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울증을 앓는 당신께, "지푸라기"가 되어줄 책들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5.2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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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는 호스트인 미지, 즉 나의 고민을 주제로 하는 독서기반 대화 커뮤니티이다.
 
3기의 주제는 우울증과 정신건강이다. 2년여간의 우울증 반려 생활으로 나는 더 이상 뭘 어떻게 더 노력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이 모임 기획을 시작했다.
 
내가 했던 기획 중 가장 어려웠고, 가장 고심했던 모임 기획이었다. 우울증 자조모임이 그토록 필요함에도 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를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아주 안정적인 상태이다.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건 바로 이 때문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새로운 시도가 너무나도 어렵다.
 
내가 아무리 좋은 컨텐츠를 선정하고 홍보를 열심히 할지라도, 모임에 찾아오는 사람은 한정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어낼 만큼의 집중력과 시간 투자를 할 수 있으며 사람들과의 대화를 할 만큼의 에너지를 낼 수 있을 만큼의 건강을 가진 사람.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과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그렇게  <미지의 세계> 3기 모임에서 함께 나눈 컨텐츠들을 하나씩 소개해보겠다.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 리단 저

 

우울증을 주제로 독서모임을 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게 해 준, 나에게 가장 영감을 주고 고양시켜주었던 책이다. 이 책을 주제로 첫 오피니언을 기고하여,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가 되게 해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정신질환에 대한 '필수교양서'이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비급'과도 같은 책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하며, 병을 가진 상태로도 현재의 삶을 주체적으로 운영해나가기 위한 방안들이 담겨있다.
 
책이 전해준 가장 강렬한 메세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다.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에 대해 세상에는 많은 솔루션들이 존재한다. 약물치료, 상담치료, 운동, 명상, 기록하기, 감사일기 쓰기 등등.. 좋다는 건 알고 있어도, 꾸준히 하는 것은 어려우며,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 또한 아주 느리다. 자꾸만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사람을 참 강인하게 만든다. 포기하지 않게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아직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남아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할 만한 이유들이 남아있기에.
 

 

당신의 지금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변할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불안> - 알랭 드 보통 저

 

우울증을 주제로 하는 모임에서 웬 불안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불안은 우울증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사고 편향에 의해 부정적 요소에 쉽게 이끌리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에 시달린다. 우울이 불안을 유발하기도 하고, 불안이 우울을 유발하기도 한다.
 
<불안>은 우리가 읽은 책 중 유일하게 우리 감정의 사회적 원인에 대해서 논한 책이다. 흔히 우리는 우리의 사고와 감정에 주는 사회의 영향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산업혁명 전과 후로 사람들이 토로하는 고민은 명백히 다르다. 사회의 거대한 구조는 우리의 삶의 방식은 물론이고 가치관, 나아가 우리의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불안>과 더불어 한병철의 <피로사회>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도 함께 살펴보며, 현대사회의 우울과 불안의 사회적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 <피로사회> 중


 

능력주의의 이상은 개인의 책임에 큰 무게를 싣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각자가 삶에서 주어진 결과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 <공정하다는 착각> 중

 

 
사회가 개인의 감정에, 정신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어떻게 도움이 될까? 이는 개인의 책임을 덜어준다. 우리의 병에 대해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라는 말은 헛소리 라는걸 알게 해준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우리는 여기에서 나아가, 이러한 사회에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다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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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썸원 썸웨어>

 

로맨스 장르로 소개되는 영화이지만, 내가 보기엔 정신건강을 휼륭하게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판단되어 우리 모임의 컨텐츠로 선정하게 되었다. 썸원 썸웨어는 특히, 상담치료를 주로 다루고 있다.
 
영화 <썸원 썸웨어>는 잠을 자지 못하는 남자 레미와, 자도자도 피곤한 여자 멜라니가 주인공이다. 둘은 각자의 이유로 삶에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고, 이성과의 만남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영화는 그런 두 사람이 상담치료를 받고, 상담에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서적 성숙과 건강한 삶을  이뤄내는 모습을 그린다.
 
우리 모임에서도, 한 멤버가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질환 치료에 있어 약물치료와 상담치료 중 무엇이 더 효과적이냐고 물었다. 내 답은 두가지가 모두 병행되어야 한다, 이다. 물론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할 수 있는건 모두 해본 우울증 환자로써, 내가 나아지는데에는 두가지 모두의 도움이 있었다.
 
상담치료는 사실 그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기 때문에, 인내심과 꾸준함이 필요하다. 결국 진정한 내면의 안정과 정서적 성숙을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한 상담을 통해 나에 대해 이해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하며, 과거에 충분히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과 그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탐색하고 새로이 끝맺어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리한다는 건 간직하되 짐이 되지 않는 거죠."

 

- 영화 중 상담사의 말

 

 

<썸원 썸웨어>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어서야 비로소 타인과의 사랑에서도 건강할 수 있다.
 

