉 여섯 가야의 하나이다. 남은 다섯 사람은 각각 돌아가 다섯 가야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 한국민족대백과사전 <김수로왕신화金首露王神话>

 

 

 

다른 점을 되짚어 보다


 

오페라 <허왕후>의 줄거리와 실제 역사와의 다른 점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사학을 전공한 친구와 함께 공연을 보았는데 중간휴식 시간에 인터넷으로 함께 가야의 역사를 빠르게 찾아보았다.


그 당시에는 장자가 먼저 계승해야 한다는 규칙이 아직 없었던 때라든지, 유교가 들어오기 전이므로 백성의 개념도 없었을 것이라든지 등, 혼자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함께 온 친구와 이야기하며 작품을 감상했다.


실제 기록된 가야의 역사와 신화와는 조금 다르지만, 장자와 둘째의 왕위 대결, 백성을 사랑하는 둘째와 냉혈한 첫째, 악역의 계략과 모함, 사랑과 거짓 사랑, 타국에서 탐낼만큼 뛰어난 철기 기술. 이런 요소들을 활용해 작품을 극적으로 잘 각색하여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크기변환][포맷변환]허왕후 (7)_ⓒ(재)김해문화재단.jpg

 

 

 

허왕후의 존재감


 

극은 가야의 특산품 ‘철’의 위대함을 노래하며 이에 자부심을 가지는 가야인들의 노래로 시작한다. 이어 극은 석탈해의 음모, 김수로의 누명, 디얀시의 죽음, 허왕후의 귀국을 거쳐 허왕후와 김수로의 혼인으로 끝이 난다.


극을 다 보고 나서 아쉬움이 남았던 건, 허왕후의 존재감이다. 제목의 주인공이니만큼 그녀의 이야기와 역할이 주요하게 다뤄지리라 생각했으나 가야의 홍보대사, 디얀시의 주인, 김수로와 결혼하는 인물 정도로만 그려진 것이 아쉬웠다.


허왕후는 가족을 떠나 타국에 홀로 와, 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는 인물을 잃을뻔하며, 가족이자 자매와 같은 디얀시의 죽음을 겪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러한 고난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사람이다.


이러한 내용이 작품에서 다뤄지지만 허왕후의 고난이 아닌 김수로의 위기, 석탈해의 음모, 디얀시의 슬픔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각 인물의 서사와 감정선이 노래로 길게 묘사되기에 관객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려 상대적으로 허왕후의 존재감이 희석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허왕후가 김수로와 칼을 맞부딪히는 장면이나 칼을 들어 악역인 석탈해에 맞서는 장면으로 허왕후의 강한 면모를 보여주려 한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러한 시도는 좋았으나 이뿐 아니라 허왕후라는 인물의 감정에 더 이입하고 그녀의 여정을 관객이 함께할 수 있도록 각 사건마다 허왕후의 감정에 대한 연결고리가 더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가야에 무슨 일로 오게 되었는지, 허왕후와 김수로가 좋아하게 된 서사가 어떻게 되는지, 허왕후와 디얀시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 등을 더 풀어주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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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이고 생생한 무대


 

마지막 막에서 가야 백성들의 장터 모습이 정말 생생했다. 왁자지껄하게 있는 백성들의 모습. 특히 중간휴식 시간에 찾아보았던 가야의 옷, 그중 색동의 알록달록한 치마를 무대에서 발견했을 때는 굉장히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의상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우선 가야 백성들의 옷이 실감 났고, 사로국(초기 신라) 출신의 석탈해만 귀걸이를 끼고 있다는 점도 작은 부분이지만 재미있는 지점이었다. 이진아시와 달리 김수로는 비슷한 의상에 갈색 천을 두르고 있었는데, 백성을 사랑하는 김수로의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복장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석탈해를 검은색과 모피, 수염으로 꾸며 멀리서 보아도 비열해 보이도록 꾸민 점도 캐릭터를 의상이 잘 살린 경우라고 생각한다.


오페라가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무술팀과 무용팀의 역동적인 무술과 춤이 공연을 알차게 채워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장면과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 노래, 무술, 무용, 조명, 그리고 무대 공간 덕분에 뮤지컬처럼 역동적인 오페라 공연이었다.


무대 중간에 있는 커다란 검 모형은 가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 조형이다. 우뚝 솟은 칼로 시선이 쏠리지 않도록 구멍이 뚫린 판 같은 천장을 비스듬이 만들어, 다시 시선을 아래로 모은 것도 무대의 완성도를 높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조명의 색깔을 사용한 것도 인상깊었다. 특히 김수로가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고, 이를 꾸짖는 이진아시와의 팽팽한 긴장감이 강조되는 장면에서의 서늘한 푸른빛이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

 

일본은 각 현마다 그 지역의 특징과 역사를 살린 콘텐츠가 잘 개발되어 있다고 한다. 서울과 부산 외의 우리나라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오페라 <허왕후>, 일본의 지역 콘텐츠와 같은 문화예술 콘텐츠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허왕후>는 굉장히 인상 깊었던 작품이며, 김해시의 성공적인 콘텐츠 개발이었다고 생각한다. '제 13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에 올리기 위해 이 작품을 여러 번 수정하였다고 한다. 앞으로 작품 <허왕후>가 또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를 해본다.

 

 

[이진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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