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돌아온다'의 목적어에 관하여 - 연극 '돌아온다'

글 입력 2022.05.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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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보긴 오랜만이다. 마침 나들이를 하기에도 딱 좋은 화창한 날씨에 나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으로 극장 나들이를 하러 갔다. 그날 본 연극의 제목은 <돌아온다>였다.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본 연극의 홍보문구이자 무대의 하나뿐인 세트인 막걸리 집 ‘돌아온다’ 안에 걸려 있는 글귀, 그리고 공연 내내 등장인물들의 바람을 관통하는 그런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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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돌아온다>의 인물들은 모두 누군가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모두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 제대가 얼마 안 남은 아들을 기다리는 교사, 집 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청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스님, 간암에 걸렸으면서도 매일 ‘돌아온다’에 막걸리를 마시러 오는 욕쟁이 할머니. 그리고 치매 걸린 아버지를 잃어버려 아들의 마음까지 영영 잃어버린 막걸리 집 사장.

 

‘돌아온다’ 가게 주인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그리워하는 이를 꼭 만날 수 있을 거라며, 본래 이 가게 터에 살았던 한 부부의 얘기를 해 준다. 재주를 넘는 약장수 남편과 노래를 불렀던 아내의 이야기. 재주를 넘다 허리를 다쳐 거동을 못 하게 된 남편과 생계를 위해 이 지역 저 지역으로 다니며 노래를 불렀던 아내의 이야기. 그리고 어느 날 돌아오지 못한 아내와 처를 기다리다 죽게 된 남편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었다. 관객은 극의 중간중간에 소복을 입은 귀신 두 명이 ‘여보-’하며 서로를 애타게 찾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죽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서로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귀신 부부. 부부는 서로 같은 공간-그들이 살았던 집이자 ‘돌아온다’ 술집-에 와 있어도,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어도 서로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두 사람의 죽은 자리가 멀기도 했을 것이고, 아마 두 사람의 죽음의 경로가 다르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이렇게 죽음 이후로 서로를 그리던 둘도 못 만나고 있는데 이 둘이 다른 사람을 도울 힘은 있을까. 실제로 극이 진행되는 중에 귀신 부부가 이승의 사람들을 돕거나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사연이 있는 곳에 다른 사연들이 하나둘 모여 더 머무를 뿐이다. 귀신 부부의 존재는 사연 있는 곳이 다른 사연이 머물 장소가 되어준다는 점과 애타게 그려도 만나지 못할 수 있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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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에서 사연의 힘이 산 사람의 인연을 다시 닿게 해 준 경우는 결국 산 사람의 사소한 행동에 의한 것이었다. 스님과 가게 주인의 사이를 풀어주기 위해 교사가 찍었던 작은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 그리고 그 사진 한 장을 가게 내 사연 게시판에 붙였던, 사소하되 친절함이 담긴 행위. 그 사진을 보고 가게에 늘 찾아와 막걸리를 마시던 욕쟁이 할머니가 스님이 된 자기 아들의 소재를 알게 된다.

 

그런데 아들을 잃었던 어머니 한 명이 드디어 아들을 만날 희망을 보게 된 날에, 억울하게 아들을 잃은 다른 어머니 한 명은 가게 안에서 재회의 소망이 담긴 글귀를 찢으며 울부짖었다.


“돌아온댔잖아! 이 사기꾼!”


그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던 날, 교사에게 걸려온 전화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이제 곧 제대하여 엄마와 만나야 할 아들이 군에서 총으로 자기 머리를 쐈다는 내용의 전화. 이후 검은 옷을 입고 유골함을 들고 가게에 들어와 울고 있는 교사의 모습에서 돌아와야 할 아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을 짐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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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할머니와 스님처럼 눈물의 재회를 할 수도 있지만, 세상사 야속하고 야멸찬 일도 참 많다. 교사의 경우처럼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이 돌아오지 않거나, 귀신 부부처럼 가까이 있어도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만날 수 없는 일이 현실에도 있다. 한편 세상의 야멸찬 일 중에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으나 (때로는 치러야 할 죗값에 비해 더 치명적으로) 돌아와버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치매 걸린 아버지를 잃어버린 가게 주인 사내의 경우가 그렇다. 돌아온다는 서술어의 목적어에 들어갈 수 있는 말로는 그리움의 대상도 있지만 업보도 있는 것이다.

