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익숙하고도 낯선 : 팀 버튼 특별전

글 입력 2022.05.2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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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후, 동대문을 찾았다. 외계 행성 같기도 하고 UFO의 형상 같기도 한 둥글고 커다란 회색의 빗금 건물.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것에 비해 혼란과 논란이 많았던 모양새. 회색의 차가운 느낌은 서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이긴 하다. 그래서 조화롭지 못하다는 평이 많았으나, 지금은 적응기가 지난 것 같다.


전시장인 배움터로 가는 길. 야트막한 야자수 같으면서도 분수 같기도 한 흰 줄기의 조형물을 따라 내려가면 커다란 곰돌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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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롯데타워의 마스코트였던 분홍 곰돌이 ‘벨리곰’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만 흑과 백이 공존한다는 것과 부둥켜안은 모습은 닮았다고 여기긴 어려웠다. 건물의 생김새를 고려한 디자인일까.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무엇보다 현재 전시 중인 팀 버튼 특별전과 어우러졌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그 앞에서 플리마켓을 해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 시간 67분이라는 안내를 받고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야 했으니. 듣기로는 평일 오후에도 사람이 많단다. 6월 중순이 지나고선 더욱 그러할 테고. 주변에서 무얼 할지 알아본 후에 가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벤치가 있으니 앉아서 음악을 듣거나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겠고 따릉이 대여소가 코앞이니까 한 바퀴 돌고 오는 것도 방법이겠다. 나는 동행자가 있어서 전자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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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내부 촬영 불가 및 재입장 불가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까만 천막 너머로 가장 먼저 보인 건 사람들의 뒤통수.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왜 그런가 하니 일렬로 줄을 선 상태였다. 전시장 전체 크기는 큰 편이어도 섹션이 많은 탓에 각 구간은 그리 널찍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사진과 영상이 뒤섞여 있어서 좀처럼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줄에서 나와 작품을 구경하기엔 사람들의 머리끝이 시야에 걸렸다. 늘 널널했던 예술의 전당이 그립던 순간.


티켓과 함께 받은 팜플렛에 읽을 만한 게 있으면 좋았으련만. 별 다른 정보를 담지 않은 양면 종이였다. 어느 하나 관람하기 쉽지 않은 전시였다. 이럴 땐 미술작품 보듯 하나하나 톺아보는 것보다 물 흐르듯이 지나치는 게 좋다.


팀 버튼의 초기 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고, 생각보다 영상이 많았으나 그보다 스케치가 더 많았다. 일본 괴수 영화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그리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공포물 등에 관심을 가졌다더니 증명이라도 하듯 하나같이 기괴했다. 뚜껑을 여니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통만 뚝 들어있거나 피가 낭자하거나. 초등학생 때 그렸던 과학 상상화와 엇비슷한 그림도 있었고.


그의 초기작이라고 했으나, 나는 이보다 더 이른 시점의 그림이 궁금해졌다. ‘작품’이라고 부르기 머쓱할 만큼 어린 시절 말이다. 이건 전시벽에서 본 문장 때문일 거다. 팀 버튼은 어릴 때부터 몬스터를 좋아했다고 한다. 동화 속 이야기를 보고 자랐을 나이에 자신은 몬스터 영화를 찾았다고. 그들만큼 순수한 존재가 없다나. 같은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의한다. 생김새, 하는 행동, 목소리. 어느 하나 타인을 의식한 기색이 없다. 자유롭디 자유로운 영혼들.


모르는 것이 많았던 때일수록 선명히 그려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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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갈수록 스케치의 수가 많았다. 말 그대로 스케치북에다 스케치한 것들도 눈에 띄었다. 냅킨 시리즈를 보고는 재밌다고 느꼈다. 나 또한 휴지에 낙서를 하거나 편지를 써본 경험이 있으니까. 순간순간 떠오르는 느낌을 잡으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그냥 그게 재밌어서 했다. 팀 버튼의 생각이 궁금하다.


막연히 예측해 보건대, 이 사람도 그냥 그리는 걸 좋아하는 듯하다. 펜과 마커처럼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도구가 대다수의 작품 재료였으니. 간간이 설치미술도 있긴 했지만, 역시 기억에 남는 건 스케치들이다. 초창기엔 오일파스텔 등으로 굵고 다소 지저분한 선을 쓴 것도 의외였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간 걸까.


<유령신부>, <크리스마스의 악몽> 등 다소 익숙한 애니메이션 영화도 소개되었다. 그리고 싶은 걸 맘대로 그린 듯한 섹션을 지나온지라 다소 매니악하다는 이 작품들이야말로 대중을 고려한 결과물이었다. 무엇이든 지겹게 좋아하면 어떻게든 통할 방법을 찾는구나, 싶다. 나도 오래오래 글을 써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찾겠다고 다짐해본다.


다만 이번 전시를 통해 의아한 구석이 생겼다. 그가 그린 스케치 속 대상은 대부분 남성이었는데 드물게 여성 캐릭터들이 나왔다. 그들의 신체는 왜곡이 심하다. 팔과 다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얇고 기다란 생김새였다. 문제는 가슴. 왜, 유튜브나 외부 기사에 이상한 웹툰 광고가 지겹게 보이지 않는가. 그린 이, 그리고 그걸 찾아보는 이의 착각 속 여성은 얼굴이 발그레하고, 눈을 이상하게 뜨고, 팔과 허리가 비정상적으로 얇은데 가슴과 엉덩이만 더욱 비정상적으로 거대하다.


팀 버튼의 그림과 똑같았다. 여기에 속눈썹과 입술 색도 넣어주어야 완성이라도 되는 듯이. 몇 점 없는 여성들의 공통점은 얇고 스산한 선이 아닌 이런 것들이었다. 놀라울 지경이다. 그로테스함과 기이한 생물체로 유명한 것과 별개로 여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이렇구나. 차라리 전시를 하지 않는 게 좋았겠다고 느낀다. 전시는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함인데 어딜 어떻게 보아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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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따란 선과 기다란 몸뚱이를 한 시간 넘도록 보아서일까. 끝에 가서는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일까, 하고. 최근 전시회를 자주 가는데 아쉬운 점은 언제나 비슷하다. 작품의 표현방식이나 전시회 공간의 크기와 배치. 혹은 둘 다. 그래도 전시장 내외가 어우러진 건 이번 DDP가 제일이지 않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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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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