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각자의 매력을 품고 살아있는 캐릭터들 - 허왕후

캐릭터성과 무대, 그리고 복식을 보며 정말 즐겁게 관람하고 온 오페라였다.
글 입력 2022.05.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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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허왕후.jpg

 

 

오페라 <허왕후>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비인 허황옥의 이야기다. 김수로왕은 수도 없이 이야기를 들었으나, 허황옥에 대해서 들은 기억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이 오페라를 보았을 때 반가운 마음보다는 한국사에 이런 인물도 있었던가, 눈을 끔뻑이게 되었다.

 

이 오페라가 가락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주인공이 김수로왕이 아닌 허황옥이라는 점에서 크게 놀랐다. 유명세만을 따졌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김수로왕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충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페라는 허황옥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속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하게 되었다.

 

 

허왕후 (2)_ⓒ(재)김해문화재단.jpg

 


그런 나의 기대 이상으로 극은 여성 주인공의 서사를 잘 활용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가락국의 국모가 되었는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강인했다. 이 극에서 허황옥이 가녀린 여성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는 주체적인 여성 그 자체였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그녀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의 당당함과 해맑음 속에서 피어오르는 지혜와 총명함은 김수로를 넘어 나라의 위기를 극복시켰다. 그녀가 굳이 칼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으로, 그리고 위험한 상황을 헤쳐나갈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그녀는 날붙이 없이 손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극에서 묘사되는 다른 캐릭터들 또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백성의 나라를 강조하며 자신의 신분보다는 백성의 안위를 더욱 신경 쓰는 자유롭고 사려 깊은 김수로왕은 물론 매력적이지만, 그 외에도 내가 놀랐던 것은 이진아시라는 캐릭터였다. 그는 처음에는 김수로와 반대되는 인물로 나타난다. 백성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왕권을 더욱 중요시 생각하고, 다른 이들을 사려 깊게 보기보다는 김수로를 향한 경계심이 더욱 두드러지는 캐릭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초반에는 당연히 그가 '악당의 역할'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추측은 석탈해의 등장으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김수로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방해하는 진짜 인물은 이진아시가 아닌 석탈해라는 캐릭터였다. 그는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 거짓 자백을 하도록 만들고, 기꺼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면서 김수로를 위기에 빠트린다.


이런 석탈해의 캐릭터로 인해 내가 처음 악역일 것이라 생각했던 이진아시는 오히려 김수로와 손을 잡고 함께 석탈해를 공격하게 된다. 김수로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 무모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분노했던 것은 그의 진심이었던 것이다. 그는 왕위를 원했지만, 그렇다고 정의를 등지지는 않았다. 보통 이런 캐릭터는 석탈해의 행동을 마음에 들어 하기 마련인데, 김수로의 누명이 벗겨지자마자 김수로의 밧줄을 풀어주고 힘을 합쳐 석탈해를 공격하려 한 점에서 이진아시의 인간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둘의 공격 스타일의 차이도 흥미로웠다. 소수의 부하들과 함께 석탈해를 공격할 때, 김수로는 용맹하고 거침없었다. 이 말은 그의 강인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변을 돌아볼 때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다. 허황옥의 하녀 디얀시가 공격을 받을 때도, 그 디얀시를 허황옥이 품에 안고 있을 때도, 자신의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하나 둘 공격을 받아 죽어나갈 때에도 김수로는 당황하기보다는 석탈해를 공격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을 살핀 것은 김수로가 아닌 이진아시였다. 그는 공격을 하는 와중에서도 공격받은 디얀시를 살펴보고 안타까워했으며, 석탈해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디얀시와 그녀를 안은 허황옥의 곁에서 그들을 지키며 공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주변의 부하들이 하나둘씩 쓰러질 때에도 그는 공격을 이어나가기보다는 무릎을 꿇고 공격받은 부하들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두 캐릭터의 모습에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김수로와 이진아시의 캐릭터 묘사가 반대되는 것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극의 초반부터 백성의 나라를 강조하던 김수로와 왕족의 나라를 강조하던 이진아시였다. 그런데 싸움에서는 오히려 이진아시가 주변인들을 살펴보고 김수로왕은 주변인들은 신경 쓰지도 않고 아랑곳 않고 공격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당황스러움도 잠시, 이 차이점은 두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이고 인간미 있게 만들었다.


석탈해를 공격한 후, 디얀시와 허황옥의 마지막을 배려하며 그 어떤 공격성도 없이 오히려 김수로에게 먼저 자리를 비켜주자 제안하고 떠나는 이진아시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렇게 떠나면서도 두 사람을 바로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살펴보던 이진아시의 모습에서 나는 이진아시라는 캐릭터에게 묘한 친밀감을 느꼈다.

 

 

허왕후 (4)_ⓒ(재)김해문화재단.jpg

 


이 오페라 극은 무대 연출과 복식도 정말 아름다웠다. 둥글게 구멍이 뚫린 천장을 만들고 그 구멍 안에 빔프로젝터가 가득 채워지도록 하여 하늘과 풍경을 이질적이지 않도록 묘사했다. 무대를 가득 채운 소품들은 정말 극의 공간이 내 눈앞에서 구현된 것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그뿐만 아니라 신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띄고 있는 각색의 다양하고 화려한 복장들은 눈을 즐겁게 했다.


캐릭터성과 무대, 그리고 복식을 보며 정말 즐겁게 관람하고 온 오페라였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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