 

치매가 있고 나이 든 아버지를 대중목욕탕에 혼자 보냈다가 영영 잃어버린 가게 주인은 그 일 때문에 아들의 마음마저 잃었다. 무슨 생각으로 치매 노인을 혼자 목욕탕에 보낸 건지 그 의도는 불명확하지만 아들의 증오에 찬 생각대로 그를 정말 ‘잃고 싶어서’ 보낸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가게 주인은 스스로 인정한다. 잃어버린 아버지를 그렇게 열심히 찾지는 않았다고.

 

가게 주인의 아들은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그의 돈은 탐한다. ‘돌아온다’ 가게를 팔게 도장을 달라고 가게에 이따금 와서 행패를 부린다. 그러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는데, 어쩌면 가게 주인은 아이가 생긴 것을 계기로 아들이 증오를 버리고 살기를 바라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기대를 부숴버리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들 본인이다. 아버지로 인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분노로 바꿔버린 아들이 말한다.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아이도 지웠다고. 할아버지 될 생각에 신나 있었냐고. 마치 자신이 그 꼴을 볼 수는 없다는 듯이 분노에 차서 말한다.


“다 뿌린 대로 거두고 가.”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는 거라며 아들은 떠나버렸고 가게 주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 한다. 그러다 벽에 걸린 거울을 떼어 내 들고 그 속을 들여다보며 운다. 우리 아버지 여기 계셨네, 여기 계셨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아버지를 닮아갈 텐데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착잡함은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가되었다. 밝은 분위기의 ‘돌아온다’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게 주인이었던 사내의 아들과 여자친구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웃고 있고, 청년의 아내가 청년을 찾으러 오기도 한다. 가게 사장이 된 교사는 손님들의 주문을 받다가 건강하게 제대한 아들을 보며 기뻐한다. 귀신 부부는 비로소 만난다. 외롭고 스산한 분위기의 조명 아래에서가 아니라 밝은 조명 아래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그리움 담긴 꽃을 주고, 아내가 기쁘게 꽃을 받으며 극의 막이 내렸다.

 

이제는 한데 모여 있을 리 없는 사람들이 밝은 낯으로 모여 있는 데서 짐작했겠지만 이 연극의 엔딩은 환상이었다. 죽어버린 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제대했다는 인사를 할 때, 이 모든 것은 정말 환상이라는 것을 쐐기를 박아준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저 귀신 부부도 계속 못 만난다는 얘기가 되지 않나. 창작물이 현실을 담는다지만 이렇게 영원한 그리움과 애타는 슬픔에까지 못을 박아주다니. 다소 민만(悶懣)해진 기분으로 객석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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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돌아온다’로 돌아온다. 집 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다 산에 목을 매러 갔지만 실패하고 돌아와 아내가 집 나간 이유인 술을 끊기로 한 청년, 아들의 유품을 정리하다 아들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마음으로 주점 ‘돌아온다’를 인수해 가게를 유지해 주는 교사가 그렇다.

 

어쩌면 돌아온다는 말의 목적어로 두 가지가 올 수 있듯이, 가게 안에 걸린 글귀에 이끌려 오는 사람들도 두 부류일지 모른다. 애타는 그리움의 대상인 사람들. 그리고 그런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사실은, 연극 안에서나 현실에서나 후자의 사람들이 이 글귀에 더 많이 이끌려 모이는 것 같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사연이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돌아온다. 돌아와 동병상련의 사람들을 보며 그리움을 겨울나듯 함께 난다. 서로 가슴 깊이 묻어 놓은 죄책감을 꺼내어 덜어놓기도 한다. 갑자기 온 비를 처마 아래 모여 비를 피하느라 어깨가 닿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외로움과 그리움을 난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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