 
<우울할 땐 뇌과학> - 알렉스 코브 저

 

우리가 모임에서 다룬 컨텐츠들 중 우울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추천해 주고 싶은 두가지는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와 바로 이 <우울할 땐 뇌과학>이다.
 
<불안>에서 우리 정신건강에 미치는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살펴보고, <썸원 썸웨어>에서는 유년기 경험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면, <우울할 땐 뇌과학>은, 말 그래도 우울에 대해 객관적인 뇌과학적 측면에서 다룬다.
 
우리는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부르곤 하나, 그것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점은 감기와 같을 수 있겠으나, 바이러스처럼 어느날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는 질환은 아니다.
 
우울증은, 쉽게 말해 뇌의 신경회로들간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다. 책에서는 변연계니 옥시토신이니 어려운 용어들을 사용해 그 의사소통에 관해 설명하고 있으나, 핵심은 바로 '신경가소성'이다. 신경가소성이란 우리의 경험이 신경계, 즉 뇌의 변화를 일으키는 성질이다. 즉 우리는 뇌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우리의 모든 경험과 행동이 뇌를 바꾼다.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뇌 회로를 갖고 있으므로 우울증에 걸렸든, 불안증에 걸렸든, 어딘가 아프든, 그냥 잘 지내고 있든 누구나 똑같은 신경과학을 활용해 자기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

 
언제나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로 돌리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힘들까, 나의 뇌는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이렇게 우울한걸까. 생각하곤 한다. 우리의 뇌에는 사실 잘못된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뉴런들의 의사소통에서 발생한 작은 문제가 그러한 고통을 촉발한 것이며, 우리에게는 그러한 뇌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 - 니콜 르페라 저

 

이 책은 트라우마와 내면아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든 아니든,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각기 다른 트라우마와 다른 유형의 내면아이가 존재한다. 유년기의 경험은 끈질기게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목적은 이러한 트라우마와 내면아이의 상처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순간 나의 트라우마와 내면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나에게 더나은 선택을 하여 더나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그 문제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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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부모님은 분명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에게 상처를 받았을수도 있고, 어떠한 트라우마가 생겼을 수도 있다. 우리의 트라우마와 내면아이를 발견하는 일은 부모님을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성숙으로 이어질 수 없다. <금쪽같은 내새끼>가 인기리에 방영되며, 우리 사회는 이제 생애초기와 유년기에 부모의 언행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부모세대에 대한 공감과도 함께 되어야 한다. 부모들 또한 부모가 처음이고, 당신들 세대에는 지금과는 다른 양육방식을 취했으며, 먹고사는 일이 아직까지 더 중요했었다. 나에 대한 이해, 더불어 부모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정한 성숙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

사실 내면아이라는 소재 때문에 이 책을 선정했지만, 한 가지 더 얻게 된 것이 있다면 정신질환 치유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다. 몸과 마음, 뇌와 장, 현재의 경험과 과거의 경험, 그리고 미래의 경험까지. 모든 것에 대해 총체적인 노력을 해야만 효과적인 치유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끄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주체적인 선택권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을 다시끔 일깨워주었다.
 
 
 
넷플릭스 <헤드 스페이스 : 명상이 필요할 때>

 

우리가 읽었던 많은 책들에서 깊은 호흡과 명상의 효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직접 함께 명상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명상을 함께 하고 그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같은 장소에서 느낀 각자의 감각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였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 제임스 클리어 저

 

첫 모임에서 다룬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움직여야 함을 일깨워주었다면, 마지막에 다루는 이 책은 그러한 우리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없다고 불평하는 건 온도가 영하 4도에서 영하 1도까지 올라가는 동안 왜 얼음이 녹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 쌓이고 있다. 모든 일은 0도가 되어야 일어난다.

 

 
최고의 변화는 아주 작은 습관에서부터 시작된다. 진부하게 들리는 이 말을 듣고 흘려버리는 것과, 좋은 습관을 어떻게 만들고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은 다르다.
 
사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실천 방안은 일상에서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모임이 끝난 후에도 더욱 건강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습관을 지켜나가기로 다짐해본다.
 
*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실 나마저도 이 모임의 효과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모임이였다. 그 지푸라기들이 하나하나 모여 울림을 주었다.
 
하나하나 다른 컨텐츠들을 다룬 것 같지만 모아놓고 봤을 때는 비슷한 메세지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는 많은 컨텐츠들을 접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늪에 빠져있는 것만 같다면, 당신에게도 여기 소개된 책들을 읽는 것은 헛된 일이 되지 않을 것이다.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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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박무아
    • 오늘도 나의 지푸라기가 되어준 누군가의 눈빛과 말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의 눈빛과 말이 누군가에게 지푸라기가 되어주었길 바래봅니다
      우울과 불안이 병증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임을...오히려 높은 민감도로 인한 우울과 불안이 나의 삶을 살찌움을...나는 괜찮은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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