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에 대한 가벼운 생각 [문학]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 마르탱 파주
글 입력 2022.05.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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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느끼기에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간이 있었다. 당시 이 책은 제목부터 끌렸다.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당시 필자같이 자신감도, 의욕도 없는 사람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만한 제목이었다. 보통 제목이 흥미로우면 그 안에는 기대와 다른 내용이 펼쳐지기 마련인데, 이 책은 ‘진짜’ 자신의 의지대로 바보가 되어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만큼 파격적이고,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 전개가 흥미로웠다.

 

이 책의 주인공 앙투안은 지성과 이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지성이 자신을 행복하지 못하게 하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그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자 했다. 이성과 사고에서 벗어나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차라리 인생의 괴로움보다 술의 괴로움을 느끼고자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려는 과정에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지식인에서 벗어나고 싶어 술을 마시고 싶어 하지만, 그는 술을 접하는 과정에서조차 완벽한 지식인이었다.

 

주인공 앙투안은 술에 대한 갖가지 지식을 담은 책을 읽고, 술을 제대로 가르쳐줄 수 있는 스승을 찾으려 노력한다. 지식인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결국 지식인의 방법으로 지식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아무튼 주인공은 그렇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자 했으나, 타고난 육체가 받쳐주지 않아 맥주 반잔에 기절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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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은 이렇게 술로는 삶의 균형을 잡지 못해서, 두 번째 방법인 자살에 대해 생각한다. 그가 자살에 접근하는 방식 역시 지식인답다. 그는 자살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주는 수업을 듣는다. 그런데 그 수업을 들으며 그는 이미 자살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번역자는 그 이유가 주인공이 삶에서 행복을 찾고 싶어 했던 것이지 죽음에서 행복을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필자는 주인공이 처음부터 자살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지식인으로서의 호기심을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혼동했으며, 결국 자살이 무엇인지 자살을 어떻게 하는지 ‘배웠기에’ 그 호기심이 충족되어서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주인공이 듣는 자살 수업에서 자살을 마치 수영과 같은 일상생활의 취미이자 목표의 하나쯤으로 그려내고 있다. 자살 수업을 듣다가 옆 사람과 눈이 맞아 다시 몇 개월간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살 방법을 끔찍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자살을 이렇게 표현한 이면에는 어쩌면 작가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아, 너희에게 자살이라는 말은 얼마나 큰 무게를 갖고 있니? 너희는 솔직하게 말해서 살고 싶은 거니, 정말로 자살하고 싶은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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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그렇게 자살도 실패하고, 최후의 수단인 바보가 되기로 한다. 주인공은 생각을 덜 하게 되고 감각이 무뎌지는 알약을 처방받아 책보다는 TV를 가까이하며 점점 바보가 되어가지만, 돈이 궁해진다. 그러자 그는 지인을 찾아가 증권 중개인이 되고 우연한 기회로 부자가 되어 부자들이 사는 물품을 똑같이 구매한다. 여기서 주목했던 점은 바보가 되어간다는 것이 바로 사회의 보편적인 성공한 인물이 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는 작가가 사회가 정해준 길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금 행복하냐고,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냐고 비판적으로 묻는다고 볼 수 있겠다. 아무튼 주인공은 그렇게 바보가 되었고,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자신의 모습인 소심함이 어느새 사라진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어쩌면 사회가 정한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 자체가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 바보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보가 되어가며 점점 변하는 모습에 앙투안의 친구들은 실망하고 떠나버린다. 앙투안은 이미 바보가 되어버렸기에 그 점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동료들과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이기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동료가 그에게 ‘성적인 특권’까지 권유하자,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인공은 마지막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다시 고뇌의 시간을 거치고 친구들의 노력까지 합쳐 앙투안은 결국 바보 같은 삶을 내던지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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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내용의 소설이고, 흥미롭고 생각해 볼 거리도 많지만 한편으로 아이러니하고 의문이 드는 점도 있었다. 처음에 주인공이 지성을 비판하며 글을 썼을 때, 그 내용 중에는 ‘주인공이 무언가를 얻고 나서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짜증 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여행은 결국 지성 예찬으로 변질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 역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똑똑했던 주인공이 지성을 버리려 하다 결국 다시 똑똑한 상태로 돌아왔다. 주인공이 끔찍하게 싫어하던 서사가 결국 주인공의 이야기 전개 과정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작가는 무얼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주인공이 바보 같은 삶을 바랐던 것, 지성을 싫어했던 것, 원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싫어했던 것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바로 진짜 바보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는 그러한 식으로까지 지성을 비난하던 주인공의 모습은 결국 자신의 본 모습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자기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모습이 바로 바보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또한 이 작품에 나타난 삶의 방식의 이분법적인 구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앙투안의 원래 삶은 지적으로 풍부하고, 진정한 친구가 있지만, 가난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중 어느 하나가 바뀌자, 나머지 역시 반대로 바뀌어야만 했다. 주인공이 지적으로 풍부한 삶을 버리자, 진정한 친구는 떠나버렸고, 부를 얻었고, 사회에 적응했다. 주인공이 다시 지적인 삶으로 돌아오려 하자, 친구들 역시 돌아왔고, 재산은 몰수당했다. 단 하나 희망이 있다면 그가 마지막에 처음 보는 새로운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지식인의 모습으로도 사회에 적응할 가능성을 보였다. 어쩌면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분은, 우리가 '나'에 대해 생각해볼 때 ‘자신인 모습’과 ‘자신이 아닌 모습’이 있는데, 우리는 결코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없는 ‘자신이 아닌 모습’을 쫓기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잘 가꾸어야 하며, 그 ‘자신의 모습’으로도 사회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한 남자가 바보가 되는 과정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중심을 갖고 사는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사실 필자가 전에 하던 고민의 시작도 그것이었다.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내 중심과 내 본질은 무엇일까. 혹시 그러한 것들을 고민하다 지쳐서 생각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상태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필자도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래도 계속해서 '나'에 대해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바보가 되려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찾은 것 같은 앙투안을, 혹은 그렇게 되고 싶은 세상의 수많은 '나'를 응원한다.

 

 

참고 도서 : 마르탱 파주, 용경식 엮음,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작가정신, 2005.

 

 

[정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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